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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이 Oct 06. 2023

바이킹타고  의무실로

 가족들과 오랜만에 용인 한국민속촌으로 나들이를 떠났다. 늦게 출발하여 마음은 이미 민속촌에 가 있는데  

목적지가 가까워 질수록 차들의 정체는 길어져만 갔다.

거북이 걸음으로 움직이는 창밖에서 바라본 푸른 하늘은 성큼 가을이 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민속촌을 언제 와봤더라 생각도 나지 않게 오래전에 왔던 것 같다. 민속촌 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사극에 나오거나 전설의 고향에서 봤던 초가집들과 양반집들이 생각이 났다. 아이들은 민속촌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딱히 모르지만 전통체험도 할 수있고  귀신체험도 할 수 있고 놀이공원처럼 놀이기구도 탈 수 있다고 하니 좋아라 하며 따라 나셨던 길이다. 아이들은 티비에 나오던 사극세트장을 실제로 본다는 설레임보다는 전통놀이공원이라는 개념이 강한 듯 싶다.





점심때가 조금 지나서야 민속촌에 들어오게 되었다.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이 조금 더 적었다면 더욱 그랬을 것 같았다. 사람들이 정말 많이 있었다.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곳곳에 보였다. 외국인들이 많이 한복을 입고 다니며 민속촌을 제대로 즐기는 것 같았다. 한복의 아름다움을 외국인들이 제대로 아는 것 같았다. 

돌아다니면서 전통체험들을 하고 초가집,기와집 등을 둘러보면서 옛날에는 이렇게 살았구나를 알아보며 영화세트장에 들어와 있는 기분을 느껴졌다. 디딜방아에도 올라가보고, 그네도 타보고, 다리도 건너보고, 말도 잠깐 타보았다. 이런저런 구경과 체험도 하고, 정자에도 앉아서 흐르는 강물도 보고 있자니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아이들에게 이런 한가로움이 점점 지루함으로 바뀔 무렵 놀이기구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또다른 세상인 여기는 완전히 놀이공원이였다. 민속촌에서 여기만 다른 시대인 것 같았다. 놀이기구마다 사람들의 줄행렬이 이어졌다. 늦게 도착한 관계로 시간이 별로 없어 하나에서 두개정도만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중에서 아이들이 가장 타고 싶다는 바이킹을 타기로 했다. 좀처럼 줄지 않을 것 같았던 줄이 점점 줄어 들어갔다.  난 처음부터 바이킹을 탈 생각이 없이 줄만 서고 있었다. 바이킹을 타본지가 20대 초반이였던 것 같은데 지금 막상 타려니 무서움이 몰려왔다.







딸아이도 점점 바이킹을 가까이 보고 사람들의 비명소리를 듣더니 무서워진다며 타기 싫다고 했다.  딸과 내가  안타려고 하자 남편은 다 같이 타야 한다며 우겨댔다. 남편은 무서워하는 모녀를 굳이 바이킹에 태우고 싶은지 모르겠다. 내가 안타면 딸도 안탄다고 하니 남편은

'딸의 다양한 체험을 위해서 엄마가 타야하지 않겠어'라는 말에 어쩔 수없이 바이킹의 맨 가운데에 탔다.

좌우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나의 무서움은 극에 달했고 속은 울렁울렁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안내원이 타는 도중 도저히 못타겠으면 손을 머리 위로 올려 x로 만들라고 했지만 손을 올릴수 없을 정도였다. 손을 올려 x를 만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가까스로 버티며 멈추길 바랬다.

멈추자 마자 난 손을 입에 틀어 막고 뛰쳐내렸다.






내려오자마자 점심에 먹은 것을 재 확인하게 되었다. 어지러움과 함께 입에서 분출을 막을 수 없었다.

내용물을 확인을 했는데도 나의 울렁임은 가라앉지 못해 결국 의무실가서 누워있어야 했다. 생전 처음 이런 곳에서 의무실을 이용해 보았다. 바이킹 한번 타고 누워있는 나는 어지러움에 한동안 누워있어야 했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바이킹 타면서 분출하지 않은 것이 어디인가 . 바이킹을 타면서 했다면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진짜 오랜만에 타본 바이킹에서 나의 나이와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이제는 아이들과 놀이기구를 같이 타지 않아도 되겠다. 어지러워서 놀이기구를 같이 타는 것이 힘들어서 아빠와 함께 타라고 했는데 남편은 항상 엄마도 같이 하자고  해서 힘들었는데 이제는 타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가 커 갈수록 아이와 함께 하는 것이 줄어들게 되는데 놀이기구도 함께 못타게 되어 아쉬움도 있다.  또한 놀이기구의 울렁임이 스릴과 재미있는 존재가 된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어지러움을 동반하는 존재가 된 것에 대한 씁쓸함으로 남는다. 이제는 놀이기구 타는 것은 아이들에게 양보하고 다른 재미를 찾아보아야 하는 날들이 왔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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