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신화, 북유럽 신화이야기, 로키, 말싸움, 로카센나
#PS01.
이번 이야기의 원전은 '고(古) 에다'에서 '로카센나(Lokasenna : 로키의 말다툼, 로키의 언쟁)'라고 불리는 시(詩)입니다. 에기르의 연회에 신들이 초대를 받게 됩니다. 신들은 다같이 모여서 연회를 즐기는데, 이때 술에 취한 로키가 행패(피마펭을 죽임)를 부려 쫓겨나게 되죠. 이에 앙심을 품은 로키가 다시 연회장으로 되돌아와 신들과 말다툼을 벌이는 내용입니다. 이를 통해서 로키는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죄를 실토하게 되고, 북유럽 신화의 이야기는 그 종반부를 향해 달려가게 되죠.
이번 이야기를 적으면서 조금 힘들었습니다. 아니, 늘 북유럽 신화의 이야기를 적을 때면 이 부분이 가장 힘듭니다. 로키가 정말 적나라하게 신들을 욕하거든요. 그것도 한두 신이 아니라, 거의 모든 이들을 다 욕합니다.(흔히 '모두까기'라고 하죠.) 제가 남을 욕하는 걸 그리 즐기지 않아서 이기도 하지만, 원전인 '로카센나'를 제외하면 참고할 원전이 많지 않아서 이기도 합니다. 북유럽 신화에는 이미 '失傳(잃어버리거나 사라져서 더이상 전해지지 않는 이야기)'가 좀 많거든요.
'로카센나'는 문학적, 문화적으로도 나름의 가치가 있는 시입니다. 제가 이야기의 형식으로 적다보니, 잘 나타나있지는 않습니다만, 원전에서는 로키와 신들의 대화가 운율과 대구에 맞춰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서로가 운율에 맞춰 대화를 나누는 형태로 되어 있죠. 음..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자면, '랩배틀(The Rap Battle)'같다고 할까요?
이는 실제 당시의 문화적인 풍습을 엿볼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당시에는 스칼드들이 자신의 시적(詩的)인 재능을 뽐내기 위해서 시로 싸우는 풍습이 존재했다고 합니다. 누군가 먼저 시의 형태로 상대를 비난하면, 상대는 운율과 대구를 맞춰서 상대를 맞비난하며 맞서는 것이죠. 서로 상대의 재능을 인정해주면서 술한잔으로 풀고 끝내는 경우도 있지만, 이를 통해서 감정이 격해져 결국 피를 봐야 끝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PS02.
- 로키가 프레이야에게 말한 오래비, 즉 프레이를 화나게 만들었다는 것은 프레이가 아내를 빼앗긴 것을 말합니다. 바나 신족에서는 근친혼이 일반적이었기에, 프레이와 프레이야는 남매이면서도 부부였었습니다. 그러다 인질교환으로 뇨르드와 함께 아스가르드로 오면서 근친혼을 인정하지 않는 아사 신족에 의해 그들의 결혼은 무효가 되었습니다. 로키는 이를 받아들인 것도 모자라, 그들과 애정행각을 벌인 프레이야를 비난하는 거죠.
그에 대해 뇨르드가 반박을 하며 말한 비단 옷을 입은 여인은 '고귀한 여인', 즉 '프레이야'를 말합니다. 이에 로키가 뇨르드르가 히미르의 딸들의 놀이개였다며 비난합니다. 이에 대해서 원전에 별도의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으며, 이 부분은 원전을 적은 스칼드가 헷갈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로키가 신들과 언쟁을 벌이는 것은 주로 '고(古) 에다'에 실려있는데, 고 에다는 저자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로키의 비난에도 역시 뇨르드는 대범하게 받아치는군요.
- 로키가 프레이에게 칼을 버렸다는 것은, 프레이가 게르드를 얻기 위해 스키르니르에게 '스스로 거인을 죽이는 검'을 넘겨준 것을 말하는 겁니다. 그로 인해 '스스로 거인을 죽이는 검'은 스키르니르의 소유가 되었는데, 그가 죽고 오랜 시간이 지나며 검의 행방은 묘연해지고 말았습니다. 로키는 여자때문에 전사의 상징인 무기까지 팔아먹은 놈이 무슨 염치로 끼어드는가라며 비난한 거죠.
- 스카디가 로키에게 비아냥거리며 한 말은 앞 날에 대한 일종의 예언과도 같습니다. 정말 그녀의 말대로 되거든요. 이 부분은 다음편을 참조해주세요.
- 로키가 시프의 질문에 상냥하게 대답했지만, 사실 그건 시프를 비난한 것과 같습니다. 어조가 부드러워졌을 뿐이죠. 로키는 시프가 아사 신들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정숙한 여자라고 하면서도 단 한 명의 예외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든 것이 바로 로키 자신이죠. 이는 시프가 로키와 살을 섞었다는 표현입니다. 예전 로키는 토르가 없는 사이에 그의 집으로 숨어들어 시프의 황금머리칼을 잘라낸 적이 있습니다. 이때의 일을 가지고, 로키는 시프가 자신과 살을 섞었다고 매도하고 있는 것이죠. 이에 대한 시프의 반응도 참 대단합니다. 시프는 로키와 살을 섞은 적이 없음에도, 그가 자신을 비난하는 것을 오히려 웃음으로 넘기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