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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Jun 19. 2024

34. 프라낭의 폭포 : 셋 - 나라면 말이지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로키, 유비무환

#. 나라면 말이지


 로키는 은신처에서 비운의 도망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로키는 낮에는 주로 은신처인 오두막에 숨어 지냈다. 그러다 심심해서 몸이 근질거릴 때면, 연어로 변신해 호수와 강을 오르내리며 나름의 산책을 즐겼다. 밤이 되면 비로소 그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숲과 강에서 먹을 것을 구하며 지냈다. 이날도 로키는 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그는 연기가 나지 않게 만들어 둔 작은 화덕에 앞에 앉아 물고기를 구웠다. 물고기를 뜯어먹는 그의 표정은 지루함으로 가득했다. 자아도취에 빠지거나 수영을 즐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런 삶이 반복되자 로키로서는 도무지 지루해서 견딜수가 없었다. 로키는 먹던 물고기를 던져두고 그대로 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로키는 뭔가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다른 로키가 로키에게 물었다. 


 [야, 심심해. 나 심심하다고!]

 [나도 심심해. 그러니 좀 닥쳐!]


 로키가 눈 앞으로 손을 휘휘저었다. 또 다른 로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수는 없잖아? 지금이라도 가서 잘못했다고 용서를 비는..]

 [아놔! 이! 넌 늘 이딴식이지? 너만 천사표지? 닥치고 들어가라?!]


 로키는 또 다른 로키를 쫓아버리고서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고민은 가지를 뻗어 이런 저런 상상으로 이어졌다. 그러던 중 로키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흠.. 만약에 신들이 내가 여기 있는 걸 찾아낸다면? 그들이 나를 잡으러 오면 어떻게 해야하지? 당연히 도망가야지. 숨거나. 흠.. 에이.. 그 멍청한 것들이 나를 어떻게 찾겠어? 아니아니야.. 그래도 만약이란게 있으니까. 흠.. 흠..]

 

 로키는 드디어 재미난 놀꺼리를 찾아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 로키 자신의 몸은 궁벽한 오두막에 있지만, 그는 자신의 상상 속에서는 얼마든지 아홉세상보다도 더 큰 세상을 누빌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로키는 이런 저런 조건까지 붙여가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오딘이 자신을 잡으러 온다면? 토르가 자신을 잡으러 온다면? 다른 신들이 자신을 잡으러 온다면? 로키는 각각의 질문에 대해 답을 생각했고, 가끔 알수 없는 몸짓까지 더해가며 해답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한참 천장을 보며 생각에 잠겼던 로키가 가만히 중얼거렸다.


 [큭큭.. 역시 난 그 놈들 머릿 꼭대기에 앉아있다니까..... 근데 나라면 어떻게 할까?]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한쪽 눈썹을 들어올리고 눈을 이리저리 돌려댔다. 로키 자신이라면 자신을 잡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모든 신들을 대상으로 조건을 걸고 대답을 만들던 그는 마침내 이 질문을 자신에게 하기에 이르렀다. 비록 나쁜 꾀가 더 많았지만 그래도 신들 중에서는 머리가 좋기로 유명한 로키였다. 늘 신들 중에서 가장 머리가 좋다고 떠들던 로키였고.(물론 이것은 로키 혼자만의 생각이었지만) 이제 로키는 자신을 상대로 고민에 빠졌다. 로키는 이리저리 몸을 굴리면서 중얼거렸다. 


 [에.. 아무래도 나를 잡기에는 머리를 써야하지. 문제는 세상에서 나보다 머리가 좋은 놈은 없다는 거지.]

 [그럼! 내가 얼마나 똑똑한데.]


 다른 로키가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또 다른 로키가 조심스레 물었다. 


 [아니야, 그래도 뭔가 방법이 있지않을까? 힘이라던가?]

 [내가 무슨 단순 무식한 토르냐? 힘으로 덤비게? 그리고 토르에 대한 대비는 이미 생각해뒀다고!]

 다른 로키가 핀잔을 주자 또 다른 로키는 이내 꼬리를 내렸다.


 [그럼 어찌한다. 하.. 하...]


 로키가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며 중얼거렸다. 그는 심각한 표정을 짓다가도 무언가 떠오른 듯 어린 아이처럼 손벽을 치며 히히덕 거리기도 했다. 그렇게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하기를 여러번. 로키는 몸을 일으켰다. 네 방향으로 난 문을 두리번 거리면서 돌아보던 로키는 주먹으로 손바닥을 치며 소리쳤다.


 [그렇지! 그 방법뿐이야!]
 [오? 뭔데? 방법을 찾은거야?]


 다른 로키가 물었다. 


 [응. 나를 잡으려면 내가 연어로 변신해서 물놀이를 할 때 뿐일꺼야!]

 [흠흠.. 일리가 있군. 근데 어떻게 잡아? 내가 어지간한 함정에 걸려들어야 말이지. 아, 머리가 너무 좋은 것도 이럴 때는 피곤하군!]


 로키의 대답에 다른 로키가 턱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러자 로키가 방긋 미소를 지었다. 


 [쿠쿠쿠.. 방법이 있지! 내가 보여주지. 조금만 기다려보셔!]


 로키는 바쁘게 움직였다. 이것 저것 무언가 재료를 구하러 다니더니 곧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의 눈은 광기에 가까운 집중력으로 반짝였고, 그의 손은 정신없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렇게 한참 만에 로키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만든 물건을 들어보였다. 그의 손에는 커다란 그물이 들려있었다. 그물의 눈은 매우 촘촘했고, 부드러우면서도 강했다. 그물은 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 그물을 든 로키, 18세기 아이슬란드 삽화(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Loki)


 [어때? 역시 물고기를 잡는데는 그물이 딱이지! 하하! 역시 난 머리가 너무 좋아. 그리고 이거 보여? 이렇게 강하면서도 부드럽는 말씀! 아~놔~ 이 놈의 감각은 죽지도 않아~ 이게 바로 갬성~이지~ 갬성~ 너도 알지? 이 갬성?]

 [옳커니! 그렇지! 그 갬~~~ 성은 나도 잘 알쥐~ 저 아스가르드의 멍청한 바보들은 이런 고단수의 방법을 절대로 모를테지! 아하하하하!!]


 다른 로키가 맞장구를 쳤다. 그때 조심스럽게 또 다른 로키가 중얼거렸다. 


 [이런게 있었으면 진작에 만들지. 그럼 좀 더 물고기를 편하게 잡았을 텐데.]

 [아!]


 로키도, 다른 로키도 마치 뒷통수를 맞은 듯 멍하게 또 다른 로키를 바라보았다. 로키와 다른 로키는 또 다른 로키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이야.. 너도 쓸데가 있긴 하구나? 오늘 밤부터는 이걸로 함 잡아보자.]

 [아주 그냥 호수의 물고기의 씨를 말려주지~ 우하하!]

 [.. 그럼 우린 뭘 먹고 살아?]


 또 다른 로키가 물었다. 로키와 다른 로키는 서로를 바라보다가 그저 웃었다. 그렇게 혼자서 그물을 들고 히히덕 거리던 로키는 그물을 오두막 벽에 걸어두었다. 한참 동안 상상의 나래를 펴고, 그물을 만드느라 자는 걸 잊었던 로키는 그제서야 늦은 잠을 자기로 했다. 이날 로키는 도망자 생활을 시작하고 정말 오랜만에 편안한 느낌으로 잠이 들었다. 날이 저물고, 잠에서 깬 로키의 얼굴은 만족감으로 가득했다. 로키는 다시 먹을 거리를 찾아 오두막을 나섰다. 그러나 그물은 가져가지 않았다. 폭포 주변에서 로키가 먹을 것들은 충분히 구할수 있었다. 힘들여 그물을 만들었지만, 생각해보니 굳이 그물을 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로키는 잠도 깰 겸, 호수로 뛰어들었다. 그는 연어로 변신해 호수를 이리저리 돌며 놀기 시작했다. 도망자로서의 삶에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로키는 자신의 은신처가 발각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설령 발견된다고 해도 이미 모든 대처법을 만들어두었으니 걱정할 것은 없다.' 라고 로키는 생각했다. 그러나 누가 알았을까? 정말 로키의 예상대로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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