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할머니를 치료하러 간 5살 꼬마 의사
현장은 늘 테마가 있다. 하루 단위 테마. 주 단위 테마. 계절별 테마.
"오늘은 복통이 대부분이네."
"오늘은 외상이 계속 있는 날이구만."
"오늘은 어머님들이 많이 아프시네."
운동선수가 땀을 흘리면 한쪽 방향으로만 닦는 것 같은 그런 징크스가 아니라, 정말, 정말 테마가 존재한다.(고 믿으며 근무하고 있다.) 하루 동안의 출동내용이 비슷한 것이 많다는 것은 아마도 우리가 사는 모습 또한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난주는 유달리 어머님들의 복통과 두통 호소가 많은 한 주였다. 어머님들은 통증이 시작되고 바로 신고하는 법이 없다. 참고 참고 또 참는다. 자식들에게 전화라도 하면 될 텐데, 그마저도 참는다. 안부전화를 하는 자식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제야 실토(?)하신다.
"어머니, 몸은 좀 괜찮소?"
"야야~ 괜찮다. 너는 밥 잘 챙겨 먹고 다니제?"
한 번에도 잘 이야기 안 한다. 몇 번의 반복적인 심문을 하고 난 후에야 겨우 자백(?)하시니 말이다.
"병원 좀 가봐요 어머니"
"그래그래, 내 알아서 할게"
한참을 참으시다 병원을 가시거나, 자식들의 신고로 119 구급대가 출동한다.
'북극곰(키랭이가 부르는 키랭이의 엄마의 별명)은 잘 있을까...'
엄마도 참말이지 절대 먼저 전화를 해 아프다고 말씀하는 경우가 없다.
'아프다고 하면 자식들이 걱정할까 봐 그런 거겠지. 나도 지금의 엄마 나이가 되면 똑같이 하겠지...'
전화해 볼까 말까 망설이다, 출동 갔다가, 전화해 볼까 말까 하다가 집안일했다가. 그렇게 불효자식의 시곗바늘은 또다시 한 바퀴 돌아간다. 산 너머로 해가 다시 떠오르고 하루가 시작되고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오빠, 엄마 입원했대"
"응?"
"교통사고 났는데 어제 입원했다고 하네"
"응? 왜... 말을 안 했대?"
"많이 다친 게 아니라서 그랬다고 하더라고"
"그래도..."
"엄마가 손님 내려다 주려고 비상등 켜고 갓길에 정차했는데, 뒤에서 오던 차가 엄청 세게 받았다고 하더라고"
곧바로 아내와 아이와 함께 병문안을 가기로 했다. 어떻게 하루가 지나도록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까 하는 죄책감과 입원을 하고선 말을 안 해준 엄마를 원망하며 채비를 마치고 있었다. 사실 죄책감 9 대 원망 1, 아니 죄책감 10 대 원망 0.
챙겨주는 사람 없이 병실에 누워있을 엄마를 생각하니 죄책감이 원망을 집어삼켰다. 혼자 뻘쭘해진 나는 낮에 시골에서 가져온 딸기 꼭지를 몇 개 땄다.
"아빠, 그거 하은이 거예요?" 머리를 묶고 있는 딸이 물었다.
"아, 이거 북극곰 할머니 드릴 거야"
"북극곰 할머니 왜 드려요?"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했는데, 딸기 먹고 얼른 나으시라고 히히"
"나으시라고?"
"응"
딸기꼭지를 다 따서 통에 담고, 스마트폰도 잘 못 쓰는 엄마를 위해 작은 책을 하나 챙겼다. 병원으로 출발하기 위해 거실로 나가보니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린 꼬마 의사 선생님이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접시에 음식장난감을 담고 있는 하은이를 보며) 하은아 그거 왜 챙기는 거예요?"
"이거 북꾸(북극곰을 북꾸라고 함 - 장난) 줄 거야. 할머니, 아프니까 내가 줄 거야"
"와~ 너무 고마워 하은아. 그런데 머리에 그건 뭐예요?"
"내가 할머니 빨리 나으라고 치료해 줄 거야"
"고.. 마워.. 하은아..."
(훌쩍훌쩍)
아내와 딸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꽁꽁 숨겨놨던 갬성버튼을 하은이가 그만 눌러버리고 말았다. 부비동 속으로 익숙한 콧물 대신 맑은 눈물이 차고 있는 것이 느껴져 자리를 얼른 피해 방으로 잠시 숨어들었다. 5살, 40개월 갓 넘긴 아이가 보여준 행동은 죄책감에 짓눌린 아빠의 마음을 녹여버렸다.
"하은아, 이거 쓰고 가서 할머니 치료해 줄까?"
"응? 이건 집에서만 갖고 노는 건데?"
결국 설득에 성공했다. 왕진가방을 내려놓고 열어보니 청진기와 체온계, 주사기까지 제법 그럴듯한 의료장비들이 쏟아져 나왔다. 30초도 안 되는 짧은 진료를 마친 하은이는 곧바로 "책 읽어주세요"를 시전 하며 할머니를 귀엽게 괴롭혔지만, 여전히 우리의 행복보따리 같은 녀석이다.
집에 가기 전 하은이는 (갑자기 일어나서 가더니) 같은 방 이모와 언니의 치료까지 마치는 바람에 조용하던 병실은 웃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다행히 엄마의 차를 뒤에서 박고도 사과 한마디 안 하고, 갑자기 정차한 게 문제라며 따지고 있다는 가해자에 대한 분노는 모두 가라앉았다.
따뜻한 병실에서 편안한 얼굴로 쉬고 있는 엄마를 보니 나 또한 가해자였기 때문이다. 외풍이 드나드는 차가운 골방에서 몸을 뉘이고, 24시간씩 교대로 새벽안개를 뚫고 다니는 엄마에게 안부 전화를 소홀히 한 불효자의 과실은 명백히 100으로 판명 났다.
엄마들은 왜 아프다고 말을 안 할까 궁금했는데...
나는 왜 엄마가 아프냐고 안 물어봤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