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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 답사

by 젤로

1. 언니 편


우리 가족의 추억을 키워드로 뽑아봤을 때, 1위는 단연코 왕릉 답사일 것이다. 단순 초등학교 방학 과제 주제였다고 하기엔 조선 26대 왕조의 릉을 모두 탐방한 온 가족 프로젝트였다.


방학이면 탐구 주제를 정해오라는 학교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다, 탐구가 무엇인지도 이해하기 어려웠던 나이였기에 방학 주제는 거의 아빠가 정해 주셨다. 나의 첫 과제는 우리 동네 문화재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었고 그다음 해 주제가 조선왕릉 탐방이었다. 당시 사극과 역사 만화책에 빠져 있었던 나를 보고 아빠가 관심사를 맞춰 주신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시절 나는 학교 끝나고 시간만 있으면 집에서 동생과 한복을 입고 장희빈 놀이를 하며 뭬야?를 외치곤 했다. 왕릉들은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었기에 평일이고 주말이고 엄마 아빠 시간 되실 때마다 강원도, 경기북부, 경기남부 어디로든 바로 떠나곤 했다. 나의 P성향은 이때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 무덤이 다 똑같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무덤의 크기나 왕릉 주변의 비석, 석상들의 차이가 있었다. 어느 무덤에서는 왕의 존엄이, 어느 무덤에서는 초라함이 느껴졌다. 왕릉에 갈 때마다 이 왕이 다스리던 시대는 어땠을까 궁금해 조선왕조실록을 여러 번이고 읽었다. 그때 읽었던 조선왕조실록은 내가 학창 시절 읽었던 책 중에 가장 두꺼웠다. 가장 재밌는 파트는 역시나 후궁 이야기였다. 숙종의 릉 옆에는 인현왕후릉이 어엿하게 있는데 장희빈묘는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역시 조강지처가가 남는 것인가, 어린 나이에도 덧없다는 감정을 느꼈다. 슬픈 사연과 릉의 초라함에 눈물을 흘렸던 곳도 있다. 단종이 묻혀 있는 강원도 영월의 장릉이었는데, 세조에 의해 일찍이 유배를 떠나게 된 안타까운 스토리의 역사 만화책을 너무 이입해 읽었던지라 장릉 주변의 푸릇함 조차 어린 단종의 슬픔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이렇게 강원도같이 멀리 떠나온 날은 숙박을 하고 주변 관광지 여행도 같이 했다. 영월에서는 고씨동굴에 들려 더위를 식히고 나오는 길 콩국수를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덥다 덥다만 반복하다 들어갔던 동굴 안에선 한순간에 더위가 사라졌고, 한풀 더위를 식히고 먹은 콩국수의 고소함은 강렬했다. 그전까지 콩국수는 거부감이 있던 메뉴였는데, 그날 이후 콩국수는 나의 애정하는 여름메뉴가 되었다.


답사가 단순히 편하게 즐기는 여행만은 아니었다. 왕릉은 부지가 대부분 아주 넓었기에 한번 갈 때마다 꽤 많이 걸어야 했고, 나는 아빠와 과제에 넣을 사진을 찍고 각 릉에 대한 정보들을 노트에 적어야 했다. 인터넷 검색이 없었던 시절이라 입구에 쓰여 있는 유적에 대한 해설들을 일일이 베껴 적기도 하고, 그날 느꼈던 점과 왕릉의 모습을 관찰한 기록을 하기도 했다. 가끔은 편하게 인증 사진만 찍고 쉬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래도 내 숙제인데 아빠에게 미루는 것에 죄책감을 느껴 끝까지 쫓아다녔던 것 같다. 나의 꾸역꾸역 정신도 이때 새겨졌나 싶다. 개학 2주 전 일기를 몰아 쓰듯 과제정리를 시작했다. 적어왔던 노트 필기를 정리해서 큰 종이에 연필로 반듯반듯 적었고, 사진을 붙이고 밑에 설명을 덧붙였다. 갔던 왕릉에 대해 한두 페이지씩만 적어도 3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었다. 글씨가 삐뚤삐뚤하면 아빠는 새로운 종이를 주고 다시 쓰라고 하셨다. 포기하지 않고 완성한 이 보고서는 결혼하고도 챙겨 온 나의 보물이 되었다.



2. 동생 편


그런 기억들이 있다. 사진처럼 각인되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또렷하게 남아있는.


그중 하나는, 무더운 여름 조선 왕조의 한 왕릉 앞 편의점의 파라솔 아래에서 엄마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아빠와 언니를 기다렸던 순간이다. 아마 6~7살 정도였던 것 같다. 그늘도 아이스크림도 꿀맛 같았지만 마음 한편엔 약간의 죄책감 같은 게 있었다. 그때 우리 가족은 초4였던 언니의 현장체험학습을 위해 조선왕조의 모든 왕릉을 찾아다녔다. 아빠와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왕릉을 관찰하고, 사진을 찍고, 뭔가를 끊임없이 기록하는 언니에 반해 나는 그늘에서 베짱이처럼 아이스크림이나 먹었다. 아이스크림과 슬러시를 먹다 보면 이마에 콧잔등에 방울방울 맺힌 땀을 닦으며 언니랑 아빠가 왔다. 그럴 때마다 점점 미안함과 죄책감이 들었다. 그땐 어려서 그 감정의 이름을 몰랐지만 지금 와 생각해 보니 그렇다. 언니랑 아빠는 고생하는데 나만 시원한 데서 맛있는 거 먹으면서 놀고 있다는 미안함과 죄책감, 언니 숙제니까.. 나만 쉬는 거 아니고 엄마도 같이 쉬니까 괜찮겠지 하는 약간의 안도감으로 마음을 달랬지만 불편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모든 왕릉을 다 찾아다녔던 아빠와 언니의 얼굴은 햇볕에 그을려 점점 까매졌지만 동시에 점점 빛이 났다. 원래도 반짝였던 까만 눈동자는 더 반짝였다. 그때의 아빠와 언니의 신난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때부터였을까, 난 놀고 있는데 누군가가 열심히 뭔가를 하고 있으면 괜한 조바심이 난다. 그때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뭔가에 몰입해 있는 사람은 멋있구나, 어딘가에 푹 빠져있는 사람의 눈동자는 반짝이는구나.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다. 뭔가에 깊이 빠진 사람은 빛이 나고 아름답다. 왜 본업을 할 때 가장 멋있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먹고살기 위해 회사에 다니면서도 늘 나의 진정한 본업을 찾기 위해 애쓰는 것 같다. 아마도 그게 이미 어른이 된 사람들의 꿈 아닐까.




왕릉 답사 어느 날




방학과제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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