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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작가 Dec 05. 2022

엄마의 시집살이

애처로운 삶

  날카로운 목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밤새 또 뭐가 못마땅했는지, 아침부터 며느리를 잡는다. 이렇게 맞이하는 아침은 참으로 고통스럽다. 미닫이문을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살짝 열어 보고 눈치를 살핀다. 우리 엄마의 시집살이. 할머니는 인정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냥 모진 말도 서슴지 않고 내뱉었다. 그 뒤에 엄마는 한없이 지쳐 보였다. 얼마나 곤욕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셨을까?



              

  엄마는 두 살 터울인 우리 삼 남매를 키우시면서 부업으로 밤낮 가리지 않고 틈틈이 그물을 짰다. 할머니는 어두운 밤에 사랑방에 불이 켜져 있으면 전기 차단기를 내려버렸다. 엄마는 어린 동생들 기저귀 갈 때도 어둠 속에서 갈아줬다고 한다. 우리 할머니는 왜 정이 없었을까? 왜 그래야만 했을까?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절약이 우선이었을까?



             

  동네에서 무섭기로 소문난 호랑이 할머니였다. 어릴 때 과자 먹고 싶으면 우리는 과자를 사서 윗옷에 넣어 숨겨 대문을 들어왔다. 할머니에게 들키면 또 큰소리가 난다. 손주들이 과자 먹는 것도 싫어하셨다. 추운 겨울 할머니가 “율아” 하고 불러서 가보면 귤을 여러 개 담아 주신다. 그 귤은 이미 얼었다. 우리는 그 귤도 맛있게 먹었지만, 왜 얼기 전에 주시지 않았을까 싶다.



               

  겨울이면 버스를 타고 시내 목욕탕에 갔다. 엄마는 애 셋을 목욕시키고 맞은편 짜장면집에 우리를 데려가셨다. 이게 우리의 유일한 외식이었다. 탕수육도 없다. 그냥 짜장면 한 그릇에 우린 행복하고 배불렀다. 그렇게 목욕하고 온 날 저녁밥을 안 먹는다고 하면 “배때지 불러서 저런다”며 볼멘소리만 하셨다. 삼 남매 중 맏이인 나는 그게 듣기 싫어서 밥 안 먹는다는 동생들을 구슬려 “억지로라도 물 말아서 한 번만 먹어” 우리가 밥 안 먹으면 그 화살이 엄마에게 갈 게 뻔했다. “뭐 사 쳐 먹여서 그러냐”는 심한 말도 하셨다. 오 남매 중 외며느리인 엄마의 삶은 참 애달팠다. 요즘 사람들은 그 모진 수모를 당하고 안 산다. 지금 마흔인 나보다 더 어렸던 엄마가 안쓰럽고, 애처롭게 느껴진다.


               

  둘째 아이 돌 즈음에 메르스가 있었다. 양가 가족들과 돌잔치도 못 하고 몇 달 뒤 친정 식구들과 제주도에 갔다. 천지연 폭포에 갔을 때 문자 진동이 울렸다.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 해라. 준표.’ 우리 시아버님이시다. 엄마에게 문자를 읽어드렸더니 여동생에게도 저런 시아버지 만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항상 마음 따뜻하게 며느리에게 표현하시는 아버님을 우리 엄마는 안심하신다. 어쩌면 당신의 돌이킬 수 없는 삶보다 딸의 앞날을 더 걱정하고 응원했기에 그런 마음이 더 컸으리라 생각된다.



               

 우리 엄마는 내면이 강한 사람이다. 천성이 강했는지, 후천적으로 단단해졌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생각하면 엄마가 가정을 유지해 준 게 참으로 감사하다. 앞으로 엄마의 삶은 꽃길처럼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누구보다 내가 평생 엄마에게 친구가 되어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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