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일하는 엄마

시작

시작은 늘 설렌다. 일을 시작하던 날도, 아들을 만나는 날에도, 독일에 도착한 날도 마음에 일랑이던 감정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설레던 순간을 뒤로하고 현실에 들어서자 9-5시까지 쉴세 없이 일이 쏟아지고, 아기의 식사와 픽업을 책임져야 할 육아도, 어설픈 김치를 담가먹는 독일 생활도 다 폭주기관차처럼 달렸다.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치열한 일상에 치여서 남는 기억이 한 줌뿐이다.


올해 들어 여섯 번째 독일밖 여행을 하고 있던 며칠 전이었다. 독일 생활 9개월 동안 여행을 열심히 다녔다. 휴일이 끼어있을 때마다 차를 끌고 나섰다. 이탈리아, 스위스, 벨기에, 오스트리아, 프랑스.. 대학생 시절 흔하디 흔했던 유럽 배낭여행 한 번 못 해 본 아쉬움을 쏟아내 듯 기회가 닿을 때마다 길을 나섰다. 20대 때 이런 공간, 문화, 역사, 사람을 만나게 되었으면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는 좀 달라졌을까 나는 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다 아이가 집에 돌아와 무심코 “이탈리아는 너무 멀어”, “스위스는 케이블카가 많아서 좋아”하고 말하는 걸 들었다. 이 아이에게는 주변 나라들이 너무나 가까이 있다. 국경 없이 차를 몰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이 아이의 머릿속에는 국경이 허물어져있다.


이런 노마드로 사는 느낌은 뭘까? 내가 40여 년 살았던 나라의 공간감과는 확연하게 다른 곳에서 자라는 아이가 어떤 말과 생각을 남기게 될지 너무 궁금해졌다.


바로 그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래 기록을 해보자! 아이가 나에게 주는 경험과 영감을 나누고 싶어 졌다. 그 사이에서 나를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생긴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생각하니 설레는 마음에 저절로 새벽에 눈이 떠진다. 독일에서 일하는 40대 엄마의 일상을 털어놓을 용기가 조금 생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