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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 e a dan Jan 25. 2024

이유 없이 싫었던 사람이
좋아진 이유

슈만 피아노 협주곡 3악장



  싫어하는 데엔 보통 이유가 있다. 대상이 무엇이든. 세상의 모든 이를 아끼려는 이상한 책임감을 가진 나지만, 이유 없이 싫은 사람이 있었다. 로베르 슈만이다. 작곡과 입시생의 필수 코스인 그의 작품 <어린이 정경> 분석 때문에 고등학생 때는 슈만과 친했었는데 한순간 마음이 식었다. 괜히 밉고, 싫고, 그를 떠올리면 인상이 찌푸려지는 게 대학생 때부터였으니 그를 이유 없이 싫어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1대 9 가르마는 너무하잖아...







  2:8까진 용서할 수 있는데, 그의 가르마가 1:9이기 때문일까. 내가 아끼는 작곡가 브람스가 평생을 사랑한 여인의 남편이기 때문일까. 난 마음에 안 드는데 사람들은 최고의 로맨티시스트라며 그의 음악을 칭송해서일까. 슈만이 싫은 이유를 억지로 찾아내려 했지만 딱히 없었다. 세상을 떠난 지 약 150년이 지난 대가를 뾰족한 눈으로 쳐다보는 방구석 작곡가. ‘와, 나 진짜 별론데?’







며칠 전, 평소에 관심 없던 클래식 유튜버의 라이브 방송을 무엇에 홀린 듯 클릭했다. 클래식 작곡을 전공한 음악 유튜버가 클래식 입문자에게 음악을 추천하는 방송이었는데 마침 슈만 얘기가 나왔다. 유튜버는 특이하게 곡 전체를 추천하지 않았고 어떤 곡의 특정 악장, 그 안에서도 좋은 구간만 따로 들려주었다. ‘이런 디테일한 추천, 더 신뢰 가는군.’이라 생각하며 음악을 들었는데 약간 뻔한 결말이지만, 그 곡은 슈만의 곡이었고 딱 5초 만에 슈만이 좋아졌다. 결국 난 슈만을 사랑하게 될 운명이었나. 







  피아노 협주곡(Op. 54) 3악장 중 마지막 1분 30초. 낭만주의 작곡가 중에서도 가장 낭만적인 음악가로 뽑히는 슈만. 자신의 수식어를 1분 30초 만에 증명했다. 칙칙한 방을 파스텔 톤으로 바꾸는, 의자에 착 붙어 있는 나를 꽃잎 위에 앉아 하늘을 나는 것처럼 만드는 마법 같은 음악. 영화 음악 같기도, 애니메이션 주제곡 같기도 한 이 부분의 화성은 슈만이 잘 쓰던 진행이라고 한다. 이 말은 즉, 나를 한순간에 홀린 매력적인 부분이 슈만의 다른 곡에도 많다는 것이다. 그의 음악을 제대로, 다양하게 들어볼 생각하지 않고 이유 없이 싫어한 나의 시간이 아까워졌다.







  슈만과 클라라, 브람스. 삼각관계라는 아주 치명적인 셀링 포인트 때문인지 슈만의 음악보다 그의 사랑 이야기가 더 유명한 것 같다. 결혼을 반대하는 장인어른과 법정 싸움까지 가 결국 사랑을 쟁취했던 슈만과 클라라. 클라라를 평생 사랑하며 슈만의 죽음 이후에도 끝까지 보필했던 슈만의 제자 브람스. 나도 사랑 얘기에 눈이 멀어 그들의 음악을 자세히 들여다볼 생각을 안 했나 보다. 새들의 지저귐이 노랫소리처럼 들리는 게 곧 봄이 오려나 보다. 다가오는 봄엔 그의 음악을 더 즐겨야겠다.














(30'35'' ~ 31'00''까지 딱 25초만 투자해 보세요! 특히 30'55'' 선율은 로맨스 영화 뚝딱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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