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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로 May 30. 2023

너의 얼굴의 점은 반짝이는 별이야

The Little Mermaid 2023 주인공들의 점은 연출일까

딸이 36개월쯤 되었을 때 넘어져 얼굴을 다쳤는데, 딱지가 아무는 과정에서 코 옆부분 볼에 아주 작은 점이 생겼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 수준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아이가 크면서 점도 같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웃 어른들이나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얼굴에 뭐 묻었어? 김이야?"라는 식의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듣다 보니 아이도 어느 순간 얼굴의 점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점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건 위드코로나로 들어가는 즈음인데 이제 마스크를 벗어도 괜찮다고 했더니 아이는 계속 마스크를 쓰고 있고 싶다고 했다. 처음에는 아플까 봐 불안한 건가 싶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친했던 친구와 키즈카페를 갔던 날 그 친구는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는 우리 딸에게 '너 그래도 점 보인다~'라고 놀렸고 딸은 깜짝 놀라며 마스크를 위로 올렸다. 나는 친구 딸에게 '점은 보여도 상관없는 거야~ 예진이도 이마옆에 조그만 점 있네~'라고 말하며 딸 마스크를 벗겨주었다.




살면서 점에 대해서 이렇게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딸은 책이나 영화 속 주인공들의 점을 그렇게 잘 찾아내곤 했다. 왜 마녀나 심술궂은 악역의 얼굴에는 점이 있고.. 공주들의 얼굴은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하고 예쁜지. 인어공주를 좋아해 영어이름도 Aria라고 지은 딸은 Sea witch 얼굴의 점을 그렇게도 유심히 봤었다. 사진을 찍을 때면 브이 손가락으로 점을 가리는 딸에게 나는 아이유나 고소영 같은 예쁜 여자연예인을 검색해서 “봐봐~ 점 있어도 예쁘잖아~‘라며 보여주었다.


이번에 개봉한 The Little Mermaid를 보러 가기 전 바다마녀 Ursula의 점은 얼마나 실감 나게 표현되어 있을까, 딸이 또 점에 대해서 안 좋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봤는데.. 영화를 보면서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Ursula의 얼굴엔 점이 없고 오히려 인어공주 아리엘의 눈썹 위에 점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다마녀가 미녀로 변신한 Vanessa는 원작에서의 바다마녀처럼 입술 옆에 점이 있었다. 연출일까 우연일까 궁금해하며 봤지만.. 어느 쪽이든 나에겐 감동이었고 딸에겐 위로와 힘이 된 듯하다.


바다마녀 Ursula 캐릭터 비교. 이미지는 비슷하지만 점은 없다.
Ariel을 맡은 할리베일리와 Vanessa 역의 제시카 알렉산더님의 점..


인어공주 주인공의 캐스팅에 대해 논란이 많은데 이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주인공의 작은 점 하나로도 아이와 많은 대화를 하고 고정관념을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덧붙여 디즈니에서 요즘 주인공의 주도성을 많이 생각하고 있는데 이번 영화에서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원작에서는 목소리가 담긴 바네사의 목걸이를 동물친구들이 깼었는데 실화판에서는 Ariel이 직접 목걸이를 잡아 깨뜨려 목소리를 찾았고, 영화 끝무렵 에릭왕자가 보트로 바다마녀를 찔러서 무찌르는 장면도 왕자가 아닌 Ariel이 직접 배를 조종해 마녀를 찌르도록 연출되었다.



다시 점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동안 나도 모르게 '아휴 왜 예쁜 얼굴에 점이 생겨서'라고 안타까워했고 유아점 제거 전문 병원에 딸을 데리고 가 진료를 보기도 했다. 양가 부모님들도 '점이 점점 커지네, 어쩌니'라고 말씀하셨었다. 하지만 미국에 온 후 다양성을 자연스레 접하며 그동안 나도 모르게 한국 특유의 외모지향적인 언급을 많이 했었구나 깨닫게 되었다.


지나영 교수님의 본질육아 책에서 인상 깊게 본 내용이 있다. 영국의 왕자비가 된 메건 마클은 어렸을 때부터 주근깨가 많았는데, 매건의 아빠는 어린 딸에게 늘 이렇게 말해주었다고 한다.


주근깨가 없는 얼굴은 별이 없는 하늘과 같은 거야.
너의 주근깨는 별과 같이 아름다운 거란다


우리 딸은 사랑받으려 태어난 거야, Aria의 점은 반짝이는 별처럼 예뻐.. 이런 조건 없는 사랑의 말을 많이 해주려 하고 있다. 엄마의 이런 노력과 미국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이제 점 때문에 위축되었던 마음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작은 점 따위가 마음을 가리지 않도록, 세상의 많은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반짝이는 딸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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