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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작가 Nov 28. 2022

디지털 노마드 시대에 일터로 나간 아줌마


 고3 수시모집에서 유아교육과 불합격을 통보받았다. 교사의 꿈은 그날 접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상상만 해봤지, 불합격은 상상도 못 했다. 두 번째 스무 살 교사 대신 강사가 되었다. 디지털 노마드 시대에 일터로 나가는 일을 하는 게 맞나 싶었다. 나는 왜 시대에 거슬러 거꾸로 갈까? 물론 직업의 특성상 현장에서 일하는 직종이 있긴 하지만 다시 일을 시작하는 입장에서 사실 많은 고민을 했다. 성향상 정규직으로 고용되어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던 사람이라 프리랜서의 삶은 나와 맞지 않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컴퓨터 학원에 다니면서 육개장 사발면을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학원은 친구들하고 노는 재미반, 공부반 정도로 참, 즐겁게 다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때 배운 컴퓨터로 회사에서도, 학교에서도 유용하게 써먹었고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걸 보니 뭐든 배워두면 도움이 된다. 시골에서 학원 보내주신 부모님 덕분에 경단녀의 늪에서 벗어나게 되었음에 감사드린다.




 5학년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은 화를 내지 않아서 좋아요.” 육아서에 공부 정서가 긍정적으로 형성된 아이들이 성적도 좋다는 글을 읽었다. 방과 후 강사지만 아이들을 다그치면서 가르치기보다 칭찬을 많이 해준다. 그게 서로에게 좋다. 저학년 아이들은 나를 만나면 “컴퓨터 선생님~”하면서 뛰어와 허리춤에 안기고, 손에 들고 있던 짝꿍 캔디도 손에 덜어주는 순수함을 가졌다. 내가 그 아이들을 어떻게 혼내겠는가.




 자격증반 응시생 합격자 발표가 났다. 전원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다. 뿌듯함과 동시에 얼마 전까지 나는 집에만 있던 아줌마였는데 순간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졌다. ‘강사의 본질은 지식과 경험을 잘 가르치는 사람이다.’ 항상 마음속에 이 글을 새겨두고 강의를 한다.




 나름 N잡러다. 일을 시작하면서 염두에 둔 중요한 몇 가지가 있다. 현재 본업과 병행이 가능한가? /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인가? / 어떤 형태의 N잡이 잘 맞는가? / 수익을 어떻게 창출할 수 있는가? / N잡은 나에게 무엇을 충족시켜주는가? 출처 : <N잡러 체크리스트>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엄마이자 주부이다. 가족들 식사와 두 아이 등교가 가장 중요했다. 오전에 집안일하고 12시가 되면 출근 준비를 하고 현관을 나선다. 가정도 돌보고 풀타임보다 지금 내 생활에 적합한 직업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오후에 열심히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 아이들에게 더 집중할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






 내 오후 생활은 주로 아이들 학교 다녀오면 공부를 봐주는 일이었다. 가끔 화가 나서 아이에게 쓴소리를 하고 나면 집에서 밥하고 애 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자존감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날이 많았다. 코로나19 이후로 얼굴에 팩트를 바른 기억이 없다. 면접을 보던 날 몇 년 된 팩트를 정성스럽게 찍어 바르고 갔다. 좋은 결과를 갖고 집에 돌아와 욕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한결 생기가 돌았다. ‘이래서 여자들은 가꾸고 꾸며야 하는가’ 보다 하면서 피식 웃음이 났다. 선생님이라고 불려서가 아니라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 된 것 같아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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