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백화점에 꼭 가야 할 일이 있었는데 하루 일과가 너무 바빠서 도무지 시간을 낼 수가 없어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딱 30분 만에 쇼핑 마치고 오면 일정에 차질이 없을 거라며 얼른 다녀오자고 했다. 그래서 백화점으로 출발했다.
백화점에가야 했던 이유는 백화점 내특정 베이커리에서 파는 잡곡빵을 사기 위해서였다. 딸아이가 아침 일찍 등교할 때 입맛이 없으면 밥대신 먹곤 하는 빵이었다. 그래서 집에 쌀이 떨어지면 안 되듯이 그 빵이 떨어지면 안 되는데마침 똑 떨어져서 내일 아침을 위해 다시 수급해놓아야 했다. 더불어 아들은 지난번에 백화점에서 사 온 레드향이 맛있었다며 또사 오라고 몇 차례 이야기했던 터였다.
그래서 나의 계획은 나에게 허락된 30분 내에 푸드마켓에 가서 과일 등 장을 보고, 베이커리로 이동해서 잡곡빵을 사는 것이었다. 그사이 남편은 카페에 보내서 커피를 사 오라고 시킬 참이었다. 둘이 찢어져서 움직여야 30분 내에 계획한 일을 모두 마치고 돌아올 수 있으니까.
그런데 백화점에 도착하니 갑자기 남편이 티셔츠 사야 한다며 골프매장으로 먼저 가자고 했다. 티셔츠를 계산하고 나서 빨리 푸드마켓으로 내려가려는데 남편이 신발 하나만 보고 가자 해서 그곳도 들렀다가 나왔다. 그러고 나니 벌써 시간이 15분이나 지나버렸다.
그제야 남편을 카페로 보내고 부랴부랴 지하에 내려갔다. 먼저 푸드마켓에서 아들이 원했던 과일을 집고 요리 재료를 몇 개 담았다. 계산을 하고 나서 재빨리 베이커리로 뛰어갔다. 베이커리에서 한 손으로는 쟁반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집게로 빵을 집어야 했다. 그런데 푸드마켓에서 장본 장바구니가 너무 무거워서 도저히 양손으로 빵을 집을 수가 없었다. 때마침 남편이 커피를 다 샀다며 전화가 왔다. 남편에게 장바구니를 맡기면 두 손이 자유로워 빵을 집을 수 있겠다 싶어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남편에게로 뛰어갔다.
남편을 만나자마자 장바구니를 넘겨주고 베이커리로 다시 뛰어가려는데, 남편이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고 한다. 나는 아직 빵을 못 샀다고 말하고 베이커리로 뛰어갔다. 그러자 남편이 불쑥 빵 좀 그만 사라고 한다. 집에 남은 빵이 많으니 사지 말고 빨리 집으로 가자고.. 이때부터 화가 나기 시작했다. 계획에도 없던 남편 티셔츠 사고 운동화 보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는데 원래 계획했던 빵은 사지 말라니,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가? 남편의 말을 무시하고 빵을 얼른 집어 계산하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차에서 결국 말다툼을 했다. 남편의 주장은 이러했다. 집에 먹을 것이 이미 많고 남아서 버리는 것도 많은데 왜 또 음식을 많이 사냐는 것이었다. 나의 주장은 이러했다. 애들이 늘 먹을 것을 찾으니 많이 쟁여놓을 수밖에 없는데 왜 장보는 것 가지고 이래라저래라 하냐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말다툼하고 뚱한 얼굴로 집으로 돌아와 종일 시큰둥하게 지냈다.
저녁때가 되어갈 때쯤 비로소 여유가 생겨서 낮에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았다. 별일 아니었던 것 같은데 왜 우리는 그렇게 말다툼까지 했을까. 생각해 보니 원인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촉박한 시간이 주는 심리적 압박(스트레스) 때문이었다. 단 30분이라는 시간 안에 여러 미션(?)을 수행해야 해서 둘 다 예민해져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는 서로 머릿속에 있던 계획을 미리 공유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티셔츠 쇼핑 하겠다는 계획을, 나는 푸드마켓과 베이커리에서 장 본다는 계획을 각자 갖고 있었지만 서로에게 미리 공유하지를 않았다. 그래서 백화점 도착하자마자 티셔츠 사러 간다는 남편의 말에 나는 당황했고, 집에 갈 시간이 되었는데 베이커리에 들른다는 나의 말에 남편은 당황한 것이다.
오늘 일을 복기하다 보니 예전 회사 다닐 때의 상황이 떠올랐다. 팀이 공동으로 어떠한 과업을 수행할 때, 주어진 시간이 촉박할수록 팀원들 간의 긴밀한 소통이 필수 요소였다. 여러 명의 팀원들이 각자 머릿속에 들어있는 생각을 말로 꺼내놓지 않으면 우왕좌왕하거나 충돌이 있을 수 있다. 모두가 같은 목적으로 공동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게다가 시간이 촉박해서 팀원들이 모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황이면 이로 인해 갈등 상황까지 유발될 수 있다.
더 나아가, 팀의 리더가 앞으로의 계획을 미리 공유하지도 않은 채, 말 안 해도 팀원들이 다들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일 수 있다. 리더는 미래 계획과 업무 진행 방향을 미리 팀원들에게 공유하고 그들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것임을 재차 확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사공들이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열심히 일해서 배가 산으로 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나와 남편같이 몇 십 년을 같이 살아온 가족도 오늘의 사건(?)처럼 미리 말하지 않으면 서로의 머릿속 계획을 알 수 없다. 하물며 회사의 팀원들과 리더 사이에 명확한 소통 없이 어찌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으랴.
앞으로는 '부부일심동체'라는 말을 믿지 않고 남편과도 서로의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어 잘 소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시간이 촉박할 때에는 절대 남편과 함께 백화점에 가지 말아야겠다고 남편 몰래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