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라곤 도무지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던 시절이었다. 집값이 안 오르니 대출을 최소화해서 집을 사야 한다고 믿었고, 믿음대로 그저 저축을 할 뿐이었다. 하지만 아기를 갖게 되니 내 집 마련에 대한 갈증이 커졌다. 당시 금리도 낮았고 대출도 많이 해줬는데(지금 생각하니 호시절이다.) 첫 집인 만큼 신중하고 또 신중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당시 막 개발이 시작되는 지역이 있었는데 그곳에 있는 모델하우스 몇 군데를 가보았다. 모델하우스는 쾌적하고 친절했고 여유롭게 만들었다. 커피를 곁들여 자세히 설명을 해주고 돌아갈 때는 화장지도 줬다. 설렘 속에 결국 가계약을 덜컥해버렸다.
막상 가계약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걱정이 되었다. 곧 아기도 태어날 텐데 저렇게 비싼 아파트를 사서 대출 갚고 잘 살 수 있을까? 허허벌판에 교통도 불편한 이런 곳의 아파트가 나중에 오를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불편해서 살 수는 있을까? 당시 부동산 상황으로는 집값이 올라갈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평생 이 빚을 어떻게 갚나 하는 막막함에 후회가 밀려왔다. 우리는 가계약을 취소하고 돈을 더 모아 조금 더 저렴한 집을 사야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퇴근 후 모델하우스를 찾았다. 가계약을 취소해달라고 했다. 취소하면 계약금을 못 돌려준단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가난한 신혼부부에게 500만 원은 너무나 큰돈이었다.(지금도 큰돈이다.) 퇴근하고 매일매일 모델하우스를 찾아가서 계약금을 돌려달라고 사정했다. 모델하우스 담당자는 난감해했다. 나중에 돌려주겠다는 대답을 듣긴 했지만 그런 말로 그냥 어영부영 되돌려 보내는 것 같아 불안했다. 2주 동안 퇴근 후 매일 모델하우스에 출근 도장을 찍었고 주말에는 남편과 함께 얼굴 도장을 찍었다. 임산부가 매일같이 들르니 모델하우스 직원들도 나를 알아보고 내가 등장하면 곧바로 담당자를 불러주었다. 매일 찾아가는 게 민폐인줄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미안해서 도넛도 갖다드리고 커피도 갖다드리며 통사정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자를 받았다. 통장에 돈이 들어왔다고. 통장에 찍혀있는 5,000,000원. 너무나 기뻤다. 모종의 성취감마저 느꼈다. 남편은 배부른 아내에게 미안해했다. 어쨌든 미숙한 신혼부부는 돌려받은 돈이 너무 소중했고 행복했다.우리가 어리석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
우리가 포기했던 이 집은 훗날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두 배로 올랐다. 허허벌판은 상가와 아파트로 채워졌고, 멀지 않은 곳에 지하철이 생겼다. 돌려받아 기뻤던 500만 원은 아쉬움과 후회의 500만 원으로 남았다. 가끔 그 근처를 지나가면 배가 아팠다. 역세권의 신축 아파트는 이렇게 우리 손안에 들어왔다가 모래처럼 스르르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