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영화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oppy Jul 27. 2024

내 발자국을 대하는 태도 [어바웃 타임]

누구나 마음 속 깊은 곳에 흑역사 하나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 때 내가 왜 그랬을까, 시간을 돌리면 그만큼 낯부끄러운 흑역사는 만들지 않겠노라고 다짐하게 된다.

흑역사 뿐 아니라 그냥 너무 마음 아픈 기억이 있을 수도 있다. 떠올리기조차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시간을 돌릴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주어진다면 어떨까?

내가 결혼할 때 빨간 드레스를 입고 Il Mondo를 배경음악 삼아 입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든 영화, 런던이 가고 싶게 만들어 준 영화

어바웃 타임이다...



(줄거리) 대부분 나무위키를 참고

모태솔로인 팀은 성인이 된 날, 아버지로부터 놀랄 만한 가문의 비밀을 듣게 된다. 이 집안의 남자들은 성인이 되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본인의 인생 중에서 겪은 과거로만 돌아갈 수 있다는 제한이 있긴 하지만, 팀은 이 능력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보기로 한다.

꿈을 위해 런던으로 간 팀은 우연히 만난 사랑스러운 여인 메리에게 첫눈에 반한다.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팀은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특별한 능력을 선보이고, 결국 꿈에 그리던 그녀와 매일매일 최고의 순간을 보낸다.


하지만 모든 능력은 양날의 검이기에, 과거로 돌아간 팀에게는 또 다른 새로운 미래가 펼쳐지게 된다...

원하는 순간을 다시 살아낼 수 있다면, 얼마든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가?



돌이킬 수 있다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에서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많은 것들을 돌이키는 것이다.


가장 먼저 흑역사를 돌이키는 일이 떠오른다... 엄청난 흑역사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냥 내 흑역사는 떠올리기도 싫다.

그때 좀 더 유창하게 말을 할 수 있었어야 했는데, 그 때 좀 더 단호하게 얘기할 수 있었어야 했는데...

'~했었어야 했는데' 라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많은 문장들이 내 머릿속을 지난다.

실제로 이 영화의 주인공인 팀은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이용해 자신의 꽤 많은 흑역사들을 지웠다. 참고로 이 영화를 볼 때 팀이 당황하거나 어색해서 어찌할 줄을 모를 때 나조차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차라리 팀이 그 능력을 많이 써서 그가 흑역사를 제조해 내는 장면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을 지경이었다.


두 번째는 시험에 관한 일이 떠오른다. 시험을 치고 나면 100점이 아닌 이상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다.

중/고등학교 시절 시험이 끝나고 답을 맞춰 보며 '이 답은 바꾸지 말았어야 했는데' '교과서에 이 부분 조금만 더 자세히 보고 갈 걸'

시험 전에는 분명히 철저히 공부했다고 생각했지만 언제나 아쉬움이 조금은 남는 감정에 시험 시간으로 돌아가 답을 고치고 싶은 순간들이 존재했다.


마지막으로는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바웃 타임에서 주가 되는 것은 이성 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이 능력은 비단 이성이나 연인에 대해서만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때 이 친구와 좀 더 친해졌더라면 어땠을까, 혹은 안 맞는다는 것을 절감하고 멀어질 관계라면 애초에 가까워지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와 같은 생각이 될 것이다.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내가 만약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나는 내 삶에서 아쉬웠던, 혹은 고치고 싶었던 순간들로 돌아가 하나하나 보수 공사를 진행할 것이다... 아마도


그런데 이런 보수 공사를 진행하다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혐오가 더 심해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러 번의 시간 여행으로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순간들을 완벽하게 바꾸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그건 과연 온전한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나의 수많은 시정 행동으로 나를 더 좋게 봐줄 수도 있고, 나도 아쉬운 장면을 하나하나 지워 나갔다는 것에 덜 흑역사스러운 삶을 이룰 수도 있지만

그러한 내 인생은 온전한 나라고 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러면 내가 사소한 실수를 했다고 생각할 때마다 다시 어두운 벽장 속으로 들어가서 주먹을 꽉 쥐지 않을까?

결국 더 많은 순간들을 반복하고,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 수없는 시간의 반복을 겪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애정에 대해서도 물음표를 던질 것 같다.

지금의 나는 분명히 완벽하지 않고 수많은 결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사랑까지는 아니어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 내가 완벽해서가 아니다. 그래서 때로는 그 사람들에게 투정도 부리고 푸념도 털어놓을 수 있지만...


내가 어떠한 결점도 남기지 않아서 그 사람들의 호감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

이 사람이 진정 나를 사랑해 주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수많은 시간 반복을 통해 만들어진 최선의 나만을 사랑해 주는 것인지에 대한 혼란이 엄습하지는 않을까?


적어도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기 위해서는 시간 여행은 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었다.



나비효과


시간 여행에 대해 딱히 큰 단점을 발견하지 못했던 주인공은 결혼을 하고 나서도 종종 시간 여행을 이용한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공 팀은 이 시간 여행의 위험성을 발견하게 된다.


팀의 여동생은 소위 말하는 '집안에서 인생이 잘 안 풀리는' 사람이었다.

팀의 여동생은 그녀를 좋은 방식으로 사랑해주지 않는 남자를 만나 정신은 피폐해졌고, 소박했던 고향 콘월과는 달리 사회활동을 해야 하는 런던에서 그녀의 자유로운 기질은 그녀를 부적응자로 만들었다.

어느 날 그녀는 남자친구와 크게 다툰 채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다가 큰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팀은 여동생에게 다른 삶을 선물해 주겠다고 다짐한다.

그래서 몇 년 전, 그가 21살 새해를 맞는 파티로 돌아가 여동생에게 더 나은 남자를 소개시켜 준 후, 그녀의 인생이 달라질 것임을 느끼며 뿌듯한 마음으로 현실로 돌아온다.


그런데 그의 아기가 바뀌어 있었다! 그가 아기가 태어나기 전 과거로 돌아가 아주 작은 요소들을 바꾸어 왔기 때문에 그의 현재마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나비효과가 떠올랐다.

나비효과란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 처럼 아주 작은 일들이 생각보다 큰 변화를 초래할 수 있음을 명명하기 위한 말이다.


돌이켜 보면 내 인생에서도 이런 나비효과는 몇몇 존재했다.

내가 이 학교를 지원하기로 마음먹지 않았다면, 내가 이 친구와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면, 내가 이 활동을 하기로 결심하지 않았다면

지금 내 인생의 궤도는 어디를 그리고 있을지 궁금해지는 나비효과의 갈림길에 서 있었던 순간이다.

내가 자각하는 순간도 있고, 자각하지 못했던 순간도 존재하겠지만 우리 인생에서는 어쨌든 많은 나비효과를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시간 여행의 능력은 생각보다 훨씬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능력이다.

그가 과거를 바꾸기 위해 한 순간으로 돌아가 행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누구도 잘 알지 못하는 법이다...



+) A Step You Can't Take Back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 영화 중 하나인 <비긴 어게인>에서 키이라 나이틀리는 A Step You Can't Take Back 라는 노래를 부른다.

말 그래도 돌이킬 수 없는 걸음이라는 뜻인데, 실제 가사는 내가 의도했던 내용과는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이 제목이 불현듯 떠올랐다.


우리가 내딛는 걸음은 매 순간순간 돌이킬 수 없는 것,

그리고 그 걸음이 조금은 후회되는 측면이 있더라도 그 후회되는 걸음까지도 모두 인생이라는 것이 이 영화에서 말하고 있는 일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내가 아주 큰 발걸음을 옮기고 지하철에 타서 이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더더욱 특별한 노래입니다.



+) 되새김질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시간 여행을 하는 순간을 살펴보면 마치 소의 되새김질 같다.

이 때의 되새김질은 한 번 삼킨 먹이를 게워 내어 다시 씹는 행동으로, 다른 말로는 반추라고도 한다.

소에게 이러한 되새김질은 하나의 자연의 법칙이자 순리이지만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다.


음식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시간도 마찬가지 아닐까?



나름의 예의


내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가정 하에 (!)

나는 후회되는 그 순간을 인생의 일부로 인정할 수 있는 태도가 내 나름의 예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서 상대방은 인생의 이 순간이 처음일 텐데

나 혼자서만 5번째 반복이라면 그건 인생의 순간을 함께하고 있는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평하게 초짜로서 함께 순간을 향유하는 것이, 서로의 인생에서 아주 작은 순간일지라도 같이하는 사람으로서의 예의가 아닐까?



매일매일을 여행하듯 살기


영화 마지막에서 주인공 팀은 더 이상 시간 여행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전에 주인공은 나름대로의 시간 여행을 하곤 한다. 하루종일 정말 별로라고 생각했던 하루를 다시 살아보는 것이다.


직장 동료가 깨질 때에는 같이 상사의 욕을 해 주는 일, 바쁜 와중에도 예쁜 하늘을 한 번 더 올려다 볼 수 있는 일,

종업원의 눈을 맞추며 서로 기분좋은 인사를 하며 음식을 사는 일, 아내에게 조금 더 다정하게 말을 해 줄 수 있는 일 등

같은 조건의 하루를 더 높은 행복의 결괏값으로 도출해 낼 수 있는 일들은 더 많다.


이렇게 쓰다 보니 나는 시간 여행에 극구 반대하는 사람처럼 되었지만

사실 주인공의 시간 여행 능력이 참 괜찮았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었다.



새로운 아이가 태어나기 전, 주인공은 마지막으로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를 보러 과거로 향한다.

그리고 거기서 아버지와 아들은 더 어린 시절로 돌아가 바닷가에서 함께 산책을 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는, 만날 수 없는, 혹은 다시 이어붙이기에는 너무나도 멀어진 사람이 존재한다면 이런 순간이 참 필요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건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상정 하에 성립하는 이야기 같다.

나는 시간 여행을 할 수 없는데 갑자기 내 가까운 사람이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나를 아련하게 쳐다보면 상당히 당황스러울 것 같기 때문이다...


아무튼

주인공 팀은 그렇게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순간을 공유하고 그를 기억 속으로 보내준다.

다시 돌아가신 아버지를 볼 수 없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지만

나는 팀이 또 다시 성장했다고 느낀다.


과거의 찬란한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고 나 역시 돌아가고 싶은 가슴 벅찬 순간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순간의 감흥을 느끼고자 언제까지나 과거에 머무를 수는 없다.


이전에 내가 사랑했던 사람, 좋아했던 사람과 쌓았던 수많은 추억들을 계속 향유하고자 과거에 머무르는 것보다는

또 새로이 내가 사랑하고 좋아할 사람들, 아직 만나지 못한 고마운 사람들을 위해 그저 현실을 살아가는 것이

마찬가지로 과거에 사랑했던 사람들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는 이미 끝난 과거와 정해지지 않은 미래에 안달복달하지 않고

영화 속 주인공처럼 그냥 하루를 좀 더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바쁜 일상에서도 한 번 하늘을 바라보고 종업원에게 웃어줄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내가 이번 글에서 쓴 것도 주로 시간에 대한 이야기였고, 영화의 제목 역시 '어바웃 타임'이지만 궁극적으로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어떻게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시간이 모여 우리의 경험이 되고, 경험은 우리의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


팀은 더 이상 시간 여행을 하지 않는 대신 과거에 사랑했던 사람들 (ex. 아버지)이 자신을 사랑해 주었던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지금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 (ex. 아내, 아이들, 친구)에게 노력을 쏟고

미래에는 또 팀의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얼버무리느라 제대로 말도 못하는 좀 답답한 측면이 있는 사람이지만 나는 이런 팀의 모습은 참 멋졌다.


그래서 한 마디로 이 영화를 본 뒤 느낀 점을 말해보자면

과거는 과거대로 현재는 현재대로

나에게 아쉬운 기억이 있다면 그럼에도 나를 사랑해 주었던/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갖고

미래에는 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되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매몰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했던 삶의 한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츠코의 삶은 무엇이었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