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스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강변의 테라스석이 좋다고 해서 방문한 곳이다. 정말 예쁘긴 했지만, 가볍고 시원한 공기의 카페 내부에 서 있자니 고민이 됐다. 낭만인가 뽀송함인가. 그래도 굳이 문을 열고 나갔다. 난 좋은 사람들에게서 낭만을 챙기는 법을 배웠거든.
커피를 받아 앉아 주변을 둘러봤다. 머리 위에 있는 천막은 내가 젖지 않도록 막아줬지만 되려 빗방울 소리를 천둥처럼 크게 만들었다. 차라리 몸이 젖는 게 나을 만큼 소리에 흠뻑 젖었다. 저 멀리 구급차 소리가 빗소리에 묻혀 웅얼댔고, 습한 야외 좌석에 앉아 청승을 떠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듯 사람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간간이 새로온 손님들이 테라스석은 어떤지 문을 열고 내다봤지만 습하고 무거운 공기에 사진만 찍고는 서둘러 들어갔다. 그렇게 다시 테라스에는 요란한 빗소리만 들렸다. 부러 이어폰으로 귀를 막지는 않았다.
장마 기간.
아무도 여행을 떠나지 않는 건지 주말 비행기표가 아주 값싼 가격에 풀렸다. 금요일에 결정해서 일요일에 출발한 일본행 여행의 이유는 '글쓰기'였다. 관광지보다는 뷰가 좋다는 카페들만 왕창 찾았다. 큰 창이 있는 스타벅스, 콘센트가 있는 곳, 시간제한이 있는 스터디 카페, 전통찻집, 일본식 다방 등등 지도 앱에 표시된 수많은 카페 중 선택된 곳은 테라스 카페였다.
비가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햇빛과 푸른 하늘이 최고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비가 내리는 테라스에 앉아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얼마나 좋았냐면 글을 쓴다고 여기까지 와 놓고 한문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멍하니 커서가 깜빡이는 화면을 보며 어지러운 머릿속을 그냥 어지러운 그대로 뒀다.
뭐라도 적어 내려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데 문득 너무 조용한 것 같아 고개를 들었다. 빗방울은 쉴 새 없이 강 위로 동심원을 그리고 있었다. 여전히 천막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요란했다. 왜 조용하다고 생각했지? 웃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뭔가 뜨끔하고 지나갔다. 알아채기도 전에 지나가 버려서 머릿속이었는지 마음속이었는지 구분조차 되지 않았다. 뭔가 생각이 날 것 같기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기도 한 것 같지만 역시 모르겠다.
무언가 강렬한 걸 느낀 것 같은데 명치께가 울렁거릴 뿐이었다.
마감을 아직 끝내지 못해서 불안한 건가.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한 건가. 혼자라 외로운 건가. 저녁 약속도 취소하고 혼자이고 싶은 건가. 이 기분의 이유를 생각해 봤지만 이렇다 할 정답은 발견하지 못했다.
발은 다 젖고, 습한 기후에 땀이 줄줄 흐르고, 글도 잘 안 써지는 이번 여행. 그래도 나는 비 오는 날 한 번 더 떠나고 싶다. 주말에 비가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여행을 계획하고 싶다. 그날 카페에 앉아 느꼈던 걸 한 번 더 경험하고 싶다.
멀리 떠나 온 여행에서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이 아닌 나를 위한 일에 몰입했던 그때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