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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매 Oct 24. 2023

EP 20. 말버릇이 이상한 클라이언트

제가 지금 뭘 들은거죠?

오랜만에 착수보고회에 다녀왔습니다. 본격적인 프로젝트 시작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프로세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이죠. 그렇다고 해서 마냥 가볍거나 편안한 자리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착수보고는 '유독' 불편한 자리였습니다. 바로 '말(言)' 때문이었습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클라이언트와 저희는 이 자리에서 첫 인사를 나눴습니다. 서로 명함을 교환하며 이름과 얼굴을 외워가는 정도였죠. 이런 자리에서 클라이언트 그룹의 리더가 매우 언성을 높이며 비속어를 섞어 이야기를 이어갔고, 심지어 우리 앞에서 본인의 직원들에게 "야, 너"라는 무례한 호칭은 물론 요즘 사회에서는 꽤 폭력적으로 들릴 수 있는 말들을 늘어놓았습니다. 머릿속이 아찔해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모아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지에 대해 고민하는 자리에서 30분 내내 불신과 비속어가 섞인 어른의 말을 듣고 있자니 내심 '당신 말대로 프로젝트 시작하기 전에 미리 엎어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는 연신 우리가 만들어간 첫 자료가 형편없고, 프로젝트 기간이 끝나는 날까지도 분명 망치고 예산을 날려 먹고 말 것이라는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이 자료로 전문가들 앞에서 정정당당한 경쟁을 통해 이 자리에 온 것인데 말이죠. 사실 용역사를 향한 불신의 시선은 종종 경험할 수 있는 부분이기에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자기 할 말만 하는 어른을 본 것은 오랜만이라 약간의 울렁거림마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아, 이렇게 상대의 진을 쏙 빼는 화법이라니요. 반칙 아닙니까?


언격은 인격이다.

짧다면 짧은 사회 생활을 하면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언격은 인격이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말수가 많은 편이지만 저의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지 걱정하면서 대화하는 편입니다. 이렇게 조심하더라도 알게 모르게 '아차!' 싶은 순간이 있기 때문에 모든 대화에 신중하게 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단 사회생활 뿐만 아니라 친구, 연인, 가족 간에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대화법, 어투, 단어 선택 등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입니다. 남들은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는 부분도 '어떻게 저런 식으로 말하지?'라는 의문을 갖곤 하죠.


이번 클라이언트는 그런 점에서 솔직히 빵점이었습니다. 진짜 언격이 인격이라면 그에게는 어떠한 '격'도 없어 보였으니까요. 한 그룹의 리더가 용역사 앞에서 온갖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로 30분 동안 분위기를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모습을 보니, 그룹 자체의 격도 바닥을 뚫고 내려가는 듯했습니다. 본인이 이만큼 기가 세다고 허세를 부리고 싶은 걸까, 살면서 누구도 잘못된 언행을 알려주지 않았던 걸까 등의 생각을 해보기도 했지만 그저 말버릇이 이상한 사람 정도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겠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오늘의 기억은 제가 사회생활을 그만 두는 날까지 오래토록 기억해야겠습니다. 언젠가 한 그룹의 리더가 된다면 더욱 잊지 않아야 할 것 같습니다. 말로 신뢰를 얻고 돈을 버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적어도 제가 내뱉는 한 마디가 이 그룹과 직원들의 이미지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할 테니까요. 이런 글을 적는 것마저도 뒤에서 욕하는 글에 머무르지 않을지 걱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격은 인격이라는 말을 항상 잊지 않고, 오늘의 그 어른과 같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항상 노력하려고 해요. 부디 다음 회의에서는 조금 더 차분한 모습으로 볼 수 있기를 바라요,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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