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을 인식하기 시작한 5살 꼬마숙녀
"아빠, 저 생일 언제예요?"
"생일?"
6개월 전
이 질문이 무려 6개월 전부터 시작되었다. 유치원에 처음 가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달에 한 번씩 친구들의 생일파티를 보던 5살(만으로는 3살) 꼬마아이가 문득 궁금해진 것 같다. 이 때는 몰랐다. 생일 이야기가 얼마나 확장되어 갈지는.
"아빠, 저~~ (베시시 웃으며) 엄청 예쁜 그 옷 입고 싶어요. 그, 색깔이 빨갛고 엄청 멋있는 거요. 스파이더맨 그 옷 입고 싶어요.
유치원 마치는 시간에 데리러 가니 하은이가 뭔가에 잔뜩 들떠 있었다. 그런데 웬걸, 드레스가 아니라 남자아이들이 즐겨 입는 옷을 입고 싶다며 노래하는 것이 아닌가.
"아... 아! 하은아 혹시 오늘 친구 생일이었어?"
"네, 아빠, 권 00 오늘 생일이었어요. 그런데, 스파이더맨 입고 왔어요. 엄청 멋졌어요. 아빠... 저도 스파이더맨 옷 입고 싶어요."
유치원 막내반을 다니는 하은이는 이 날 이전까지만 해도 옷투정을 하거나 입고 싶은 옷을 잘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주 신기한 모습이라 나도 들떠서 물어봤다.
"하은이, 생일 때 스파이더맨 입고 싶어?"
"네! 어~~~~ 엄청 멋진 스파이더맨 옷이요."
남자아이가 입고 온 스파이더맨 옷이 부럽고 멋었나보다.
"아빠 그리고 소개도 해주고 싶고, 이야기도 들려줄 거예요"
2개월 전
생일이 정말 코앞으로 다가오자 하은이의 언어도 조금씩 늘어갔고, 표현도 다양해졌다. 그리고 요구(?)도... 아주 구체적으로 바뀌고 있었다.
밥을 먹을 때마다 식탁 위에 있는 탁상달력을 넘겨가며 자기 생일을 확인하는 통에 날짜 개념을 조금 배우기 시작했고, 우리 집 달력은 늘 10월에 멈춰있었다. 4월로 바꿔놓으면 저녁에 10월로 바뀌어 있고, 5월에도 10월, 6월도 당연히 10월로 가 있었다.
"아빠, 엄마, 저 생일 아직 멀었어요?"
생일이 계산대 앞에 줄 서 있으면 금방 차례가 돌아오는 게 아니라 잔뜩 기대하는 아이에게 오래 걸린다고 말하기는 미안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말할 때마다 입술을 빼쭉 내밀며, 눈썹은 8시 20분을 가리키는데, 이 모습도 너무 귀여워 놓칠 수 없는 명장면 중 하나였다.
생일 며칠 전
나뭇잎 사이로 살랑살랑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타고 선물처럼 우리에게 다가온 하은이의 생일은 계절이 주는 시원함과는 별개로 환절기라는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올해는 감기도 잘하지 않고, 건강하게 잘 보내나 했지만, 생일을 10일 정도 앞두고 그 녀석이 찾아왔다.
감기 & 중이염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내도 코로나에 감염되어 명절 전 주부터는 양쪽을 케어하느라 아내도 나도 매우 지친 한 주였다. 39.3도까지 열이 치솟는 하은이를 케어하며 어떻게든 버텼는데, 하루 2시간씩 자고 24간 근무서고 다시 2시간씩 쪼개 자느라 나도 점점 지쳐갔다.
다행히 하은이는 아플수록 더 어른스럽게 행동하며, 아빠와 엄마의 부담을 덜어주었고 아내도 조금씩 회복해주고 있었다.
명절에는 북극곰할머니(하은이 친할머니 애칭)가 4번만 자고 일어나면 선물을 사준다고 했었는데, 나흘동안 아침에 잠에서 깨자마자 기대하고 설레며 눈을 반짝이던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일주일에 한 번씩 선물을 사주고 싶을 정도였다.
"하은아! 내일은 너의 진짜 생일날이야. 진심으로 축하하고 아빠가 많이 사랑해"
다음날 당번 근무라 장모님 댁에서 조촐하게 생일케이크를 자르며 축하해 주었다. 그런데 하은이가 또 엉뚱하고 순수한 말을 하는 바람에 우리는 또 한 번 크게 웃을 수 있었다.
"우와, 아빠 그럼 유치원에서 생일파티 한건 가짜 생일이었어요?"
"하하! 아니, 생일을 모아서 하느라 그랬지"
"아, 생일 또 하고 싶다. 만날 생일 파티하고 싶다."
"히히, 내년에도 생일 있으니까 그때 또 하자"
옆에 있던 아내가 한 마디 거들며 웃음도 무르익어갔다.
딸의 4번째 생일, 처음으로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날짜를 세기 시작했다. 선물을 기대했고, 입고 싶은 옷도 생겼다.
"우리 애는 옷투정을 안 해서 좋다"는 바보 같은 아빠의 기대(?)는 와르르 무너졌지만, 이제 진짜 조금씩 여자 아이로 성장하고 있는 게 보여 가슴 뛰고 설렌다.
5번째 생일은 또 어떤 다른 행동을 하고 어떤 말을 할지도 궁금하다.
뻔한 결론, 뻔한 이야기지만, 아이의 성장은 부모의 기쁨이고, 아이가 성장하며 부모도 성장하는 것 같다.
4번째 생일 축하해 하은아.
건강하게 키워줘서 고마워 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