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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Jun 18. 2024

34. 프라낭의 폭포 : 둘 - 프라낭의 폭포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이야기, 로키, 프라낭

#. 프라낭의 폭포

 세상이 만들어지고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럼에도 아직 세상에는 사람이나 거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들이 존재했다. 미드가르드와 요툰헤임이 맞닿는 이곳도 그런 곳들 중 하나다. 바닷가에 인접한 이곳은 그 끝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넓은 숲이 울창하게 펼쳐진 곳이다. 나무와 나무는 서로의 살을 부비며 자랐고, 그들의 머리카락같은 나뭇잎도 아주 빽빽하게 자라나 '솔(Sol:태양)'의 빛은 나뭇잎을 거치지 않고서는 숲바닥을 비추지 못했다. 그래서 숲의 아랫쪽은 거의 밤처럼 어두운 곳이 많았다. 이처럼 거대한 숲이었지만, 아직 이곳은 그 누구에게도 이름을 받지 못했다. 인간이나 난쟁이, 거인들 조차도 접근하기에는 숲의 어둠이 너무 두려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곳은 거대한 숲과 그들의 품에서 자라는 이끼와 버섯들, 그리고 그들을 먹고 자라는 몇몇 산짐승들만이 이곳의 주민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이곳에 누군가 전혀 다른 존재가 나타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그는 여명도 밝기 전에 이 숲에 도착했다. 숲에 들어서던 그는 잠시 뒤를 돌아보며 무언가를 낮게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무언가에 쫓기듯 숲 안쪽으로 달려갔다. 그는 한참을 정신없이 달렸는데, 그랬음에도 숲은 계속 이어졌다. 숲의 주민들은 이 새로운 인물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주 간혹 그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다가서는 것들도 있긴 했지만, 그들은 그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알지 못했다. 그는 매우 건장한 체격과 잘생긴 외모를 지녔지만, 언제나 그의 표정에서는 두려움이 떠나지 않았다. 한참을 달린 그는 숲의 한 가운데에서 작은 강을 만났고, 그제서야 목을 축였다. 그는 무릎을 꿇고 물을 들이킨 다음 강의 위 아래를 살펴보더니 강을 따라 상류로 올라갔다. 그는 그곳에서 높은 절벽에 둘러싸인 호수와 호수로 흘러드는 커다란 폭포를 발견했다. 후에 '프라낭(Franangr : 빛나는 물)'이라는 이름을 지니게 되는 폭포였다. 폭포는 그 아래에 호수를 만들었고, 호수의 물은 다시 작은 강이 되어 '에기르의 대지(바다)'를 향해 흘러갔다. 그는 절벽을 타고 폭포의 윗쪽으로 기어올라갔다. 이곳은 숲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숲의 바다였고, 저멀리 어렴풋하게 숲의 바다와 진짜 바다가 맞닿는 곳이 보였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곳에 작은 오두막을 짓기 시작했다. 재료는 그것을 얻기위한 노동을 제외하고는 숲이 무상으로 제공했다. 물론 숲은 그가 집을 짓는 재료 뿐만아니라, 그의 의식주 대부분을 해결해주었다. 그는 오두막으르 지으면서도 주변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바람의 한숨과도 같은 미풍에도, 낙엽이 떨어지며 내는 작은 소리에도 그는 곧바로 작업을 멈추었다. 그는 그때마다 몸을 최대한 낮추고 자재들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는 눈을 번뜩이며 사방을 주시했고, 그것의 정체를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작업을 이어갔다. 그러기를 여러번. 그는 마침내 동, 서, 남, 북 네 방향으로 문이 달린 오두막을 완성했다. 이 네 방향으로 달린 문을 통해 그는 항상 온 숲을 둘러볼수 있었다. 오두막이 완성되자, 그는 비로소 한숨으르 쉬며 드러누웠다. 그제서야 그의 표정에서 불안감이 사라지고 작은 미소가 감돌았다. 이 얼마만에 누워보는 안락한 공간이던가. 


[이렇게 허리를 펴고 누워본게 얼마만인지.. 기억도 안나는 구만.]


 그는 한 때, 오딘의 참모였다. 유희와 재간둥이의 신으로도 불렸고, 온갖 사기와 죄악과 범죄의 신으로도 불렸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비참하고 억울한(물론 그의 생각일 뿐이지만) 도망자일 뿐이다. 그의 이름은 '로키(Loki : 의미불명)'였다. 여전히 로키에게 발드르를 죽게 만든 것은 그가 벌인 장난 중에서 가장 훌륭하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잠시 신들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다가 시간이 흐르면 돌아갈 생각이었다. 발드르를 죽인 것은 호드이지, 자신이 아니기에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한때 오딘의 참모라고 불렸고, 재간둥이 신이라고도 불렸다. 그러나 지금은 비참하고 억울한(물론 그 스스로의 생각이겠지만) 한사람의 도망자에 불과한 '로키(Loki: 의미불명)'일 뿐이었다. 호드를 이용해 발두르를 죽일 때 까지도 로키는 자신이 벌인 일을 그렇게 크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오히려 자신이 그동안 벌였던 그 어떤 장난질 중에서도 가장 훌륭하고 재미있는 일로 평가했었다. 잠시 신들의 눈에 띄지 않으면 되겠지. 한참 뒤에 나타나 내 잘못이 아니라고 모두가 호드의 잘못이라고 딱 잡아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세상을 여행하며 로키는 뭔가 일이 잘못되어간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인간도, 난쟁이도 심지어 거인들 조차도 자신을 홀대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로키는 이 모든 것은 그들이 멍청하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러다 그는 에기르에게로 향했다. 뜻밖에도 그곳에서 신들을 만났고, 에기르의 하인을 죽여 쫓겨나기도 했다. 이것이 로키는 억울했고, 다시 신들에게도 돌아갔다. 로키는 아주 실랄하게 그들을 헐뜯었다. 그는 신들을 놀려먹는 것이 통쾌했고, 이것이 가장 자신 답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로 인해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지만. 


- 도망자 로키, 예전에 직접 그린 삽화입니다.


 로키는 여전히 억울했지만(대체 뭐가?), 바보가 아닌 이상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로키에게는 자신을 숨기고 지켜줄 존재가 필요했다. 거인도, 인간도, 난쟁이도 그런 존재가 될수 없기에 로키는 스스로 지켜야했다. 그는 안전한 은신처를 구하기 위해 세상을 헤맸고, 태어나서 가장 최악의 여행을 했다. 차가운 바위 밑에 숨어 새우잠을 잤다. 따뜻한 음식은 고사하고 숲속의 메마른 이끼와 냇가의 비린내나는 물고기를 주워먹었다. 이전에도 수많은 여행을 했고 노숙을 하는 것도 낯설리 없는 그였지만, 지금은 비운의 도망자로서 그때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새 한마리가 날아올라도 몸이 움추려졌고, 그 어떤 것과도 시선을 맞추지 못했다. 그는 점점 더 어두운 곳으로만 움직였다. 이 숲은 지금까지 그 누구의 손길도 닿은 적이 없고, 자신을 아는 그 어떤 존재도 없으니 더없이 최적의 은신처였다. 물론 그는 역시 로키였다. 그는 결코 반성 따위는 하지 않았다. 


[하하.. 그 머저리 같은 신들은 여길 찾아볼 생각따윈 못할꺼야. 근대 왜 내가 그 머저리 같은 것을 때문에 내가 이 고생을 해야 하는거지?]


 아, 그는 혼자였지만, 외롭거나 심심하지는 않았다. 그에게는 대화를 나눠줄 수많은 그가 함께 있었으니까. 다른 로키가 로키를 탓하며 중얼거렸다. 


[그건 네가 뻘짓을 한 탓이지.]

[그게 왜 내 탓이야?]


 로키가 한쪽 눈썹을 일그러트리며 대답했다. 그러자 또 다른 로키가 대답했다. 


[그렇지. 얘 잘못은 아니지. 굳이 잘못을 탓한다면.. 음.. 그 머저리 같은 놈들하고.. 아! 그래. 너! 눈 밑이 시커먼 로키! 이 낯선 놈! 네 놈이 옆에서 부추겨서 이 꼴이 된거아냐?!]

[.. 왜 내 탓인데? 난 그냥 로키답게 행동했으면 좋겠다고 한 것 뿐이야.]


 로키의 어두운 곳에서 나온 로키가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그러자 로키도 또 다른 로키를 거들었다. 


[맞아! 네 놈이 날 부추겨서 그런거야. 네 놈이 아니었다면, 내가 지금 이정도로 고생하지는 않았겠지!]

[한심하긴.. 행동은 네가 해놓고 왜 내 탓인데?]

[너는 나고, 나는 너라며? 그러니 네 탓이지!]


 낯선 로키가 발뺌을 하자, 로키는 더욱 화를 냈다. 그러자 낯선 로키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다른 로키와 또 다른 로키도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는 마찬가지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더니 모두가 한 목소리로 로키에게 말했다. 


 [우린 조언만 했고, 행동은 네가 한거잖아!]

 [이...! 이 쓸모없는 것들! 죄다 저 밑바닥에나 처박혀있어!! 썅!]


 로키는 성을 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마구 쥐어뜯기 시작했다. 머리에서 피가 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한참이나 머리를 잡아 흔들고, 쥐어뜯던 로키는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는 멍한 표정으로 문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배고프네. 밥이나.. 먹을까?] 


 로키는 코를 훌쩍이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신경이 곤두선 상태에 긴 노동으로 그는 피곤했고, 허기가 졌다. 우선은 이것부터 해결해야 했다. 다른 로키들이나 신들의 일은 그 다음이었다. 배가 든든해야 무슨 일이건 대비할수 있는 법이었고, 배가 든든해야 머리도 돌아가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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