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를 먹다 무너진 5살 아이

[육아 에피소드] 배려와 감사를 아는 아이

by 키랭이

보통 퇴근날 아침에 집에 돌아오면 딸은 유치원, 아내는 직장에 가고 없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오늘은 두 분 다 집에 계신다. "37.5도나 나와서 병원 가려고." 그새 또 감기가 유행하나 보다. 병원 진료를 모두 마치고 딸을 등원시킨 후 시내(중소도시는 '시내'입니다. 무슨 '동' 그런 거 없습니다.)로 나갔다.


어제 선배가 백화점에 세일한다고 일러주어 갔건만 세일은커녕 정가로 잘 판매하고 있다. 매장 매니저들은 나를 한 번 보더니, 다시 한번 더 본다. 매일 제복만 입고 다니는 나는 외출복에 참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다. 최소 25도는 더 넘어가는 백화점 실내에 두꺼운 외투 위에 다시 겨울 파카를 입고 온 남성이 심상치 않았던 것 같다. 일교차가 심한 요즘 출근할 때 한번, 퇴근할 때 한번(아침) 사복을 입으니 여전히 겨울 패션...




출산이 얼마 남지 않은 아내가 보리밥과 두루치기가 당긴다 해 식당으로 이동했다. 밥이 나오기 전 종이가방에 들어있는 옷을 들어 보이며 갈아입었다. 연애할 때 사서 지금껏 함께했던 동지들은 종이가방 속으로 사라졌다.


내 국은 왜 왼쪽에 계신지. . .


허겁지겁 밥을 먹으며 아내 얼굴을 보니, 이제 좀 생기가 도는 것 같다.


"키랭이, 나 어제 청소 싹~ 해놨다~"

"왜? 몸도 무거운데 그냥 쉬지~"


"아니, 어제 별이(가명) 놀러 온다고 해서 치웠지"

"아이고, 고생 많았네."


"하은이가 진짜 대견한 게 어제도 동생이랑 너무너무 잘 놀고 잘 알려주고 하더라고"

"오~ 역시 대단한걸?"


자식자랑은 밖에 가서 하면 실례지만, 부부의 대화는 죄책감이 없다.


"그런데 어제 진짜 웃긴 일 있었어"


아내는 내 비번 때마다 꼭 에피소드 하나씩 풀어놓는다.


"보통 저 나이(늦은 6살, 사실상 5살) 때는 자기 물건 손대는 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 그런데, 별이가 손을 대도 잘 참고, 어른들 눈치도 살피더니 '이리 줘봐, 이거 내가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줄게'하면서 다정하게 이야기하더라고. 내가 봤을 때는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닌데, 그래도 딴에 언니라고 참으면서 노는 것 같아. 알잖아 둘이 친자매 같은 거"


"그렇지?"


"그런데 결국 터지고 말았어."


"왜?"


"별이가 벽에 붙어 있던, 하은이가 만든 젤리 스티커를 살짝 떼더니 찢어버렸지 뭐야. 별이 엄마가 '별아~ 안 돼~~~'라고 탄식을 딱 하는데, 하은이가 울음을 터뜨린 거야"


"아이고 저런"


"그러고 별이는 엄마랑 집에 돌아가려는데, 그렇게 울던 애들이 서로 가지마라고 끌어안는데 어찌나 우습던지. 아무튼 별이랑 엄마랑 가고 하은이 달래줄 겸 딸기를 씻어 줬거든. 딸기를 맛있게 먹던 하은이가 물어보더라고 '엄마, 딸기 진짜 맛있어요~ 이거 도대체 누가 사 오신 거예요~~'라고 묻길래, 이거 아까 별이 엄마가 하은이 먹으라고 사 오신 거야.'라고 대답하니까 하은이가 뭐랬는지 알아?"



내가 그랬으면 안 됐는데!!!



맛있는 딸기를 먹던 6살 아이가, 자신의 행동이 상대방과 그 상대방과 연결된 사람의 마음까지 챙기고 신경 쓴다는 사실이 무척 신기했다.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아이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기쁨과 감동을 준다.


그 어떤 대작가가 써도, 그 어떤 감독이 디렉팅해도 아이가 직접 가져다주는 에피소드만큼 재밌는 건 또 없을 것 같다.(면서, 왕사남은 좀 재밌게 봤다, 후후)


한바탕 웃은 뒤 시곗바늘을 빠르게 돌렸더니, 어느새 또 하루가 흘러간다.


- 하은이랑 짝궁 재우고 총총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