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아이 재우는 방법(비법 없음)
육아를 해보니 아이의 잠투정은 기상 후 잠투정과 취침 전 잠투정으로 나뉘는 것 같다. 아침 잠투정은 낯선 세상과의 첫 싸움이고, 밤의 잠투정은 잠과의 마지막 싸움이다.
아빠의 전투는 조금 다르다. 아침은 식사와 등원, 출근이라는 속도전과 개별 미션을 깨 나가는 국지전이 벌어지고, 밤은 딸 한 명을 재우기 위한 장기전이자 집중전투가 이어진다.
취침 전 아내는
취침 전 아내는 '자는 척'을 한다. 무심해 보여도 '자는 척'은 의외로 잘 먹히고, 지인들도 효과를 보고 있는 아이 재우기 방법 중 하나다. 나보다 훨씬 많이 하은이를 재워 본 결과 찾은 '노하우'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자는 척'하다가 그만 10시간 동안 강제 수면에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할 일이 태산일 때 남편은 일하러 가고, 잠까지 들어버리면 새벽에 놀라서 깨곤 한다. ('미... 미안...')
취침 전 키랭이는
취침 전 나는 '제한을 걸고 요구를 들어준다' 읽을 책의 개수를 스스로 정하게 하고, 역할극의 횟수도 스스로 제한하게 해서 그 횟수가 끝나고 나면 잠들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역시 단점이 있다.
역시 아내가 현명하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것이다.('혀... 현명하다...')
여자 말을 잘 듣자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의 개수는 3권까지인데, 하은이는 늘 5권 정도를 가져온다. 그림이 글보다 큰 것을 원하지만, 꼭 그 속에는 에세이 같은 분량의 책이 섞여있다. 그래서 하은이에게 시즌 1, 2, 3로 나눠서 읽어줄까도 고민해 봤다. 아직 진행 중인 신체화장애(호흡부전) 덕분에 불편한 자세로 오래 말하는 게 여전히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이면 아내가 하은이에게 잘 이야기해 준다.
"하은아 아빠 이제 주무셔야 된대~"
그러면 이 귀여운 5살 따님은 한 마디 더 하신다.
"아빠, 무슨 인형 할래? 나는 토끼랑 사자"
그래도 역할극은 좀 낫다. 누워서 흐름만 맞추면 되니까. 아이는 순수한 상상력으로 반전의 반전을 만들어 막장 동화를 계속 생산해 내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다. (끝날 틈도 없다)
그래도 요즘은 크면 클수록 자야 하는 시간임을 깨닫고 잘 돌아누워준다. 북극곰 할머니처럼 돌아누워 잠을 청하는 하은이의 뒷모습을 한참을 바라보다 슬그머니 방을 빠져나가면 어김없이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아빠, 물 주세요.
"어어~ 하은아 물 줄게~"
밤에는 늘 따뜻한 물을 마셔야 한다는 하은이는 미지근한 정수물을 따뜻한 물이라 믿으며, "아이 따뜻해." 하더니 컵을 주고 다시 돌아눕는다. 돌아 누운 채 "아빠, 잘 자요"라고 한마디 해주면 금세 또 마음이 녹아 흐물흐물해진 채로 방을 나서면,
키랭이, 나 물 좀
"어어~ 시원한 물? 따뜻한 물?"
그럼 옆에서 듣던 하은이가 다시 돌아누워 엄마를 쳐다보며,
"엄마, 밤에는 따뜻한 물(정수) 마셔야지."
라고 상황을 정리해 준다.
학창 시절 일진은 좋은 기억이 없다. 하지만 우리 집 일진은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 500원을 모아 와 빵을 사달라고 하면 5,000원짜리 빵을 사주고 10,000원을 거슬러 주고 싶다. 아이의 한마디 한마디가 꽃처럼 향기가 가득하다. 아내의 배려와 사랑도 '물셔틀 아빠'의 좋은 연료가 된다.
얼른 재우고 자유롭게 쉬고 싶은 마음이야 왜 없겠냐마는 살아보니 그렇더라. 육아의 비법은 따로 없는 것 같다. 그저 아이를 바라보고, 귀를 기울이는 것. 마음을 조금씩 보내는 것이 최고의 육아비법인 것 같다.
내일 밤도 어김없이 다섯 권의 책을 가지고 올 것이다. 나는 물을 뜨겠지. 그래도 행복하다. 언젠가 이 한 번의 밤들이 추억이 되면, 나는 이때를 그리워하겠지. 그리고 어느새 부쩍 자란 딸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딸, 밤에 추우니까, 따뜻한 물 마시고, 따뜻하게 해서 자.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