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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아이 Dec 17. 2022

늬들도 어디 한번 당해봐라

결국 나는 다섯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2014년 무더위가 푹푹 찌는 한여름, 둘째 아이를 낳고 친정 가까이 산후 조리원에 있을 때였다.

자연분만을 해서 낳았다지만 내 몸뚱 첫째 때와 마찬가지로 제왕수술을 한 조리원 동기들보다 훨씬 못한 상태였다. 그야말로 억지 억지 자연분만이었다.

조리원 일정만으로도 너무 힘에 부치고 벅찼다. 는 대로 감사히 잘 먹고, 수유하느라 너무 애쓰지 말고 잘 자고 잘 쉬어야지, 처음엔 뭣도 모르고 겪어 봤으니 똑같은 실수는 저지르지 야지, 다짐을 했다.

축하하러 오시겠다는 분들의 발걸음도 최대한 정중히 거절해달라고 남편에게 부탁을 했더랬다.


그런데 녀석들 한사코 오고야 말겠단다.

"괜찮은데. 번거롭게 안 와도 되는데."

"에이, 저희는 진짜 괜찮아요. 잠깐이면 돼요. 지금 바로 출발합니다."  

아유, 고집하곤 정말. 구태여 왜 이 멀고 낯선 동네까지 겠다는 거야.

말과는 다르게 기다림 속에 마음 한 켠이 몽글몽글 따스해지다니, 마음이란 참 이상도 하지.




"악, 축하해요. 고생하셨네요. 얼굴이 왜 그래요? 몸 그렇게 안 좋아요? 몸조리 잘해야는데."

무겁게 내려앉아 있던 몸도 마음도 단번에 정신없이 휘저어 버리는 텐션이라 하면 갑인 그 둘.

두 녀석은 무척이나 활기차고 호탕한 목소리로 뭔 오지랖인지, 모 교회 권사님들께서 심방이라도 오신 듯 숨도 안 쉬고 안부를 묻는다.

(20대 아가씨들에게 '녀석'이란 호칭은 매너가 없는 것도 같지만 어쩐지 친밀감이 없어 보이는 느낌이라.)

무언가를 준비한 모양이다. 갑자기 부산을 떨며 바삐 움직인다.

처음으로 엄마 는 시간을 버텨야 할 텐데 우리라도 챙겨야죠, 하며 첫째 아이 위해 준비한 선물을 천연덕스럽게 꺼내었다.

'옴마, 이 센스 보소, 감동 보소.'  

첫째가 마음에 밟히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눈물만 줄줄 흘는데, 아이 마음까지 살뜰히 헤아려 주다니, 저릿한 고마움에 연신 감탄사만 쏟아내고 있던 찰나였다.

뭐랄까 어딘가 엉큼한 미소와 함께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어우, 이게 뭐야, 말도 안 돼."




다름 아닌 케이크.

그러나, 세상에 오직 단 하나뿐인, 세상에서 가장 별나고 별난 케이크.

위에 새겨둔 상상도 못 할 문구 발견하고 두 눈을 의심했다.


출산드라♡ OOO

워낙 충격이 커서 제대로 기억을 할 수 없으나. 다산을 축하한다나, 기원한다나.

둘의 의도는 바로 이거였다. 눈치 챙기기엔 너무 늦어버린 순간, 황당하기 그지없는 내 표정이 우스운지 진심을 다해 까륵까륵 웃어대기 바빴다. 엉큼하고 발칙하게.

이거 한답시고 얼마나 머리 맞대고 고민했을까, 이 정성 대체 누굴 위한 것일까. 

"와, 늬들 너무한다 야, 어떻게 꼴랑 애 둘 낳고 출산드라가 뭐니! 쪽팔리게 말야."

구시렁구시렁대자 못 들은 척하며 녀석들은 또 닦달했다.

찰칵.

출산으로 퉁퉁 부어 있던 나와 밤새 모기에게 공격당해 눈두덩이가 퉁퉁 부어 있던 딸내미. 이렇게 우리 둘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별난 케이크와 함께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사진을 남겼다.




그렇게 어이없고 우습기만 한 추억으로 남았으면 어땠을까.  

추억으로만이 아닌 현실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6년 전 어느 산부인과의 의사는 아이를 갖기 어려울 수 있겠다고 무겁게 이야기했었지만 그녀는 틀렸다.

세상 가볍고 장난스럽기만 했던 두 녀석의 코멘트는 대단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대예언을 능가하는 힘이 있었다. 아님 말이 씨가 되려고 한 건지, 녀석들의 장난은 점점 현실로 하나하나 마주하게 되었다.

비록 두 녀석도 예상 못했겠지만, 의도한 바도 아녔겠지만, 나의 삶은 "출산드라의 삶"으로 한 발 한 발 스며 들어왔다.



 

그래, 그들의 예언대로 셋을 낳고 다 이루었다, 생각했다. 결단코 마지막이라고 단언했지만 나의 큰 착오였다.

'역시 막내라 다른가, 어쩜 이렇게 이쁠 수가 있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막내로서 받기 마땅한 사랑을 주었다.

그러나 불쑥 또 다른 존재가 나타나 셋째를 밀어내고 막내 자리를 꽤찼다.

넷째가 '나 말고  없지.' 왕처럼 자신만만하게 자리 굳힘을 해갈 즈음, '흥, 정신 차려, 내가 진짜 막내거등.'하며 비웃기라도 하듯 부모, 형제랄 것 없이 세상 둘도 없는 사랑과 이쁨을 받던 넷째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 치고 위풍당당한 그 진짜가 나타나고야 말았다. 

우리 인생에 다시 없을 중대한 사건사고였다. 셋도 넷도 아닌 다섯이라니.




요란 난리법석. 오두방정. 난리부르스. 똥 지랄발광. 

무슨 말을 갖다 대도 형용이 안 되는 "독수리 5남매"와 함께 하는 매일매일이란, 허허, 그저 웃지요.

혹여라도, 삶이 쪼금이라도 지루하고 단조로울까 봐, 삶의 퍼즐 중 수많은 조각들을 알록달록 무지개빛깔로 다채롭게 색칠해준 너희에게 어찌 다 고마움을 표현할까.


그녀들이 첫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보내오면, 서둘러 '출산드라'라고 곱게 적은 케이크를 들고 조리원으로 달려갈 테다. 

출산드라의 삶이 얼마나 눈물 나게 행복하고 행복한지, 늬들도 겪어보면 알 것인디.



그렇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다섯 아이의 엄마다.  

그 어디서도 듣지 못했을 다섯 아이와의 하루를 기대해보시길.




큰 딸과 나, 그리고 그 케이크 :)




photo by pixabay & 작은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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