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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소로 Mar 28. 2024

'쿠팡알바' 답을 주었다

시작을 알리는 봄이 왔다. 설렘과 싱그러움이 움트는 생각만 해도 이루어질 그런 날이다. 둘째 아이도 씩씩하게 가방을 둘러메고 유치원에서 학교로 발을 내디뎠다. 첫째를 보낼 때 아련함은 없고 복숭아빛 발그레한 내 딸 잘 키웠네 뿌듯해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여전히 비리비리 첫째는 중학년 10세가 되었다. 고로  학교밥 좀 먹어서 이제 웬만해서 눈치껏 해결능력이 생겼다. 아프면 양호실과 선생님께 말하면 시시비비 큰소리보다 논쟁이 해결되는 능숙함이 생겨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나만 잘하면 되는구나 몸이 밑천이니 영양제도 챙겨 먹고 안 하던 헬스도 하면서 건강 플러스 알바도 잘해야겠다 다짐했다. 



얼떨결에 시작한 쿠팡 알바가 얼레벌레 5회를 넘겼다. 금토 바싹 하면 돈 들어오고 주말에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어서 나쁘지 않았다. 딱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신청에서 미끄러졌다. 알바란 원한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사회 초년생처럼 이제야 깨달았다. 일할 때는 힘들고 없으면 아쉬운 출근확정 문자가 고맙습니다 저절로 고개 숙여지니 항상 감사하라 어리석은 자여 누군가 지켜보는 것처럼 줬다 빼앗긴 기분이 든다.



가족은 각자 자리에 맡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아르바이트비를 모아 아이들 학원비를 내고 남은 돈으로 첫째 생일에 치킨도 멋있게 주문해 줬다. 돈 가치는 같은데 기쁨이 더해진 건 무엇일까 카페일을 하면서 벌었던 것보다 주저앉지 않고 다른 일을 해서 벌어왔다 셀프칭찬일지도 모르겠다. 장녀이자 엄마로 이런 길을 가보라 누군가 정해주지 않고 늘 내가 결정하고 해결했다. 때론 서글펐고 성공하지 못했다. 공부를 잘했더라면 삶이 달랐을까 여러 번 생각했지만 공부를 썩 좋아하지 않기에 긴 아쉬움도 없다.




둘째는 부모의 말보다 선생님의 말을 절대적으로 따르기에 학교 생활도 잘했다. 준비물도 꼼꼼하게 체크하고 전달 사항도 충실하게 엄마에게 알려주는 똑순이는 물통도 꺼내 싱크대 위에 두고 씻으라 잔소리하지 않아도 화장실에 들어가는 딸이 어찌 이쁘지 않을까 싶다. 저녁을 준비하는 사이 남편은 세탁물을 담고 있었다. 겨자색 바지를 들어 올리는 남편은 둘째에게 혹시 바지에 똥 쌌냐고 물어봤다. 둘째는 그제야 오늘 팬티에 똥이 묻었다 고백했다. 급해서 그럴 수도 있다 넘기려는 찰나 팬티도 네가 빨았냐는 말에 씩 웃으면 내가 샤워하면서 깨끗하게 세탁했다고 자랑하며 말하는데 느낌이 좋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물어보지 않을 언제 그랬니?라는 물음에 1교시 중에 배가 아파 수업 중에 바지에 똥을 쌌다는 아이의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무너졌다.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가서 본인이 알아서 처리했다며 말하고 지나갔다. 



학교선생님, 돌봄 선생님, 미술학원선생님 냄새가 났을 텐데 누구 하나 어떻게 아무도 몰랐을까 생각이 스칠 겨를도 없이 아이가 쉬는 시간에 해결하려고 아등바등했을 모습이 떠올라 먹먹했다. 화장실을 데리고 가서 엉덩이를 보니 새빨갛게 발진이 올라왔다. 왜 말하지 않았니 선생님이 엄마에게 전화해 줬을 텐데 말하자 아이는 그런 것이 가능할 거라 생각을 못했다고 했다. 담임선생님이 남자라 아이도 익숙하지 않았을 테고 옷도 없고 해결이 안 된다 판단해 평소 자조성 강한 아이가 스스로 해결했을 거라 짐작만 할 뿐이다. 집에 와서 말이라도 하지 얼마나 아팠냐 물어보니 그제야 엉덩이가 많이 아팠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똥을 싼 것이 부끄러워서 혼자 후다닥 들어가서 씻고 팬티까지 깨끗하게 세탁했을까 평소 내가 했던 모습을 그대로 했을 거라 생각이 들어 잘했네 칭찬을 한 것 해줬다. 1교시부터 저녁까지 뒤처리 덜 된 옷을 입고 있던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은 찢어지지만 누구보다 속상한 것은 나보다 딸일 것이다. 



일주일 만에 입학 신고식을 거하게 치렀다. 말 잘 듣는 아이라 사실 걱정을 했는데 빨리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 싶다. 수업시간에 화장실 가지 말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을 터 다음부터 배가 아프면 참지 말고 바로 화장실에 가라고 했다 소변 역시 참으면 방광염에 걸릴 수 있으니 지금 조절이 잘 안 되는 게 맞아 긴장할 수 있어 참지 말라고 설명해 줬다. (담임선생님은 그 후로도 수업 중에 소변은 참으라고 했다 소변은 쉬는 시간에 가는 것이 맞지만 절대 참지 말고 가라고 신신당부했다.)



사건이 마무리되어 한시름 놓자 천장에 얼룩이 눈에 들어왔다. 점점 번지는 것이 예사롭지 않고 천정 누수가 생겼다. 그렇지 통장에 돈이 들어오는걸 냄새 맡았나? 헛헛한 웃음이 나온다. 누수 탐지를 하니 30분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은 정말 미세하게 새고 있었다. 온수배관을 교체하면 된다는데 그분도 고개가 아리송하다 사실 미비하게 새고 있어서 1층 천정에 얼룩으로 번지는 정도라 그분도 명쾌하지 않다. 2층에 사람도 살고 있고 발 디딜 곳이 없이 모든 걸 내려놓고 생활하는 집이라 견적이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 쿠팡알바 2달 넘게 꼬박해야 할판이다. 



기운이 절로 빠진다. 아이들 챙기기, 카페처분, 쿠팡알바, 천정누수, 재취업 고민들이 쌓이는데 당장 해결이 되는 부분이 없다. 머리가 시끄러워 자연스럽게 나머지 것들이 조용해진다. 카카오톡 인스타 브런치 그로로 하고 싶은 말도 파도처럼 부서진다. 억지로 기운을 챙기고 싶지 않았다. 먹고 싶지 않으면 그냥 대충 하던 운동도 꾸역꾸역 가지 않았다. 글도 멀어졌다. 일자리를 알아보려 구직란 들락 거려보지만 시간이 맞지 않고 아이는 하루가 멀다 아파 금요일이면 여지없이 고열시작이다. 아픈 아이는 월요일마다 결석이고 주말 야간알바를 하고 온 어미는 정신을 온전히 차리고 싶지만 여의치 않다. 



한 번 두 번 다섯 번 알바를 갈수록 혼란했다. 이렇게 계속해야 하나? 일보다 수면패턴이 무너지고 쉼 없는 생각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잡생각은 핸드폰을 잡고 릴스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피식 웃어도 보고 공감도 느끼지만 마음깊이 위로받지 못했다. 글을 쓴다는 것 책을 읽는 행위가 어느 순간 사치로 느껴졌다. 그 시간에 나아질 무언가를 생각해라 채찍을 들어 올리지만 채찍이 아프다는 걸 알기에 차마 내 다리를 내리칠 순 없다. 



채찍을 내려두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 2년 동안 책을 잡았던 습관이 남아 다시 책을 잡고 꾸역꾸역 집중을 해본다. 쿠팡 알바가 들어오면 귀하게 여기고 그 시간을 마주했다. 매번 새로운 사람들은 친절했고 함께 사는 가족에게 서로 어떠한가 생각하게 되었다. 배우면서 일하는 곳이 아니라 모르면 물어보며 해결해야 하는 일은 적극적이지 못한 사람들은 난감할 터 나 역시 물어보는 게 익숙하지만 남의 일을 방해하고 용기네 가르쳐 달라고 할 땐 한소끔 큰 숨을 들이마시고 물어본다. 서로에게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은 일을 나눠하기에 그 사람이 못하면 결국 내가 더 해야 하는 삶의 이치도 깨달았다. 짧은 쉬는 시간이지만 살아가는 이야기가 들린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각자의 사연으로 감사히 여기며 오는 걸 알았다. 하루 6천 건 먹거리는 풍족하다 못해 넘치는데 사는 게 어렵다 아이러니하다. 단순한 육체노동을 하면서 생각이 켜켜이 쌓이고 질문이 하나씩 생긴다. 




요즘 읽고 있는 책





쿠팡알바는 7회가 넘어가면 4대 보험을 내야 한다. 8회 알바 후 5만 원을 제하고 13,000원이 지급되었다. 금쪽같은 돈으로 내게 책 한 권 선물했고 마음이 추운 건지 날씨가 요란한지 추웠다 더웠다 패딩을 넣지 못하는 3월도 끝나간다. 열 번의 쿠팡 알바가 끝나자 답이 조금씩 보인다. 힘들 땐 그냥 힘들게 내려앉았다 올라와도 괜찮다 마음이 시키는 글을 쓰기로 했다. 그동안 질문을 구하지 않았으니 당연하게 답을 없었다. 자신만의 유일한 삶을 사는 방법은 생각하며 사는 일상이다. 



나는 죽음은 두렵지 않다.
하지만 살아도 죽은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죽은 시간은 두렵다.

흐르지 않는 정신이,
더 숙이지 않는 고개가,
뛰지 않는 몸과 심장이 두렵다.

죽음은 몸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가 결정한다.
죽은 몸이 아니라,
죽어 있는 일상이 두렵다. 

김종원.




"내일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 보게.
그러면 지금 이렇게 살 수 있겠어?"

매일 당신에게 주어지는 
하루라는 멋진 선물을
근사하게 보내길. 

이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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