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사람은 변한대
퇴근 날 아침은 늘 비몽사몽이다. 밤 사이 큰 사건사고가 나지 않더라도, 주취자 한 명만 딱 걸리면 아침 눈꺼풀은 더욱 무거워진다. 오늘 아침은 전술평가까지 있는 날! 이제 곧 다 닳아버릴 것만 같은 무릎을 땅에 대고 가슴압박을 연신 해대니 찬 공기에 무릎이 다 시리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아버지가 내 주신 잡무를 다 마치고 나니 어느새 졸음이 밀려온다. 방안의 불을 끄고 암막커튼을 친 다음 침대로 몸을 끌고 간다. 그러다 그만 붙박이장에 딸린 거울에 내 얼굴이 비치고 말았다.
오징어
오징어 같은 몰골이 거울에 비친다. '자고 일어나면 사람이 되어 있겠지... 쿨... 쿨...'
"으악!" 친구가 구급차 뺑뺑이를 돌다가 애기 유치원 늦었다며 뭔 말도 안 되는 나한테 하소연을 했는데... 구... 꿈이었다. 시계를 보니 아내와 아이가 금방 올 것 같다. '냉동실에 뭐가 있더라.' 언제 넣어둔 건지 모르겠지만 죽순이 한 봉지 보였고, 돼지 앞다리살 한 팩이 눈에 들어왔다.
'제육... 볶음이랑... 음... 죽순이면... 된장찌개? 근데 이건 뭐지?'
커다란 검은 봉지를 열어보니 아까 잠들기 전 거울 속에서 봤던 오징어 4마리가 꽁꽁 얼어있었다. '이런 차가운 곳에 갇혀있었다니...' 순간 머릿속은 다시 정리되었고, 요리제목이 떠올랐다.
오삼불고기(삼겹살은 아니지만)와 냉이된장찌개
된장이 없어 마트에 잠시 들러 냉이도 함께 사 왔다. 3만 원 이상 구입하니, 진라면도 5 봉지 받고(이게 웬 꿀). 차갑게 굳어버린 반건조 오징어는 곧바로 물속에 투하했다. 최대한 불려서 통통하게 만들어야 한다.
양념장을 만들고, 고기와 함께 다시 볶으니 오삼불고기 완성!
어깨너머로 구경하고 있던 아내에게 잠시 물었다.
"여보... 이 오징어 언제 사 왔어?"
"아, 저번에 4만 원 치 샀지"
"4만 원? 그렇구나"
팬 위에서 뜨겁기 달궈지고 있는 녀석의 몸값은 1만 원 정도 되었다.
마트에서 사 온 냉이는 고기 기름 위에 다시 구웠다.(냉이는 삼겹살 구울 때 같이 구워 먹으면 정말 맛있다!)
요리를 기다리며 아이와 함께 기다리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다. 고개만 살짝 돌리면 행복이 바로 보인다.
된장찌개도 곧 완성되어 아내와 하은이에게 먼저 대접한 후 오징키랭이도 합석했다.
반건조 오징어는 요리과정에서 다시 딱딱해지고 말아 아쉬움을 남겼지만 아내는 흡족해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가정이 꾸려지니 평소 못하던 것도 하게 되는 것 같다. 오징어는 거울 속 오징어랑 엄마가 해준 오징어 요리만 먹었었는데, 어느새 내가 오징어를 손질하고 있다니... 나는 태생이 요리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요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식재료의 부산물들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느새 주방과 가까워졌고, 요리는 취미가 되어버렸다.
누가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했나.
내가 보기엔 사람은 변한다.
나는 지키기 위해 조금씩 변하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