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펜소리 Sep 02. 2023

가족여행_백암온천

백일홍의 약속

오늘 가장 젊은 엄마와 여행을 떠나다.


"다음에는 꼭 백일홍이 필 때 다시 와요"


지난 여행에서는 일 때문에 함께하지 못했던 형을 제외하고 엄마, 누나와 함께 떠났었던 지난겨울 백암 온천, 울진 여행에서 돌아오면 드린 말씀이었다.


백암온천 단지를 들어가는 길로 10km가 넘는 길에 배롱나무, 즉 백일홍이 가득 줄지어 심어져 있다. 

지난 겨울 여행에서 앙상한 가지만 보면서 "저건 무슨 나무지" 했던 호기심에서 시작된 재방문이었다.

찾아보니 백일홍은 백일 동안 꽃을 피운다고 하여 백일홍이고, 온천관광단지를 조성하던 시절 관광객 유치를 위해 그 많은 나무를 길가에 조성했다고 한다. 앙상한 가지만 보여드렸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이번에는 아직 열기가 채 가지시 않았지만 늦여름이었지만 온천 여행을 떠났다.



다음은 없다.


어느덧 70대 중반이 되신 엄마와의 여행은 해마다 다르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평소에 꾸준히 운동하시는 분인데도 세월을 비껴갈 수는 없는 모양이다. 일 년에 한두 번은 모시고 가고 싶으나, 회사와 가정생활을 그럴 여유를 찾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IMF가 한참이던 그해 여름은 이번 여름만큼 무척이나 무더웠다. 그해 팔월 교통사고로 하룻밤에 남편을 잃고 그 모진 세월을 견뎌내며 그렇게 우리 삼남 매를 키워오셨다. 

평생 흘려야 할 눈물의 총량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날 난 구 할을 쏟아 낸 듯싶다. 

그때 내 나이 겨우 스물하나였다.


인생을 좀 살다 보니 자식의 마음에 여유가 생겨 부모님을 챙겨야지 하는 생각이 들 때까지 기다려 주시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다음은 없다.




멀기는 멀구나.


파주에서 5시에 출발을 했다.

전날 저녁 상도동 누나네 미리 와계신 엄마와 누나를 픽업하여 6시에 다시 형을 만나기 위해 출발하였다.

금요일 아침이라 재빠르게 수도권을 빠져나오는 것이 첫 번째 계획이었다.

부지런히 두 시간 반정도를 달려 청주휴게소에서 국밥으로 아침으로 배를 채우고, 대구로 향했다.


광주에서 근무하고 있는 형과는 대구터미널에서 만나 울진으로 이동하기로 했기에 다시 액셀을 밟았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하여 대구에서 유명하다는 서문시장에 들러, 여행 중 먹을 과일을 산 후 커피를 테이크아웃하여 터미널에서 형을 픽업하였다.

대구에서도 2시간 반이 걸리니 멀긴 멀다.

아침부터 그렇게 부산을 떨었으나 2시가 되어야 도착하였다.  


드디어 백일홍 길을 마주하다. 

백암온천 가는 길


도로를 따라 빨간 백일홍들이 멋스럽게 줄지어 피어있다. 

백암온천 단지를 가는 길은 초입을 넘어서면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가야 하는데, 그 길에 아름다운 꽃길을 마주할 수 있다. 

이 길을 보여드리기 위해 계획한 여행인데 일단 소기의 목적은 달성이다. 7월부터 피는 꽃인데 아직 만개는 아니었으나 충분히 눈으로 사진으로 담을만하였다.




첫날은 먼 길 떠나온 체력 보충을 위해 고기를 구웠다.

엄마도 평소보다 기분이 더 좋으신지 알고 있는 양보다 더 드신다. 아주 기분 좋은 저녁이다.

백암온천 단지가 포항에 가까운 울진이라 울산에 사시는 막내 이모에게 연락을 하셨던 모양이다.

누나와 일곱 살 차이밖에 나지 않던 울산 사시는 막내 이모의 합류로 술판이 커졌다. 

20대부터 삼 남매가 적지 않게 마셨는데, 오래간만에 볼링핀 이상의 소주병을 멀리서 보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식사가 끝나고 못 내 아쉬움에 숙소에서 한잔을 더 했는데, 오랜만에 진하게 마셨다.

그렇게 여행의 첫날을 보내고, 아침 해장을 한 후 온천욕을 하고 나니 몸이 늘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둘째 날의 여행지로는 포항을 선택했다. 원래의 계획은 단지 내에서 푹 쉬면서 온천욕을 즐기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었는데, 어디라도 가기로 결정했다.

포항이 울산으로 내려가는 길이기도 했거니와 유명하다는 죽도 시장과 호미곶을 이번 기회가 아니면 다시 오기가 쉽지 않을 것도 같았다. 

포항물회와 전복죽

처음 와 본 죽도 시장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큰 시장이었다.

바다와 인접한 항구에 있어 수산물 시장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수산물을 기본이고, 청과와 각종 의류, 소품등 공산품 시장이 각 블록으로 나눠져 있어 종일 돌아다닐 규모였는데, 문제는 날이 너무 더웠다.


포항에 왔으니 그 유명하다는 '포항물회'와 '전복죽'을 먹기로 했다. 마침 블록이 교차한 위치한 식당에 젊은 청년들이 손님들을 안내하고 있었고, 별생각 없이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자리가 여유 있을 것 같은 예상과는 달리 겨우 3층에 자리를 하게 되었다. 계산하고 나오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블루리본이 네 개나 붙어있던 점포였다. 


포항 물회에 대한 내 평은 이렇다.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하고, 그 지역에 가면 으레 생각나기도 해서 강원도나 제주도에서도 물회를 종종 먹어보긴 했었다. 해장의 최상위권 음식임은 이미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결론은 최고였다. 지금껏 먹어 옸던 물회와는 격이 다른 뭔가가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여서 분위기가 좋은 탓도 있었겠지만 전복, 낙지, 각종 활어와 개불, 멍게 해삼들의 수산물과 각종 채소를 별도로 나오는 매콤한 소스를 부어 먹는데, 맛이 일품이다. 일단 시원하고 입안에 들어가는 숟갈마다 맛이 다양하다. 멍게의 쌉싸름함과 활어의 부드러운 고소함,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과 땡글땡글한 느낌이 한 그릇에 담겨 있다. 전복죽도 "이게 전복살인가?" 싶을 정도로 작게 나오는 식당들이 많은데, 여기는 씹어 먹을 정도로 끔찍하게 들어가 있어 맛을 더한 듯했다.




호미곶. 한 번을 가봐야 하는 곳이었구나.


육도 시장을 나오면서 이모 가족과는 다음을 기약했고, 우리가 향한 곳은 호미곶이다.

호미곶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조형물인 "상생의 손"과 한반도를 호랑이로 형상화했을 때 "그 꼬리"가 그것이다. 

호미곶 상생의 손

날이 너무 더운 나머지 빨리 가족사진 찍고 이동하려는데,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린다.

"갈매기들도 서열이 있어서 가운데 가장 높은 위치에 대장이 앉는데, 가운데 손가락에 대장 갈매기가 오면 찍어야 한단다..."

34도의 한낮의 기온에 그럴 만한 여유가 있지는 않아서 우리는 그냥 찍고 이동했다.




여유 있는 저녁? 슈퍼워크


다시 숙소로 돌아오니 어느새 6시를 넘어서도 있었다. 마침 돌아오는 화요일이 엄마 생신이셔서 이동하는 길에 작은 케이크를 준비하였고, 다시 한번 짧은 온천욕을 한 후 7시 반쯤 늦은 저녁을 먹은 후 생일 파티도 하고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었다.


그리고 어제의 과음과 오늘의 날씨, 포항 여행으로 피곤할 만도 한 타이밍이었는데, 요즘 유행하는 '슈퍼워크'라는 돈 버는 걷기 앱을 가족들이 모두 하고 있어서 다 같이 산책 겸 운동을 나갔다.


앱의 특성상 걸음걸이가 빠른 형과 내가 걷고, 누나와 엄마는 따로 보조를 맞춰 걷게 되는 한밤에 좀 우스운 광경도 펼쳐졌다.

저녁 식사와 걷기 앱




다음엔 여수다.


떠나기 쉽지 않으나 행복해하시면 됐다.

돌아오는 날 아침 식사를 하고 마지막 온천욕을 한 후 커피를 테이크 아웃 하여 숙소를 나왔다.

다시 돌아가야 하는 먼 길도 생각을 해야 했고, 오후 수도권 정체를 감당할 자신도 없어서 일찍부터 서둘렀다.


2박 3일의 짧은 가족 여행이었지만 이렇게 넷만 하기가 쉽지 않아 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번 여행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우리가 칭찬을 받을 만한 효자나 효녀는 아니나 자식으로 지금까지 큰 속앓이를 드린 적은 별로 없는 듯하다. 각자의 가정이 있고, 조카들도 있으니 더욱 엄마와 삼 남매만 여행을 떠나기란 쉽지 않으나 가고 싶었다.

해마다 체력이 달리시는 모습을 보며 "길어야 몇 년이겠구나" 싶은 생각에 무리를 해서라도 다녀야겠다는 생각에 다들 공감을 해주었다. 막내라서 할 수 있는 건 이런 게 아닌가도 싶다.

너그럽게 이해해 준 아내와 매형과 형수에게도 감사하고 싶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특히나 부모님과 함께할 시간에 결코 "다음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