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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 from A Jan 12. 2024

스물다섯이지만 열다섯처럼

진짜 '나'는 어디에 있을까. 가나에서 방황하다.

벌써 가나에 온 지 4개월이 되었다.

나는 국제기구 포지션에 합격하여 가나에 오게 됐고, 약 4개월째 근무하고 다.


해외 생활도 처음인데, 자취도 처음이고, 시작을 아프리카에서 하다니. 아주 화끈한 시작이 아닐 수 없다.

가나는 아프리카 기준에서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나라이지만, 그래도 당연히 가나 생활과 한국 생활은 비교할 수 없이 삶의 질적인 차이가 크게 있다.


한국에서처럼 퇴근하고 동네 카페에서 늦게까지 책을 본다거나, 동네 헬스장 또는 필라테스를 다닌다거나, 버스 타고 몇 정거장 가서 영화를 보러 갔다 오는 게 여기선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가나의 동네 헬스장은 지붕이 없는 야외 헬스장이며, 영화를 보려면 택시를 타고 가야하는데 왕복 약 한 시간이 걸리고, 갈 만한 동네 카페는 한 두 곳뿐인데 그마저도 저녁 6시에 바로 닫는다. 이 세 개가 내게 가장 힘든 이유는 그 3가지가 한국에서 내 삶의 일상이자 삶의 낙이었기 때문이다.


배부른 소리일 수 있겠지만, 나는 서울을 벗어나본 적이 없던 서울 토박이였다. 서울의 중심 부근에 평생 살았어서 서울 내에 어디를 가도 대부분 1시간 내에 도착했었고, 서울 밖을 벗어날 일이 거의 없었다. 또한 직장도 강남역에 위치해 있었기에 인프라의 부족함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평생 접근성이 좋았던 곳에서 살고 일했던 탓인가, 어쩔 없는 제한적인 환경들이 아직 힘들고, 적응이 필요하다.


가나를 오기 전 한국에서의 내 일상은 이랬다. 아침에 영어회화 수업을 듣고 출근 시간에 책을 읽었다. 8시간 동안 근무를 했고 점심시간에는 책을 읽고, 학교 과제를 했다. 퇴근하고는 학교 수업을 듣거나, 카페에서 독서, 과제 등을 했다. 학교를 다니기 전에는 영어 공부를 하거나 운동을 하고, 악기를 배웠다. 나는 늘 회의실이나 카페에 틀어박혀서 무언가를 하곤 했다. 하루하루를 꽉 차게 살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았던 나는 내가 진짜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 채 쳇바퀴 구르듯 정신없이 나를 채찍질하며 살았다.


여기 가나에서는 반강제적으로 오히려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 하루를 꽉 채워 살지 못하고 많은 자유시간을 가지게 된 나는 미치도록 불안했다. 집에서 생산적인 활동(공부, 운동, 취미 등)을 하지 않고 밖에서 하고 들어왔던 내 라이프 스타일을 여기 가나에서는 유지하지 못하니 삶이 아예 무기력하게 바뀌고 말았다.


그렇게 나는 무기력 속에서 헤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애써 회피해 왔던 문제들을 정면 하였던 것이다. 사회적 시선에 점철되어 있던 사회 밖으로 벗어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나만을 생각할 수 있는 환경에 오니, 내 무의식에서 빼꼼 내밀고 있던 그 욕망, 감정, 두려움을 내다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재밌지 않았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하기 싫어서 의자에 앉아있는 것도 힘들었다.

내가 나를 잘못 생각하고 있었고, 스스로 최면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글의 제목처럼, 스물다섯이지만 마음은 열다섯 살로 되돌아가 나 자신을 찾고 싶다. 가나에 와서 나는 나 자신을 너무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계획적인 사람인지 즉흥적인 사람인지, 참을성이 강한 건지 없는 건지, 감성이 풍부한 건지 아닌 건지 나조차도 답을 모르고 있었다.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잘하는지,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지나가는 시간과 다양한 환경 속에서 흐릿해지는 내 형태를 흐트러진 종이 정리하듯이 정리하고 싶다. 그리곤 내 동굴을 찾아 그 속에서 깊은 감정을 꺼내 만지고 이리저리 보면서 제대로 알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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