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새 학기 때 쓸 학용품을 둘러보던 참이었다.
레트로 감성 가득한 한 문구 사이트에서 난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애들 필통이고 뭐고 내 손가락은
탐스러운 포도알, 그것부터 장바구니에 담고 있었다.
추억의 포도알은 그렇게 뜬금없이 소환됐다.
그 시절 국민학교에는 포도알이라는 게 있었다.
크기는 고작 100원짜리 동전만 할까 말까 했지만 고 작은 종이조각은 힘이 셌다.
돈으로도 살 수 없었으니까. 여덟 살 코찔찔이에게 학교는 포도알을 받기 위해 다니는 곳일 정도였으니까.
선생님 책상 위에 올려진 동그란 플라스틱 통. 그것은 쉽사리 열릴 줄 몰랐다.
받아쓰기 시험, 산수시험, 글씨 이쁘게 쓰기, 뭔가를 잘할 때만 열렸다.
도도한 그 포도알 통이 열리는 순간만큼은 소란스러웠던 반 아이들도 초집중했다.
무슨 용돈이라도 받는 것처럼 포도알을 한 개 두 개 받아 드는 그 순간, 혹여나 그 귀하신 몸이 콧김에 날아가버리기라도 할까 조심조심 받아 들었다.
필통에 넣기 전, 겹쳐져 있는 보너스 포도알이 있나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선 진지하게 작업에 들어갔다. 포도알을 포도송이 그림에 옮기는 작업. 포도알을 물풀로 콕 찍고 손가락으로 꾸욱 눌러 마무리했다.
하나하나 늘어가는 영광의 포도알은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불렀다. 알알이 박혀있는 선생님의 빨간 인증 도장은 '너는 좋은 애야' 엄지 척하고 있는 거 같았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렇게 다 붙인 포도송이를 학교에 가져가서 어떤 걸 받았는지, 뭘 했는지
그건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거다.
그저 학교에서 집까지 고이고이 모셔왔던 기억, 애지중지했던 장면만 생생할 뿐이다.
"엄마 이거야? 디따 귀엽다"
배송된 21세기 포도알을 보고 아이들도 반응을 보인다.
"같이 해 볼래?"
내친김에 한 장씩 나눠 갖기로 한다.
그 옛날과 달라진 게 있다면 깔끔한 마무리가 가능한 스티커라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내 포도알은 내가 준다는 것. 자기가 타이틀을 정하고 그걸 지킬 때마다 자기 손으로 붙이기로 한다. 목표 세우기도 셀프, 칭찬도 셀프다.
어떤 목표를 걸어볼까. 평소 1분 이상 생각하면 큰 일 나는 줄 아는 아이들이 웬일인지 생각이라는 걸 다 한다. 자기들끼리 뭔가 얘기하는가 싶더니 드디어 정했단다.
'새로운 도전' 할 때마다 하나씩 붙여보는 거 어때?
안 하던 짓을 한번 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포도알을 주자고 한다.
오 그거 좋다. 잘했을 때 말고, 꾸준히 유지했을 때 말고
일단 '시도'만 하면 붙일 수 있다니, 그 느슨함이 왠지 맘에 든다. 그때부터 냉장고 옆에 붙여 놓은 허전한 포도송이를 채워보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기 시작했다.
다음 날 둘째가 스타트를 끊었다.
"오~ 스타트 가나요?"
"오늘부터 우유 한 팩씩 마시기로 했거든. 봐봐 나 다 마셨어"
평소에 우유를 싫어라 하던 둘째가 포도알 붙여보자고 큰 맘을 먹었나 보다.
허연 우윳빛깔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정성스럽게 개시한다.
유난히 익숙한 것만 좋아하는 우리 세 모녀의 사소한 도전은 그렇게 하나 둘 이어졌다.
혼자 버스 환승 도전해 보기 (엉뚱한 데서 내리는 바람에 살짝 헤매긴 했지만)
일어나자마자 이불 정리 하기 (삐뚤빼뚤이지만)
유튜브 시청 하루 쉬어 보기 (얼떨결이었지만)
아침 10시 전에 눈 뜨기 (눈만 뜨고 누워 있었지만)
아이들이 자꾸 새로운 걸 찾아내니, 나도 덩달아 뭔가를 해 보고 싶어 진다.
미루고 미뤘던 명상 어플 한 달 결제 하고 기념으로 10분 명상하기.
거실 어질러지는 거 참았다 왕창 한 번에 정리하기.
뭐 이렇게 거창할 거 없는 시도들이지만 시도인 것들.
포도알을 붙이다 보니 예전에 아이들과 하던 칭찬 스티커 생각이 난다. 아이들 습관 들이는데 나름 효과도 있었던 그것. 하지만 아이들이 커가면서 불안한 엄마는 독서, 문제집 풀기, 글쓰기 이런 걸 걸었고 머리가 커질 대로 커진 아이들은 '에이 안 받고 말래'를 선택했다.
지금 와 드는 생각이지만, 그건 아이들이 원하는 스티커가 아니라 엄마 불안 낮추기용이었을지 모르겠다. 내가 정한 타이틀이었으니까.
분명 칭찬을 해주마 하고 만들어놓고는 채워지지 않는 빈칸들을 보며 재촉하기도 했다.
자주 보는 소아정신과 지나영 교수님 영상에서 띵 맞은 적이 있다.
그녀는 아이 갖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고 한다.
"엄마, 있지. 나는 애기 있었으면 진~짜 잘 키웠을 텐데"
그 슬픈 마음을 그녀는 엄마에게 이렇게 표현했고, 이어지는 어머니 말씀.
나영아, 아~는 잘 키울라고 낳는 거 아니래이.
사랑해 줄라고 낳는 거래이.
잘 키워보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그 마음은 이상적인 아이상을 만들게 했고
그 틀에 열심히 끼워 맞추려 했다. 잘 깎고 다듬어서.
그중 하나가 내겐 칭찬 스티커였던 거 같다.
아이들이 받아들이지 않아 얼떨결에 한발 떨어지게 되었지만, 그렇게 떨어지고 보니 그때는 안 보이던 게 조금 보인다.
키우는 게 아니란다. 사랑해 줄라고 낳는 거란다. 마음에 새기고 또 새기지만 요즘도 자꾸 참견을 하게 된다. '사랑하는 딸, 근데 이렇게 커 보는 건 어때?'
그들이 뭘로 포도알을 채우든, 몇 개를 채우든, 빈칸이 몇 개든
나는 내 포도알만 보기로 다짐해 본다.
어떤 새로운 일을 저질러서 저 포도송이를 채워보나
나는 내 빈칸만 노려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