화냥년.
이런 말을 시어머니에게 듣는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상상도 못 한 상황에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올 거 같다.
우리 친할머니는 이런 말을 서슴지 않고 며느리에게 내뱉는 사람이었다.
내가 10대이던 시절 50대였던 할머니는, 당뇨라는 본인으로서는 엄청난 중병을 앓고 있었다.
본인 건강을 위해 하루 4번 약수터를 다니면서
-새벽 5시
-아침 식후
-점심 식후
-저녁 식후
다섯인 식구의 설거지며 집안일에는 일절 손을 대지 않았고,
본인 건강을 위해 좋다는 풀을 남의 밭을 다니며 본인이 직접 캐서 달여먹을 체력이 있었지만,
며느리의 직장생활로 차려주는 이 없는 점심은, 국민학교3학년인 내가 차려주는 밥상을 안방에서 앉아서 받아먹는 양반이었다.
십 년 넘는 시간 동안 차곡차곡 쌓인 시댁과의 일로 가슴이 답답한 내가, 요즘 다시금 우리 엄마의 며느리 시절이 떠오른다.
전혀 모르고 살아오던 사람들이 신랑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나를 새로 들어온 시녀 부리듯 대할 때, 내가 느낀 기분 더러움이 폭발하고 난 뒤, 더욱 그렇다.
지금의 내가 겪는 문제와, 삼십 년 전의 엄마가 겪은 힘듦의 수준은 많이 다르다.
엄마의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화냥년이라는 욕을 서슴지 않고,
맹장염에 걸려 입원한 사람에게, 신랑 안 챙기고 지가 배 째고 누웠다고 욕을 하는 인물이었다.
아파 누운 사람에게 측은지심조차 없는 시어머니와 엄마는 어떻게 한집에서 살아낼 수 있었을까?
그때 엄마는 왜 할머니와 절연하지 않고, 돌아가실 때까지 모시고 살았을까?
집안에서 친정엄마의 고생과,
할머니의 행태를 직접 보면서도 가지지 못했던 엄마의 희생과 인내에 대한 의문이, 며느리의 입장이 되고 시댁과의 트러블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나서야, 생각나고 궁금해졌다.
우리 엄마는 왜 참고 살았을까?
어떻게 참아낼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