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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유 Jan 08. 2024

회사생활 스무살이 되었습니다

브런치 북 연재 시작을 알리기 위해 인스타에 피드를 적던 중이었다.

회사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글이니, 나의 회사생활 기간이 꽤 되었음을 알리면 좋겠다 싶었고, 이번에는 정확한 기간을 적어보자 다짐하며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며 세어보았다.


2005, 2006, 2007.......


사실, 그동안 발행한 글에 회사 근무 년수를 두어 번 적은 적이 있다. 그때마다 15년, 17년 등 감으로 어림잡았었다.

그런데, 햇수로 20년이라니....

2005년 부터 근무를 시작했으니, 만으로는 18년이다. 중간에 육아휴직 1년을 제외한다면, 17년 동안 이 회사에, 내 이름이 붙어있는 책상에 앉아 일을 했던 것이다. 게다가 해가 스무번이나 바뀌는 동안 한 곳에 있었음을 알아채고 나니, 뭔가 처음 느끼는 감정이 솟구쳐 올라왔다.

목구멍 안쪽이 저릿해지고 눈가가 뜨거워졌다. 울컥하는 류의 것들과는 달랐다. 눈물이 맺히지도 않았다. 도대체 무슨 감정이란 말인가. 먹먹함인가. 헛헛함인가. 허무함인가. 대견함인가. 어쩌면 한 두 개의 감정만으로 형용할 수 없는 '무엇'이었을까..


눈을 감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수십, 수백 개의 장면들이 한 겹, 한 겹, 물결처럼 밀려왔다.


어리바리 패기만 가득했던 신입시절, 무서운 상사 만나 매일밤 뚝뚝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사무실 건물 주변을 걸어 다니던 모습, 인사부서로 전배를 고민하던 자리, 또라이 불변의 법칙을 철저히 지켜주던 분과의 대치, 각광을 받으며 승진하던 때, 담배냄새에 입덧을 참으며 미팅하던 회의실, 복직 후 이일도 저 일도 아닌 것을 맡아 퇴직하겠다고 말하던 감정, 교육팀으로 옮겨 좋아하는 팀장님과 신나게 일하던 분위기,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아 팀장 승진을 거부하다 강제로 승진 축하를 받던 날, 결국 육아와 일과 사람에 치여 공황증상으로 응급실에 가던 길, 교육팀을 맡아 진귀한 사람들을 만나 즐겁게 일하던 모습까지... 마치 빗방울이 후드득 내려와 머리를 토독토독 치고 땅으로 떨어지는 듯했다. 그렇게 수십 개의 기억들이 발밑에 뿌연 웅덩이를 만들었다.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동안, 일을 배웠고 사람을 알았고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렸으며 예쁜 두 쌍둥이 아이들도 얻었다. 이 회사에서 매일 여덟 시간, 열 시간, 아니 어쩔 땐 열다섯 시간 이상 일을 하며 번 돈으로 살아왔다.

감사했다. 하지만 공허했다.

이곳이 아닌 다른 걸로 20년을 살아왔다면 어땠을까. 사회생활을 시작할 당시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래서 지금까지 꾸준히 내 길을 닦아 왔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후회라는 단어가 고개를 드는 순간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더 나은 길이 있었을 것이라고 부정하면 이제는 내 인생의 반이 되어버린 시간들을 인정하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고개를 좌우로 저어대었다. 입사 때 나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당시 이 회사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과분한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믿음이 조금은, 아주 조금은 깔려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인정하자.

그때의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랐다. 그러다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고 주어진 일들에 나름의 재미와 보람을 느꼈다.

당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자, 그럼 지금부터 후회만 하고 있을 것인가. 헛헛함을 안타까워하고만 있을 것인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회사 생활로 스무살이 되었다.

내 안에 20년간 회사에서 겪었던 경험과 생각 배움들이 담겨 있다.

이것들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희망이, 공감이 된다면 어떨까.


일단 2024년 1년간, 이 모든 것을 쏟아부어 보자.

무언가 더 가치 있는 일을 해보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시작하다 보면, 내가 정말 좋아하면서 잘 하는 일을 찾게 될 것이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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