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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 Mar 12. 2024

상심 혹은 소망이 보이나요?

렘브란트의 63세의 자화상


 이마와 코끝에 반사된 빛줄기와 함께 화폭 밖을 꿰뚫는 한 인간의 눈빛이 있다. 여러 차례 두텁게 칠해진 얼굴을 제외하고는 다른 부분은 어둡고 불분명하다. 나이를 짐작게 하는 움푹 꺼진 눈과 눈 주위의 주름은 돌아치는 둥근 붓질로 물감 쌓아 그렸다. 두툼하고 처진 볼살은 캔버스 표면에 실제 주름을 만든 것처럼 두터운 물감을 발라 세심하게 조각했다. 입술은 밝은 이마와 대비되는 명암 처리로 그 선은 분명하지 않지만 가볍지 않은 내면의 표정을 전달한다.

[그림1] 홍콩 고궁 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Rembrandt, <Self Portrait at the Age of 63>, 1669

이 그림은 홍콩 고궁 박물관의 내셔널 갤러리 특별전에서 전시 중인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0669)의 자화상이다[그림1]. 그는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로 서양 미술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화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렘브란트는 20대에 이미 암스테르담의 권력자들을 주요 고객으로 하는 다양한 주제의 회화로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 드로잉과 판화를 포함한 약 85점의 자화상으로 그 누구보다 독특하고 신비로운 화가의 반열에 올랐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이전의 초상화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19세기 이후 역사화나 종교화를 높이 평가했던 아카데미의 권위가 줄어들면서 점차 사람들은 화폭 속 인물의 성격과 심리가 가진 미묘함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따라서 ‘실제 인간’으로 그려진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높은 관심과 다양한 해석과 함께 ‘시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성’을 지닌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그림2] Rembrandt, , <Self Portrait at the Age of 34> , 1640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40여 년 동안 시기별로 제작되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화가의 삶과 연결되는 자화상이 가진 희로애락에 매료되었다. 또한, 당시 화가들은 초상화를 그릴 때 현실적인 모습보다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작품을 완성하고자 했다. 렘브란트 역시 전반기에 그려진 자화상에서는 값비싼 옷을 입고 자신감 있는 자세로 자신을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인물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가장 권위 있게 그려진 것으로 알려진 34세의 자화상에서도 렘브란트는 관람자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친밀함이 느껴진다. 이 친밀한 시선을 느끼는 순간 그림 속 인물은 현실과 거리를 둔 예술가가 아닌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실제의 인간으로 다가온다.      


 다시 홍콩에서 전시 중인 1969년의 자화상을 살펴보자. 그는 이 그림을 그린 해에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렘브란트는 젊은 시절의 큰 성공과 달리 인생의 후반부에 많은 역경과 슬픔을 겪었다.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사스키아(Saskia van Uylenburgh)와 결혼 후, 암스테르담에 스튜디오를 열고 고객들의 밀려드는 주문을 받았다. 그의 행복은 사스키아와 영원할 것 같았지만, 그녀와 낳은 세 자녀를 어린 나이에 잃고, 사스키아 역시 1642년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아내를 잃은 후 렘브란트는 10년 동안 자화상을 그리지 않았다. 이후, 그는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져 1656년 파산하게 된다. 그리고 사스키아가 낳은 마지막 아들 역시 이 자화상을 그리기 직전 해인 1668년 20대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이러한 우여곡절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죽기 직전 그린 자화상에서 상심과 슬픔을 읽는다. 그의 눈빛에 시선이 가고 그 시선에 사로잡히는 순간 그의 심리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낀다. 비극과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얼룩진 말년의 정신적인 측면과 그 흔적을 자연스럽게 읽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림3] Rembrandt,<Self Portrait at the Age of 63>, 1669, 얼굴과 손 세부

그러나 미술관에서 렘브란트에게 또 하나의 나였던 이 자화상을 마주했을 때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닿고자 했던 사실성이다. 붓 자국들이 만들어낸 얼굴은 이 그림이 63세가 된 자신의 얼굴을 어떻게 그리고 칠해야 하는지 완벽히 알고 그린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실제 얼굴의 선과 표면을 관찰하기 위해 거울에 반사된 자신을 강렬하게 응시하는 또렷한 눈빛은 결국 가장 독특하고 창조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렘브란트는 주변부보다 밝게 그려진 얼굴을 제외하고 모두 어둡게 처리했지만 한 군데를 더 밝게 표현했다. 실제로 붓이 들려 있었지만 그림 속에서는 부드럽게 모아진 손이다[그림3]. 이 흐릿한 손에서 자화상을 통해 예술적 실험을 멈추지 않은, 완벽함을 향한 화가로서의 욕망에 가까운 소망이 읽힌다.


   


PLACE 홍콩 고궁 박물관

홍콩 고궁 박물관은 총 9개의 전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설전시를 통해 베이징 고궁 박물관에서 대여한 중국 고미술품을 감상할 수 있으며 특별전시로는 현재 《런던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보티첼리부터 반 고흐까지(Botticelli to Van Gogh: Masterpieces from The National Gallery, London)》가 전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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