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회사의 어느 임원 분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나는 기꺼이 도와드렸다.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담당 부서에 물어보고 어찌어찌하여 방법을 찾아 문제를 해결해 드렸다. 원하시던 대로 되는 걸 보고 나서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그 임원 분은 말씀하셨다.
"친절하시네요"
이 회사에 입사 후 2달이 지날 무렵 이후부터, 어떤 계기로 인해 나는 직속 상사와 어느 윗분과 사건이 있었고 그분들과의 언쟁에서 나는 지지 않았다. 나는 할 일을 했다고 생각했고 부당하다 생각했기 때문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 사건은 나보다 한참 더 오래 회사생활을 했기 때문에 본인이 맞다는 윗분의 논리로, 나는 그저 조직을 무시하는 직원인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 이후 나를 싫어하게 된 두 사람이 참 열심히도 오너를 비롯한 회사 임원들과 다른 직원들에게 나에 대한 험담을 한 덕분에 윗분들의 나에 대한 평판은 매우 안 좋았다고 한다. 직속 상사의 미움이 계속되어 다른 부서로 이동이 되던 날, 직속 상사는 짐을 옮기는 나에게 이야기했다.
"시장 조사 자료는 계속 보내줘요, 자료 좋잖아~"
참으로 감사하게도 나는 새롭게 신설된 부서에 처음 오게 된 정말 좋은 상사를 만나, 편하게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부서를 옮기기로 하고 처음 뵌 날, 상사 분이 말씀하셨다.
"나도 소문을 듣긴 했지만, 소문만 듣고 사람 판단하고 싶진 않아요. 재미있게 일해봐요"
그리고 나와 같이 일한 지 한 달쯤 지나자 다시 말씀하셨다.
"올해 제 목표는 하우주님의 평판을 바꾸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 이직해요."
그리고 6개월도 안 되어 상사 분의 약속은 지켜졌다. 나는, 칭찬에 인색한 오너에게 나의 업무에 대해 잘한다는 피드백을 받았고, 나의 상사 분이 어느 자리건 기회가 될 때마다 나를 칭찬하고 다니셨기에 다른 임원들 그 누구도 더 이상 나에 대한 뒷얘기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무능했던 전 직속상사는 회사에서 짤리듯 나가게 되었다. 여전히 나보다 한참 더 오래 회사생활을 했다는 다른 윗분은 회사의 최대 고객사의 임원 출신이라는 이유로 회사에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겠다 하는 모든 프로젝트들이 엎어지고, 자리를 이용해 잘 되는 프로젝트들에 간섭하는 순간 프로젝트들이 망가지는, 놀라운 모습들을 보여주며 말이다. 윗분은, 사람이 어디까지 추해질 수 있는가, 인간의 바닥이 어디까지인가를 전 직원에게 보여주며, 신의 입장이라면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 명의 제외도 없이 한 회사의 전 직원이 싫어하는 뒷방 늙은이가 되어 버렸다.
어쨌건 이런저런 히스토리들로 나를 잘 모를 임원분들에게, 상사 분의 칭찬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사람의 잔상은 여전히 입사 초기 좋지 않은 평판의 모습이 남아 있을 터였다. 지금도, 그때도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언젠가는 알아주겠지, 그런 마음도 없었다. 그들이 알아야 할 이유도 없고,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아침의 그 임원분도, 데면데면하게 인사만 하다가 같은 층에 있다는 이유로, 마침 사무실에 나만 앉아 있다는 이유로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다. 나는 시간도 있었고 여유도 있었고,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그분에게 친절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뿐이었다. 그런데도 "친절하시네요"라는 한 마디가 마음에 울렸고, 그 안에 담긴 의미들을 알 듯했다.
평가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았지만, 회사에서 직장 상사의 괴롭힘은 상처로 남았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엔 좀.. 과했다. 싫어하기로 마음먹고 괴롭히는 윗사람을 버텨내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직을 하지 못하는 건 내 탓이라 생각하니 분노는 점점 자책감으로, 자괴감으로 변했다. 여전히 나는 그 감정들과 나 스스로에 대한 불신과 싸우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여전히 그 윗분이 지나가다 괜히 들러 질문만 해도 나의 표정은 굳는다. 인사를 가장한 돌려 까기 농담에, 친한 척하며 간식을 얻어먹으려고 책상을 발로 차는 행위에 내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다시금 분노가 올라온다. 불과 얼마 전에도 답을 정해놓고 하는 질문에 답하기가 싫어서, 그리고 나의 대답으로 또 언제건 시비를 걸 것임을 알기에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않다가 서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평행성을 달리던 언쟁은 윗분이 나에게 커뮤니케이션 그렇게 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뜨면서야 끝이 났다. 어쩌면 나의 상처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었다.
상처를 가지고 산다는 것은 의자를 머리 위로 들고 한참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출근길 유튜브에서 들었다. 의자를 들고 내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니 눈물이 주룩 하고 흘렀다.
다행히도 아침에는 눈물만 흘렸지만, 글을 쓰다 보니 마음이 정리되면서 무겁게 들고 있는 이 의자를, 땅바닥에 있는 힘껏 내동댕이쳐 산산이 부숴버리는 상상을 한다. 언제고 몇 번이고 나는 슬금슬금 올라오는 의자를 던져 버리리라 다짐을 한다.
그리고, 나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내가 다른 이들에게 친절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나의 부모님이 그렇게 가르쳐줬고 지금껏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달라이 라마는 '나의 종교는 친절'이라고 했다. 마음을 열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에 친절할 것.
별 의미 없었을 수도 있을 ’ 친절하시네요' 한 마디가 건넨, 마음의 큰 울림을 경험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