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 반은 아니었지만 2년 전인 2021년, 중1 때 나의 반이었던 사랑둥이가 졸업식 후 보낸 카톡이다.
2023년 우리 반 아이들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했다. 학급, 교내 행사에 협조적이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큰 관심이 없었으며 크고 작은 사고도 많이 쳤고 정이 그리 많지 않았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나의 사랑을 알아주지 않을뿐더러 교사의 애정에 딱히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즐겁지 않은 2023년의 학교생활 중에서도 가끔 미소를 머금을 때가 있었는데 이 아이 덕분이었다.
우리 반이었던 2년 전부터 사랑스러웠다. 운동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잘생기기까지 하여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 보통 이러면 거만하거나 말썽쟁이일 것 같은데 이 아이는 참 맑고 밝고 순수했다. 칭찬받는 걸 쑥스러워하면서도 호탕하게 인정할 줄 알고, 교사의 조언이나 충고도 자신을 위한 이야기임을 알며 감사히 듣는 아이. 친구들의 실수도 웃어넘길 줄 알며 어떤 일이든 크게 걱정하지 않는 낙천적인 아이.
올해, 이 아이가 중3이 된 2023년, 우리 반은 아니었지만 교과 시간에 만날 수 있었다. 또 내 앞자리에 계신 담임선생님을 보러 오는 이 아이를 매일 같이 볼 수 있었다. 하루에 몇 번을 봐도 씩씩하게 인사하는 이 아이와 달리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투른 나는 볼 때마다 젤리 몇 개, 초콜릿 몇 개를 손에 쥐여 주며 인사를 대신했다.
하루는 수업이 조금 일찍 끝나 10분 정도 자습할 시간을 줬는데, 이 아이가 평소와 달리 문제집을 붙들고 반 1등인 아이에게 속성 과외를 받고 있었다. 이해 안 가는 부분은 귀엽게 성을 내며 소리치기도 했고 또 자신만의 논리로 답지와 싸우기도 했는데 그 모습이 너무 기특해서 교탁에 굴러다니는 작은 종이에 짧게 쪽지를 써서 건넸다.
"어디 안 가. 학원 숙제여서 하는 것이든, 스스로 필요하다 느껴 공부하는 것이든 네가 바친 노력, 쏟은 시간과 열정 어디 안 가! 그러니 하기 싫고 답답할 때에도 자신을 믿고 빠이링!!"
마침 수업 종료령이 울려 쪽지를 후다닥 아이의 필통에 넣고 교실을 나왔다. 몇 시간이 지나고 사랑둥이에게 카톡이 왔다. 내가 준 쪽지를 집 책상 위에 올려놓고 찍은 인증 사진과 함께 "쌤 수능 때까지 가지고 있을게요�"라 보낸 아이,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 전에는 이 아이가 내 앞자리에 계신 담임선생님께 찾아와 감기가 심해 조퇴하겠다고 했다. 나는 빨리 나으라며 아끼는 핫초코 두 팩을 줬다. "이런 거 안 주셔도 돼요."라며 한사코 거절했지만 쌤이 아끼는 거 주는 거라고, 선생님이 주는 사랑을 받을 줄도 알아야 된다 하며 손에 쥐어줬다. 퇴근 시간이 다 되었을 때쯤 조퇴한 이 아이에게 카톡이 왔다. 내가 준 핫초코를 탄 컵을 사진 찍어 보내며 "쌤 진짜 엄청 맛있어요."라고. 그냥 받고 넘어갔을 수도 있는데 이 사랑스러운 생명체는 매번 받은 사랑에 감사할 줄 안다. 이런 어른스러운 아이에게 "쌤이 줘서 더 맛있는 거임."이라며 학생보다 더 철없는 카톡을 보내며 인사했다.
별거 아니지만 소중한 추억들을 쌓다 보니 어느덧 졸업식 날이 되었다. 평소 슬픔을 잘 느끼지 못하는 터라 이번 졸업식도 무척이나 덤덤히 보냈다. 졸업식 후 이 아이가 교무실로 찾아오기 전까지는.
졸업식을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와 업무를 보고 있는데 앞자리 선생님이자 이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내게 말하셨다. "00이가 쌤 보면 오열할 것 같다고 못 보겠다고 하더라." 넉살 좋은 아이인지라 그냥 하는 말이려니 하고 넘겼다. 그리고 몇 분 뒤 이 아이가 함께 사진 찍자며 교무실로 찾아왔다. 앞자리 선생님이 하신 말처럼 "졸업식 때 쌤 얼굴 볼 때마다 자꾸 눈물이 나오길래 엄청 참았다"라고 하며. 어색한 포즈로 같이 사진을 찍은 뒤 아쉬운 마음을 감추려고 평소보다 더 장난스러운 말투로 인사를 나눴는데 헤어지기 전 문 앞에서 아이가 말했다.
"쌤 안아 주세요."
이 말을 듣자 감정 없는 나의 눈이 촉촉해졌다. 습기 찬 안구를 들키지 않기 위해 벌떡 일어나 꼭 안아 줬다.
안아달라고 말할 용기.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많은 이유 중 하나다. 이 아이는 내가 주는 사랑을 온전히 다 알아준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을 표현할 줄 알고, 헤어짐의 아쉬움까지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아이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한 시간쯤 지나 사랑의 메시지가 왔다. 이번엔 진짜 눈물이 나서 다른 선생님들께 안 들키려고 모니터 뒤에 숨어 눈물을 훔쳤다.
"선생님이 1학년 때 '남는 건 피아노다'라고 하셔서 중2 때 피아노 배웠어요. 덕분에 취미 하나 생겨서 정말 좋았어요."
이 말과 함께 2년 전 2021년, 내가 담임일 때 나눠준 학급 단체 사진을 보냈다.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다며 내 사랑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 아이를 보면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거의 모든 면이 달라 이 아이처럼 되려면 아주 많은 노력이,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마지막으로 내가 이 아이에게 보냈던 카톡을 남기며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한 번 더 정리해 본다.
"00이의 셀 수 없는 예쁜 점 중에 선생님이 특히나 아끼는 건 쌤이 지나가듯 한 말, 행동, 마음을 다 기억하고 있다는 거야. 1년 전 수업시간에 만든 타임캡슐도 잊지 않고, 2년 전에 쌤이 한 말을 기억하고, 그때 나눠준 사진을 아직 간직하고 있다는 것도. 2년 전 우리 반이 되어줘서, 함께 추억을 만들 수 있어서, 또 3학년 땐 뒷 반에 배정받아 음악시간을 함께할 수 있어서 참 고마웠다."
더 꽉 안아 주지 못해 미안할 정도로 참 사랑스러웠던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곡은 <그리그 - 바이올린 소나타 3번 2악장(Grieg - Violin Sonata No.3 2nd)>이다. 고마운 걸 고맙다 말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것을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고, 따뜻한 품이 필요할 때 안아달라고 말할 용기가 없던 나에게 '안아달라고 말할 용기'를 보여준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