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한 해 마무리
소파와 한 몸이 되어 핸드폰으로 인스타그램 둘러보기를 의미 없이 내려보고 있었다. 드라마 짤이나 웃긴 영상들을 보다 보면 시간이 언제 이렇게 지나갔나 싶다. 요즘 많이 나오는 밈 중에 하나는 MBTI 확인법인데 최근에 T(사고형)과 F(공감형)을 확인하는 질문이 유행이었다. 궁금함에 딸에게 한번 물어보았다.
"엄마 오늘 속상해서 빵 샀어.. ㅠ"
"무슨 빵?" (표정변화 없이 빵 종류를 묻는 딸. 살짝 당황)
"아니.. 엄마 속상해서 빵 샀어.. 흑흑"
"무슨 빵??"
"크크크크킄" (너무 단호한 딸의 표정과 물음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웃는 나를 보며 딸이 하는 말)
"엄마 빵 안 샀지! 거짓말했어? "
미국에 갈 때도, 미국에서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때도 딸은 친했던 친구들과 헤어짐이 슬플 수도 있는데 지나칠만큼 쿨하게 상황을 인정하는 모습에서 영락없는 T 성향이라는 생각을 하긴 했다. 확실하게 성향이 보이는 딸과 달리, 나의 2023년은 유독 '나는 어떤사람이지?' '무슨성향일까' 라는 의문이 많이 든 한 해였다. 나 혼자 햇갈렸던 것은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이 나에 대해 추측하는 성향도 가지각색이었는데 자주만났던 이웃 언니는 "T야? 완전 F인줄 알았는데~" 라고 말했고, 누군가는 나에게 "너가 E가 아니면 누가 E냐" 라고 했지만 얼마 전 나갔던 동기모임에서는 "언니는 완전 I지"라고 단정짓는 동생의 말을 들었다. 얼마 전 베프에게 '나 MBTI 맞추는거 전문가야. 너 ENFP지?' 라는 카톡을 받았는데, '아닌데~ 나 ESTP야. 어떻게 다틀릴수가있어'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다시 검사해본 결과에 놀랬는데, 20대 초반부터 10년간 변함없었던 나의 MBTI는ESTP에서 ENFP로 바뀌어있었다.
2023년은 MBTI가 바뀔 만큼 나에게 많은 변화를 준 시간이 맞다. 미국에 있었던 1년 동안 신생아 아기를 키우면서 참 열심히 돌아다녔다. 매일 집 앞 마트나 공원에 나갔고 도서관에 갔으며 6개월 된 아이와 하루에 8시간 운전하는 서부 로드트립을 떠나기도 했다. 가끔은 왜 나와서 사서 고생을 하나 싶기도 했지만 아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시켜주고 싶은 열정과 멋진 곳을 한 군데라도 더 가보고 싶다는 나의 욕망이 있었다. 이럴 때의 난 에너자이저 엄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매일 밤 '아.. 혼자 있고 싶다'라는 말을 내뱉었다. 육아는 강제적으로 나만의 자유시간과 휴식시간을 빼앗아갔다. 잠을 푹 자고 싶고 책도 방해 없이 맘껏 읽고 싶은데 새벽 6시부터 밤 9시까지 온전한 내 시간은 없었다. 지금도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나 간절하고 누구를 만나고 돌아올 때면 겨우겨우 불태우고 있던 에너지가 고갈되어 검은 연기만 가득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원치 않은 일정이 생길 때면 내 시간이 뺏기는 것 같아 전전긍긍하는 가난한 마음이 들었다.
2023년은 유난히 추억이 많다.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열심히 돌아다닌 여정들이 기억에 남는다. 남편과 딸과도 자주 꺼내 나누는 우리의 소중했던 지난날.
'요세미티에서 자전거 타는 거 너무 좋았는데, 그렇지?'
'디즈니랜드 갔을 때로 돌아가고 싶다~'
'따뜻한 산타클라라 그리워~~~'
그리고 23년 1월부터 시작한 글쓰기 모임을 시작으로 미주신문에 칼럼도 써보고 브런치도 시작한 것이 의미가 크다. 결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것이 피곤한 일상에서도 꼭 붙잡고 싶은 나의 일중에 하나가 되었다. 사람들과 만나 신나는 분위기에서 에너지를 받으면서도 혼자 조용히 생각하고 충전하는 시간이 나를 백퍼센트로 만들어준다. 누구와 무엇을 할 때 내가 편안하고 행복한지를 들여다보니 좋아하는 것들을 발라낼 수 있었다.
2024년을 준비하는 나의 키워드는 '적응'과 '중심'이다. 1월부터 딸의 유치원을 새로 옮기고 2월에는 복직이예정되어 있다. 하반기엔 임시로 살고 있는 이 집에서 다음 거취를 결정해야 하고 12월이면 딸의 취학통지서도 나올 것이다. 긴장되면서도 설레는 2024년. 양손을 잘 뻗어 이성과 감성, 혼란과 안정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