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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 e a dan Jan 23. 2024

내가 그린 어른 그림은 이런 어른 그린 그림이고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3악장



'이젠 좀 편히 살아도 되지 않나?', '난 몇 살까지 이렇게 아등바등, 꿈을 손에 쥐지 못해 안달 난 사람처럼 살아야 하나', '철밥통이라 불리는 직업도 가졌겠다, 그냥 어깨 위의 짐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다 문득 고등학생 시절 일화가 떠올랐다.







고2 때인가 고3 때인가. 어쨌든 코 박고 공부만 하던 시절 이야기이다. 엄마와 길을 걷고 있는데 나와 비슷한 나이의 학생들 몇 명이 꺄르르 웃으며 우리 옆을 지나갔다. 그들의 옷차림에서 공부보다 노는 걸 좋아하는 학생들임이 느껴졌다. 별생각 없이 가던 길 계속 가고 있는데 엄마가 날 측은하게 쳐다보며 물었다.






"넌 쟤들처럼 놀고 싶지 않니?"






엄마의 애처로운 눈빛과 달리 난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쟤네 놀 때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 가고, 나중에 쟤네보다 더 신나게 놀면 돼요."

진심이었다. 어렸던 그때의 나도 지금처럼, 행복한 내일을 위해 오늘의 고달픔을 참아내는 아이였다.






대학교 4학년 땐 교사가 되기 위해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고3 때만큼, 아니 그보다 더 치열하게 수험생활을 했다. 정말 힘들었지만 교사가 되어 원하던 삶을 사는 내 모습을,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며 묵묵히 버텼다. 이런 식으로 30년 넘게 살아왔다. 내일의 나를 위해, 미래의 나를 위해 오늘의 나를 혹사시켜 왔다. 이젠 너무 익숙해져 버린 삶의 방식이다.






언젠가의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숨 쉬고 있는 나를 위해 행복하게 살면 안 되나. 안 될 건 없지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데 이미 늦어 버렸나. 고작 이런 어른이 되고 싶어서 어렸을 적 나는 매일매일을 버텨낸 것인가. 그 시절 '내가 그린 어른 그림은 이런 어른 그린 그림'이 아니다. 지금의 내가 되어버린 '미래의 나'를 위해 고생했던 어릴 적 나를 생각하면, 나 지금 행복해야 한다. 반드시, 최선을 다해 행복해야 한다.







고된 시간을 견뎌온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제2번 3악장(Sergei Rachmaninoff-Symphony No.2 3rd)






20세기 최후의 낭만주의자로 불리는 러시아 작곡가 라흐마니노프. 당시 국민주의 음악을 추구하던 무소륵스키와 다르게 라흐마니노프는 차이콥스키처럼 러시아적 색채를 가득 담으면서도 서구적 음악을 지향했다. 일찍이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인 라흐마니노프는 승승장구하며 30대에는 미국 순회 연주를 다녔고 당국의 삼엄한 통제로 러시아를 빠져나가기 쉽지 않을 때에도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자유롭게 연주 활동을 했다.





음악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잘 나가던 라흐마니노프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교향곡 제1번이 처참히 실패한 것이다. 그가 "갑작스러운 발작으로 졸도라도 한 것처럼 멍한 나날을 보냈다."라고 말할 정도로 비평가들에게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심한 슬럼프에 빠져 창작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른 라흐마니노프는 작곡의 길을 접기로 한다. 피아니스트로서도 명성을 떨던 그는 다시 창작을 하고 싶었으나 교향곡 제1번의 실패로 쉽사리 펜을 들지 못했다.





라흐마니노프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최면요법의 권위자인 니콜라이 달 박사를 찾아가 치료받았다. 의사는 그에게 최면과 자기 암시 요법을 처방했다. 이는 매우 효과적이었고 라흐마니노프는 실패의 악몽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회복하게 되었다. 이때 작곡한 곡이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이며 주치의인 달 박사에게 헌정한 이 곡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럼에도 교향곡 창작은 꺼려했던 라흐마니노프. 독일로 거처를 옮기고 새로운 마음으로 교향곡 제2번을 작곡한다. 또한 그는 이 곡을 직접 지휘하여 초연해 큰 성공을 거둔다. 이 곡을 통해 교향곡 제1번의 실패 후 10년 동안 그를 괴롭혔던 트라우마를 말끔히 씻어버릴 수 있었다.






라흐마니노프 곡은 특유의, 심장에 뭔가 꽂힌 것 같이 찬란한 멜랑꼴리가 있다. 찬란한 멜랑꼴리라니 역설적이지만 말론 형용할 수 없는 그만의 낭만적이고 감미로운 선율과 화성이 있다. 라흐마니노프의 삶을 알아서 그런지 이 곡이 역경을 딛고 일어난 자신에게 '바라던 세상이 곧 펼쳐질 것'이라며 위로하는 것 같다. 긴 슬럼프를 이겨내고 만든 역작이라 그런지 더 감동적이다.






특히 3악장 Adagio. 침착하고 여리게 시작하는 현악기의 짧은 도입 후 클라리넷이 솔로로 연주한다. 32분 25초에 주제 선율이 보다 감정을 싣고 연주된다. 내가 느낄 수 있는 뭉클함의 극한을 느끼게 해주는 구간. 37분, 호른이 3악장의 주선율을 연주하고 바이올린이 받는다. 또 잉글리시 호른,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이 순서대로 주선율을 받아 연주한다. 이는 마치 라흐마니노프의 희망이 얇은 실구름처럼 하늘로 조금씩 올라가 그를 감싸며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 같다.





라흐마니노프가 그랬던 것처럼 내게도 곧 성공이, 행복이 올 것이다. 내 주변에도 니콜라이 달 박사와 같은 사람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나도 지금의 방황을 잘 딛고 일어날 수 있으며 이 음악과 같은 내 희망을 담은 무언가를 만들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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