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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드 단테 Dec 19. 2024

35. 라그나로크01.폭풍전야-넷:수탉의 노래

북유럽신화, 북유럽신화이야기, 라그나로크, 수탉

#. 수탉의 노래


 헤임달은 여전히 아스가르드의 성벽 위에 서있었다. 그렇게 서있은 지도 오래 되었건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그의 눈과 귀는 경계를 쉬지 않았지만, 그의 머릿속은 여전히 안개 속과 같은 생각의 연속이었다. 미드가르드의 인간들이 부르던 그 흥겨운 노랫소리는 이젠 옛일이 되어버렸다. 그러고 보니 신들의 노랫소리도 들어본지 오래였다. 언제부터인지 연회를 벌여도 즐겁지 않았고, 연회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도 적어졌다. 그러다 이 즈음에는 아예 연회조차 드물게 되었다. 모두가 집에 틀어박혀 있을 뿐, 좀처럼 모이는 일도 없었다.


 [머지않아, 그날은 오리니..]


 헤임달은 자신도 모르게 그날이 다가오는 것이란 생각을 했다. 늘 앞 일에 대해 어느 정도의 예감을 갖고는 있었지만 이처럼 불안한 마음이 들은 적은 익히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임달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직 이것만으로는 단정할 수 없었다. 헤임달도 그날의 예언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긴 겨울만으로 그날을 알리는 '전조(어떤 일이 생기기 전, 그 일을 예견하듯이 앞서 벌어지는 일, 또는 기미)'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날이 왔음을 뜻하는 결정적인 전조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비록 다들 의기소침해졌지만 신들은 여전히 건재했고, 로키도 여전히 동굴에 갇혀있다. 그리고 헤임달은 따사로운 햇살 아래에서 빛나는 아스가르드를 기억하고 있다.


 [아니, 아니야. 이제 겨울은 곧 끝이 날꺼야.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겠지. 아스가르드의 성벽 아래로 푸른 잔디가 다시 자라날 거야. 그때가 되면 부드러운 봄바람에 들꽃의 향긋한 내음이 실려 내 귓가를 간지럽힐테지.]


 헤임달은 애써 멋적은 미소를 지은 뒤, 다시 주위에 대한 경계에 들어갔다. 헤임달은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않았다. 그동안 그 수많은 풍파를 겪은 헤임달이었지만, 곧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만큼은 쉽게 놓을수 없었다. 그렇게 헤임달이 다시 본연의 임무로 돌아간지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아스가르드의 성벽이 흔들렸다. 그것은 대지의 흔들림으로 시작했다. 서리를 뒤집어 쓴 나무들이 온몸으로 울부짖다 못해 뿌리까지 송두리채 뽑혀나가며 쓰러졌다. 산도 울음을 울었고, 천둥과 같은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헤임달은 갑작스럽게 벌어진 사태에 당황하며 성벽위에 주저 앉아버렸다. 대지는 한참을 울부짖은 뒤에야 멈추었다.


 헤임달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아스가르드의 성벽을 붙잡고 일어섰다. 대지가 얼마나 요동을 쳤는지 아스가르드 성벽 넘어 눈에 익숙하던 풍경의 많은 부분들이 폐허처럼 변해버렸다. 이것으로도 끝은 아니었다. 헤임달이 놀란 가슴을 어루만지려는데, 어딘선가 수탉의 울음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그것은 저멀리 아득하게 거인들의 땅, 요툰헤임으로 부터 들려왔다. 헤임달은 두 눈을 크게 뜬 채 요툰헤임 쪽을 바라 보았다. 그의 표정에는 놀람과 괴로움이 번갈아 번져갔다. 주먹을 쥔 헤임달의 손이 가만히 떨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에 화답을 하듯 헤임달의 뒷쪽에서 커다란 수탉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수탉의 울음소리는 온 아스가르드를 울리고 비프로스트 넘어 미드가르드에 까지 울려퍼졌다. 두번째 울음소리를 들은 헤임달은 순간 몸의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는 가까스로 아스가르드의 성벽을 붙잡으며 몸을 지탱했다. 절망에 빠진 헤임달의 귀에 마지막으로 니블헤임에서 또 한 마리의 수탉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 안돼..]


 수탉의 울음소리. 그것은 하루의 시작이 아닌 멸망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울음소리였다. 예언에 따라 멸망을 알리는 수탉은 아홉세계 중 세 곳에 등장한다. 이들이 정확히 언제 나타난 것인지는 알수 없으나 대체로 세상이 시작한 즈음이라고 여겨질 뿐이다. 이들의 울음소리는 여느 수탉의 울음소리와는 확연하게 다르며, 아홉세상 그 어디에서도 똑같은 크기로 들린다. 이들은 평소에는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고 울지도 않는다. 오직 세상의 멸망을 알려야 할 순간이 왔을 때에만 홰를 치며 큰 울음을 운다.


- 멸망을 노래하는 세 마리의 수탉 - 예전 삽화로 사용했던 그림. 직접 그림


 제일 먼저 울음을 우는 것은 요툰헤임의 붉은 수탉 '퍄라르(Fjalar : 숨기는)'다. 퍄라르는 요툰헤임에 있는'갈그비드르(Galgviðr : 새의 나무 또는 교수형의 나무)'라는 숲에 살고 있다. 그날 한 여자거인이 갈그비드르를 찾았다. 그녀는 목동이었고, 매서운 추위가 오기 전까지 이 숲으로 양들을 몰아 풀을 먹이곤 했다. 지금 그녀의 곁에는 더이상 양들이 보이지 않았다. 매서운 추위는 그녀에게서 사랑스러운 양들을 빼앗아갔다. 그녀의 이름은 '에그테르(Eggþer : 전쟁의 희생물을 제공하는 자)'였다. 에그테르는 숲 중앙부에 있는 작은 흙더미가 있는 큰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그녀는 품에서 하프를 꺼냈다. 그리고 지금 계절과는 어울리지 않는 봄의 노래를 연주했다. 봄의 따뜻함과 그 아래에서 즐겁게 춤추는 이들을 노래하는 곡으로, 이 곡을 연주하는 동안은 지금의 아픔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나무 위에서 커다란 붉은 수탉의 울음소리가 들린 것은. 서리가 맺힌 에그테르의 긴 속눈썹 사이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의 연주는 점차 다른 느낌으로 변했고, 아주 격정적인 행진곡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요툰헤임의 붉은 수탉 퍄라르의 울음은 거인들에게 결전의 날이 왔음을 알리는 것이었기에.


 그 다음으로 울음을 우는 것은 아스가르드의 황금 볏의 수탉 '굴린캄비(Gulinkambi : 황금 볏)'다. 퍄라르의 울음소리를 들리자 굴린캄비가 천천히 눈을 떴다. 이그드라실에 매달린 오딘의 새장 안에서 늘 조용하게 지내던 그는 긴 황금빛의 날개를 흔들며 홰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울음을 길게 울었다. 굴린캄비의 울음 소리는 온 아스가르드를 깨웠다. 먼저 오딘이 하나 밖에 없는 눈을 천천히 떴다. 각자의 자리에서 마치 석상처럼 앉아있던 '에인헤랴르(Einherjar/Einherier : 홀로 싸우는 자들 또는 죽지 못하는 자들, 오딘의 전사들)'들도 눈을 떴다.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발할라의 홀로 향했다. 모든 에인헤랴르들이 발할라의 홀에 들어섰지만, 연회장을 가득채우지 못했다.  '세흐림니르(Sæhrimnir : 뜻은 전해지지 않음)'의 고기도, '하이드룬(Heidrun : 빛나는 상징)'의 꿀술이 에인헤랴르들 모두에게 충분하게 제공되었음에도 여전히 많이 남았다. 오딘이 지금껏 뛰어난 전사들을 모으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전사는 모자랐다. 하지만 이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이었다. 이렇게 아스가르드의 황금 볏의 수탉 굴린캄비는 신들에게 결전의 날이 왔음을 알렸다.


 마지막으로 울음을 우는 것은 니블헤임의 검은 수탉이다. 앞서 두 마리의 수탉과 달리 이 검은 수탉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알려진 것은 그 검은 수탉은 헬의 궁전인 '엘류드니르(Eljuðnir: 혹은 엘비드니르. 비에 젖은 자)'의 넓은 홀에 살고 있다고 전해질 뿐이다. 헬은 평소보다도 더욱 인상을 찡그렸다. 이는 헬로서도 마뜩치 않은 일이었기에. 그러나 헬도 운명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였다. 검은 수탉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느릿느릿 움직이던 죽은 자들 사이에서 작은 술렁임이 일었다. 드디어 그들 가운데에서도 쓰임이 생겼기 때문이다. 니블헤임의 검은 수탉이 죽은 자들에게 결전의 날이 왔음을 알렸다. 이제 모든 것은 운명이 정한대로 그 끝을 보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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