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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

by 여름의푸른색





아무도 없는 외딴섬. 나는 이 섬에 홀로 서 있다. 내가 볼 수 있는 건 오직 바다와 하늘뿐이다. 짙은 회색빛 세상을 보고 있으면 마음 깊숙한 곳까지 검은 곰팡이가 핀다. 검은 점들이 번지고 흩어지며 영역을 넓힌다. 적당히 쿰쿰한 냄새를 들이마시며 내 몸의 일부인 양 살아가기로 했다.




나는 처음부터 그 점들을 걷어낼 생각이 없었다. 검은 형체가 퍼져나가는 걸 지켜보기만 했다. 무기력한 마음이 똬리를 틀고 자리를 잡았다. 나는 저항 없이 가만히 있었다.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되려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눈을 감고 있으면 지나가겠지. 다른 사람이 해결해 주겠지.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으니 일단 모른척해 볼 심산이었다. 섬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온통 어두웠다. 그렇다고 캄캄하지는 않았다. 죽지 않을 만큼 채도가 빠진 세상에서 나는 글을 붙잡기로 했다. 글로 이 시간을 버티고 살아내기로 했다. 글을 위해 마음을 돌보고 글을 통해 나를 바라보았다. 마주 보는 거울이 된 시간 사이에 진짜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여전히 나는 섬에 홀로 서 있다. 달라진 건 없다. 바뀐 거라곤 내 마음뿐이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마음이 나를 움직이고 있었다. 퀴퀴하게 남은 곰팡이를 걷어내기로 했다. 아무리 문질러도 공기를 타고 퍼져나가는 곰팡이를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다. 닦고 또 닦았다. 흐린 무늬만 남아있을 때쯤, 나는 알 수 있었다. 나는 무엇에 잠겨 침몰하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침몰하고 싶었던 걸까.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다. 물의 저항이 거세다. 나를 놓아주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바닷속에서 먹먹한 소리를 들으며 살았던 시간을 거슬러 밝은 빛의 공간으로 헤엄친다. 모든 것이 생경하다. 수면은 나에게 변곡점이었다. 우울한 바다와 일상 사이의 작은 점이었다. 적당한 습도, 선선한 바람 숨 쉴 때마다 은은한 은목서의 향기가 느껴졌다. 멈춰있던 감각이 하나씩 돌아오고 있었다.




오늘을 섬에서 바라보는 하늘이 맑다. 내가 알던 바다빛도 느껴진다. 마음의 색이 바뀐 것이다. 눈을 통해 들어오는 색이 선명하다. 혼자라고 생각했던 섬에서 조금씩 육지를 향해 나아가기로 했다. 바다를 건너 평범한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흙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어색한 듯 두리번거리고 있지만 익숙한 풍경이다. 내가 있던 섬으로 시선을 돌리자 섬은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지고 있다. 나는 그곳에서 무엇을 보고 있었던 걸까.

나는 지금 건너편에 서서 점 하나를 응시하고 있다. 물결에 아른거리는 작은 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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