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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써린 May 16. 2023

빈둥지증후군 티저

첫째 아이가 난생처음으로 1박 2일을 떠났다. 졸업여행  겸 수련회(retreat)이다. 외동아이도 아닌데 떠나 간(?) 아이의 방을 청소하며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난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첫째 아이는 성별이 달라서 그렇지 성별마저 같았으면 나의 2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성격이 비슷하다. 딱히 무뚝뚝한 건 아닌데, 그렇다고 달려와 반갑게 인사를 하지도 않는 그런 성격이랄까. 사춘기 남자아이들이 오다가다 서로 만나면 ‘어이~’ 하고 지나가는 것 같은 그런 모자 관계다. 둘째 아이는 그러면 ‘엄마, 내가 안 반가워?’ 하고 서운해할 텐데, 나와 성격이 비슷한 첫째 아이와는 그냥 서로 그렇게 턱만 들어 인사하는 사이다.


(첫째 아이와 나의 관계는 나와 우리 부모님 관계(성격)와 똑같은데 나는 외동으로 자랐기에 우리 부모님은 나의 둘째와 같은 아이를 만나보지 못한 것 같다. 둘째 아이는 내가 가족 안에서 처음 겪는 성격이라 우주인 보는 것처럼 신기하긴 한데 남편의 어린 시절이 이랬겠지 하면서 키우는 재미가 있다.)


그런 덤덤한 모자관계인 아이가 겨우 1박 2일로 자리를 비운다고 이렇게까지 울컥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 떠나는 아이도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는데, 나도 짐 쌀 때나 배웅할 때에도 덤덤했는데 말이다.



여기서 잠깐 뜬금없을 수 있는 결혼 전 나의 이상형을 말하자면, 베스트프렌드가 될 수 있는 친구 같은 남자였다. 왜냐하면 나는 몽상을 좋아하지만 현실주의적인데, 이게 무슨 말이냐면 미래의 나를 상상할 때(몽상), 자녀를 낳아도 그들은 나처럼 독립적으로 훨훨 날아갈 테니 부부가 취미도 비슷하고 잘 놀아야 재밌게 살 수 있다(현실주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나저제나 아이들의 독립만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다. 육아와 교육의 속박과 굴레에서 벗어나 하나의 독립적 인간으로 자녀들을 사회로 내보낸 후에 오는 자유를 기다린다!


아이를 물고 빨고 한다는 그런 사랑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아이들이 무척 예쁘고, 웃기고, 재밌고, 아이 키우면서 느끼는 행복과 고통, 좌절은 모두 느끼고 있다. 그런데 아이는 언젠간 나를 떠나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진리를 늘 명심하면서 키우는 현실주의자라고 생각했다. 주변에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미래의 ‘예비사위(혹은 딸의 남자 친구)’ 혹은 ‘예비며느리(혹은 아들의 여자 친구)’에 대해 벌써부터 분노가 치민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나는 오히려 그들에게 사랑받게 하려고 혹독한 훈련을 시키는 쪽을 택하고 있었단 말이다. (예를 들어 집안일 익숙해지기 훈련, 말 예쁘게 하기 훈련 등등)



그런데, 아이가 떠난 후 방청소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아이가 오늘 방에 돌아오지 않는다. 이불정리를 해도 오늘 이 이불이 펴지지 않는다 생각하니 아이의 빈자리가 덩그러니 느껴졌다.


하교할 시간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오지 않으니 또 힌 번 울컥했다. 평소  같으면 돌아와서 샤워해라, 숙제해라, 티브이는 켜지 마라, 하는 전쟁준비 태세에 돌입할 시간이었다. 바로 이런 게 공허함인가?


딱 하루에 이런 기분을 느끼니, 나중에 진짜 훨훨 날아가면 어떤 느낌이 들지.


말 안 듣고 속 썩이면 차라리 빨리 커서 어른이나 되어라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중에 ‘빈둥지증후군’ 같은 거 모르고 그냥 속 시원하겠지? 라며, 애들 나가면 집안일 하나도 안 하고 드러누워 있어야지 했는데 겨우 하루에 우울모드에 진입했다.



코로나로 단체 여행이 수년간 중단되었다가 오랜만에 진행되어서 그런지 학교도 들뜨고 아이들도 들뜬 그런 여행이다. 휴대폰이 엄격하게 금지여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지만 연락이 불가능하다. 대신 조금 전 학교로부터 캠프파이어를 하는 아이들이 모습의  사진이 전송되었다. 촛불을 켜고 부모님 얼굴을 떠올리라고 하여 눈물을 부르는 한국의 전통(?) 캠프파이어가 아니라서 못내 아쉽다. (나는 매번 분위기에 취해 효녀심청이 된냥 대성통곡했었는데)


아이가 집 생각이 하나도 안 날 것 같아서 아쉽고 서러운 마음도 요만큼 들지만, 캠프파이어 사진을 보니 아이가 행복한 추억의 한 조각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아서 몽글몽글한 기분이 든다. 남의 일일 것이라고만 막연하게 생각했던 빈둥지증후군을 티저처럼 체험해 본 기분이 든다. 앞으로 올 아이들의 독립을 대비하여 나도 마음을 단단히 먹고 지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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