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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Jun 20. 2024

34. 프라낭의 폭포 : 넷 - 추적자들

북유럽 신화, 북유럽 신화 이야기, 토르, 로키, 후긴, 무닌, 크바시르

#. 추적자들

 한편, 에기르의 저택에서 돌아온 신들은 도망자 로키를 잡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로키에게 모욕을 당한 신들이 이를 갈만도 했지만, 그들은 굳이 그런 것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에기르의 저택에서의 로키가 보여준 모든 일들은 오히려 그의 발목을 조였다. 신들은 에기르의 저택에서 로키가 어떤 짓을 했는지, 온 세상이 알도록 그냥 두었다. 솔직히 신들은 자신들을 조롱하는 말이 퍼지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없는 곳에서는 나랏님도 욕하는 법이니까. 분명 세상에는 로키가 신들에게 모욕을 준 것에 대해 통쾌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물론이고, 이 일로 인해 더욱 그 누구도 로키를 숨겨주지 못할 것이다. 이제 로키는 그 누구의 눈에 띄지 않을 곳으로만 돌아다닐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숨을 수 있는 곳이 적었던 로키는 더욱 더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숨어들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인적이 드물고, 그 누구의 눈에도 띄기 힘들만한 곳들만 찾으면 된다. 물론 그런 곳을 찾는 것은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신이다. 더욱이 이런 신들을 이끄는 것은 세상을 만든 자, 오딘이다. 오딘은 '흘리드스캴프(Hliðskjalf : 높이 열린 곳, 오딘의 옥좌)'에 앉아 아홉 세상의 그 어떤 곳이든지 살펴볼수 있었다. 바로 로키가 간과한 것들 중 하나였다. 이미 수색의 범위가 좁혀진 이상, 신들이 전처럼 온 세상을 누비면서 로키를 찾을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오딘은 자신이 만든 세상들에서 오지(奧地 : 인간이 접근하기 힘든 험한 지역)만 골라서 살펴보았다. 미드가르드와 요툰헤임이 맞닿은 경계들 중 한 곳에 시선이 멈추었다. 바로 프라낭의 폭포가 있는 거대한 숲지였다. 오딘은 그곳에서 작고 위장이 잘되어 있었지만, 분명히 그곳에는 누군가 살고 있는 흔적을 느꼈다. 특히 폭포의 윗쪽에는 옅은 마법의 흔적까지 느껴졌다. 


 [로키, 네 놈이 아무리 숨어도 내 눈은 피하지 못하느니라.]


 분명 그곳은 은신 장소로는 최적의 장소이다. 로키도 그런 사실을 알고 그곳으로 숨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이 최적의 은신처라면, 그만큼 도망자가 은신처로 선택할 가장 우선 순위라는 뜻이다. 신들이 로키를 찾기 위한 수색을 시작했을 때 부터, 이곳은 오딘이 손꼽고 있던 지역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오딘은 서둘지 않았다. 


 ['후긴(Huginn : 생각)', '무닌(Muninn : 기억)'!]


- 후긴과 무닌, 예전에 직접 그린 삽화입니다.


 오딘은 자신의 충직한 신하인 두 마리의 까마귀를 불렀다. 후긴과 무닌은 새벽녘에 세상을 향한 여행을 시작해 아침 식사시간에 맞춰 돌아와 오딘에게 자신들이 보고 들은 모든 것을 보고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오딘의 주변에서 맴돌고 있던 후긴과 무닌은 곧바로 오딘의 양쪽 어깨로 내려와 앉았다. 오딘은 손으로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희는 지금 프라낭의 폭포로 가라! 그곳에서 그 주위를 살펴보거라! 강 속의 작은 돌멩이부터, 나무그늘 과 밑둥 사이에 자라는 이끼도 놓치지 말고 살펴보아야 한다. 그곳에 분명 로키가 있을 것이다. 그에게 들키지 않게 각별히 조심하거라.]

 후긴과 무닌은 곧바로 날아올라 크게 한번 울은 뒤에 프라낭의 폭포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프라낭의 폭포에 다다른 후긴과 무닌은 날개 소리마저 잠재운 채 폭포 주변과 숲을 빠짐없이 훝었다. 후긴과 무닌은 호수와 강에서 로키의 발자국을 발견했고, 폭포의 위에서 로키가 지어놓은 오두막까지 확인했다. 후긴과 무닌은 폭포 곁 나무 그늘에 몸을 숨기고,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어둠보다도 더욱 짙은 눈으로 오두막과 강을 살펴보았다. 오래지 않아 태양이 떠오를 무렵 로키가 조심스레 오두막을 빠져나와 강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후긴과 무닌은 로키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난 뒤, 조심스럽게 어둠 속에서 나왔다. 그들은 날갯소리가 들리지 않게 아주 조용하게 하늘 저 높은 곳까지 날아오른 뒤, 아스가르드를 향해 힘차게 날아갔다. 


 확인까지 마친 오딘은 신들을 불러모아 로키의 은신처를 발견했음을 알렸다. 신들은 분노로 술렁거렸고, 당장 달려가 로키를 잡아 죽여야 한다며 소리가 터져나왔다. 다른 한편에서는 조심스럽게 사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로 흘러나왔다. 오랜만에 발할라가 신들의 목소리로 떠들썩해졌다. 


 [그러니까 당장 잡아서 사지를 찢어놓자구!]
 [아참, 그게 아니라니까! 섣불리 움직이면 놓친다구!]
 [보기보다 로키는 머리가 좋거든? 그걸 간과하면 안돼.]

 오딘이 손을 들자, 곧바로 신들은 조용해졌다. 모두 오딘을 올려다보았다. 오딘이 말했다.


 [드디어 배신자, 로키를 찾아내었다. 그곳은 은신처로 아주 적당한 곳이지. 숨을 곳은 많지만 찾으려는 이들은 어느 쪽에서 접근해도 들킬수 밖에 없다. 우리를 드러내지 않고 그를 잡을 수는 없을터.]

 [그렇다면 어찌하실 겁니까?]


 신들이 오딘에게 물었고, 오딘이 대답했다. 


 [우리가 잡으로 온 것을 숨길 생각은 없다. 프라낭의 폭포를 중심으로 대신 몇 겹의 포위망을 만들어 숨통을 조여갈 것이다. 땅이건, 하늘이건. 녀석이 그 어느 쪽으로도 도망갈수 없도록. 오늘 로키는 우리에게 잡힌다.]


 신들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사이에서 헤임달이 가만히 오딘에게 물었다.  

 

 [아버님, 그를 죽이실 겁니까?]

 [죽여? 아니. 죽이지 않을 것이다. 대신 그 녀석이 차라리 죽음을 구걸하도록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을 느끼게 할 것이다!] 


 오딘이 하나 뿐인 눈으로 아들을 보며 대답했다. 헤임달은 더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오딘이 결정했고, 이제 모두가 따르는 일만 남았다. 곧 로키를 잡기 위한 체포부대가 조직되어 아스가르드를 떠났다. 아스가르드의 건장한 남신들 거의 모두가 참여했다. 오딘의 딸들이자 뛰어난 여전사인 '발키리(Valkyria : 전사자를 선택하는 자)'들도 따라나섰다. 그녀들은 하늘에서 부터 로키를 조여들어갈 것이다. 체포부대를 이끄는 것은 아홉 세상 최고의 전사인 토르였고, 그를 돕기 위해 '크바시르(Kvasir : 주장하는 자)'가 참모로 참가했다. 신들은 오딘의 명령대로 움직였다. 자신들을 숨기지 않았고, 프라낭의 폭포를 중심으로 더없이 꼼꼼하며, 여러 겹의 포위망을 구축했다. 포위망이 완성되자, 토르는 선발대를 이끌고 프라낭의 폭포 윗쪽을 향해 마차를 몰았다. 그때, 오두막에서 휴식중이던 로키는 왠지 공기가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무거운 공기조직 사이로 말들의 푸레질 소리와 염소가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로키는 황급히 몸을 일으켜 문밖을 내다보았다. 


 [젠장!]


 거대한 숲 전체가 로키를 잡으러 온 이들로 가득했다. 그 수가 어찌나 많은지 마치 두꺼운 천으로 숲 주위를 빙둘러 펼쳐놓은 것 같았다. 동서남북 어느 문을 내다보아도 같은 광경이었고, 심지어 발키리의 대군이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고 있었다. 로키를 둘러싼 모든 곳에서 '배신자 로키를 잡아라!'라는 외침이 가득했다. 말 그대로 '사면초가(四面楚歌)'였다. 당황한 로키는 머리를 긁어가며 이미 구상해 두었던 대응 방법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허나 정작 가장 중요한 순간인 지금 그 모든 대응 방법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들 하나하나에 대한 대응 방법은 구상해 두었지만, 이렇게 모두가 몰려오는 것은 전혀 생각해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산이 무너지는 것 같은 천둥소리가 들렸다. 놀란 로키가 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소리가 들리는 쪽을 올려다보았다. 묠니르를 치켜든 토르가 로키를 향해 마차를 몰고 오고 있었다. 그의 황금빛 머리칼은 올올이 일어서 있었고, 그의 붉은 수염은 아침의 태양보다도 더욱 붉게 빛나고 있었다. 


 [젠장! 젠장! 이런 젠장!]

 로키는 이를 갈았다. 로키는 뇌세포가 하얗게 죽어버린 것 같았다. 대응 방법 따위가 어쨌었건 이제 아무런 상관이 없다.  

 

 "도망쳐야 한다!"


 어떻게든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다. 아마도 로키가 태어나서 가장 짧은 순간에 가장 많이 생각해 내고 가장 빠르게 결정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로키는 자신이 자신을 잡을 방법을 고민했던 것을 떠올렸다. 오직 그것만이 자신에게 위협이 될 것이다. 로키는 자신이 만든 그물을 화덕에 던져넣었다. 로키는 자신이 만든 그물만 없다면 그 누구도 자신을 잡을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로키는 재빨리 오두막을 빠녀나와 폭포에 뛰어들었다. 로키는 폭포로 들어감과 동시에 연어로 변신했다. 폭포를 타고 내려간 로키는 호수바닥에 있는 바위 사이에 모을 숨겼다. 로키는 신들이 지치기를 기다렸다. 이후, 틈을 보아 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 바다로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신들은 포위망을 좁혀오면서 온 숲을 헤집었다. 아무리 작은 개미라고 할지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모든 이들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토르가 이끄는 선발대는 로키가 만들어 둔 오두막에 도착했다. 신들은 오두막과 주변을 이잡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이런 쥐새끼 같은 녀석! 이런 곳에서 잘도 숨어있었군!]
 [어이구, 도망자 주제에 이건 뭐야, 화덕까지 걸어놓고 요리까지 해먹었다 이거지?! 처죽일놈 같으니라구!!]

 토르는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 로키의 흔적을 살폈다. 토르는 매서운 눈으로 오두막 구석구석까지 세심하게 살폈다. 토르는 로키의 잠자리에 손을 대보고는 말했다. 


 [흥! 급했나보군. 아직 잠자리가 따뜻해. 모두 잘들어! 로키는 방금 전까지 이곳에 있었어! 폭포 주변을 뒤져!!]


 토르의 말에 신들은 더욱 신경을 곤두세우며 폭포의 주위를 헤집기 시작했다. 토르의 곁에서 함께 오두막을 살펴보던 크바시르는 화덕 쪽에서 무언가가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로키가 화덕에 던져넣었던 그물의 조각이었다. 그물의 일부가 미쳐 다 타지 않고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물을 들어 잠시 살펴보던 크바시르가 말했다. 


 [토르님, 숲을 뒤지는 건 소용없습니다. 그는 숲에 없으니까요.]

 [그러면 녀석은?]

 [네, 강 속입니다. 분명히.]


토르의 물음에 크바시르가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 


 [응? 저렇게 넓은 숲을 두고 강속이라고?]


오두막을 뒤지던 신들이 반문했다. 크바시르가 타다남은 그물을 들어보이며 대답했다. 


 [이것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물이 아닌가?]
 [네. 로키라면 우리가 자신을 잡으러 올 것에 대비해 그 탈출 방법도 연구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누구보다도 똑똑하다고 믿고 있으니까요. 이 그물이 그 증거이자, 결과입니다. 이런 산 속에서 이렇게 큰 그물이 무슨 필요일까요? 뭔가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이건 새를 잡는 그물도 아니고, 아무리 강이 가까워도 물고기를 잡는데 이 정도의 그물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말을 마친 크바시르는 가만히 문가로 다가섰다. 그 문은 강 쪽으로 나 있었는데 강 하류는 바다로 이어져 있었다. 크바시르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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