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생 엄마는 곧 말라비틀어질 예정이다.
역대 최대라는 18만 N수생의 바다에 뛰어든 재수생의 엄마다.
작년엔 재수생의 엄마가 될 거라고는 5%만 의심했었다. 설마 그럴 리 없을 거야 한 군데는 붙을 거야.
난 여태 너무 긍정정이고 낙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음 주면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부부가 이혼을 위해 법원에서 만나야 하는 판결 날과 같은 수능날이다.
기억해 보면 원서를 쓰는 시기에 집집마다 크고 작은 분란이 일어났었다.
원인 모두 비슷하다.
아이는 사고를 일으킨 피의자가 되고 엄마는 공범자 취급을 받기도 한다.
(억울한 누명을 쓴 것 같은 기분은 아이나 엄마나 똑같다.)
평소 교육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무심한 아빠는 당연히 고등 3년 동안의 내신 성적에도 관심도 없다가
"원서 어디 썼니"부터 관심을 가지신다.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만 알고 싶은 것이다)
어디를 썼는지 듣고서는 놀라고, 한숨 쉬고, 화를 내기도 한다.
무심 정도가 더 높은 레벨의 아빠는 원서를 어디에 쓰는 건 아무 관심이 없고 입시 결과가 나오면 돌변하여서
"엄마라는 사람이 집에서 뭐 했어? 집에서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거야?"
(이 말은 구시대적 얘기 같다고요? 아니요 대부분의 집에서 이 소리가 다 나오더라고요)
원서부터 부부 싸움이 시작되고 아이들은 중간에서 어쩔 줄 몰라한다.
어떤 아이들은 "내가 공부 안 했는데 왜 엄마한테 그래"하며 소리치기도 하고
또 다른 아이들은 공부 압박보다 부모 눈치가 더 보인다고들 한다.
(고3 유세를 하던 아이들이 급으로 작아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평소 열심히 공부 안 한다고 잔소리하던 엄마도 이때는 아이가 애처로워 보인다.
미국의 유명인들도 먹고 살을 뺐다는 위고비보다 더 강력한 다이어트는 이제 시작된다.
*1단계 시작 (워밍업 수준이지 뭐)
수능치고 온 밤은 곳곳이 울음바다다. 아파트 베란다를 내다보니 꼭 우리 집처럼 다른 집의 불빛도 슬퍼 보인다. 그날 밤은 뜬 눈으로 꼴딱 샌다.
(불면증의 시작이지)
이 시기는 엄마 아빠들 표정이 좋은 집은 극히 드물다.
(엄마들끼리의 만남과 연락은 당분간 조용해진다. 서로 알고 싶지도 묻고 싶지도 않다.)
상황 파악 안 되고 눈치 없는 이들이 질문을 한다 "수능 잘 봤어? 어디 갈 거 같아?"
(너네 애들 수능 치면 내가 잊지 않고 꼭 물어봐 줄게)
이건 입시생과 학부모에게 금기어다.
(이 시기는 그리도 좋던 입맛이 서서히 떨어진다)
*2단계 시작 (본격적으로 시작)
진짜 곡소리는 입시 결과가 발표 나는 12월 중순부터다.
(최초 합격자부터 예비후보자 등록을 매일매일 수시로 확인하며 절망의 연속으로 서서히 눈 초점이 없어진다)
수시는 12월 말까지 발표가 끝나고
(아이도 기가 팍 죽는다. 엄마는 희망의 끈 하나(정시)만 남겨두고 6장 모두가 썩은 동아줄이었다고 신을 원망한다)
그럼 정시로 넘어가서 1월 2일부터 다시 정서 원서를 쓰고 한 달을 기다리면 2월부터 1차 합격자 시작으로 2월 말까지 미등록자가 나면 예비후보가 올라가는 것이다.
(목으로 달달한 빵도 넘어가지 않는다. 자리를 잡고 눕는다. 머릿속이 하얗다. 이제 엄마도 아이에 대한 원망이 서서히 올라온다. 곳곳에서 다른 이들의 합격 소식이 들린다)
이 과정을 겪었던 부모들이 수능 친 날부터 2월 말까지 피를 말리는 100일이라고들 한다,
원하는 곳에 수시로 붙으면 진짜 감사한 일이다. 아니면 100일 동안 입시생 가족은 맘과 몸이 타 들어간다.
(다이어트 약을 먹어도 빠지지 않던 살이 쑥쑥 빠지더라. 잠도 못 자지, 먹는 것도 줄지, 즐거움도 없지)
아이 대학 입학식에 예쁜 엄마로 가고 싶어 다이어트 약 사서 먹어도 빠지는 게 부진하더니만 수능날 이후로는 저절로 빠지더라. 입학식에 갈 기회가 사라졌는데 체중은 내가 목표한 숫자에 도달한다.
너에게도 다 계획이 있었구나. 코코몽 같은 엄마 약 먹어도 효과가 없는데 다이어트시키려고 이런 계획을 세운거구나.
나는 또 이런 날을 만나야 한다. 다시 강력한 다이어트 돌입을 해야 하다니
몰랐을 땐 무섭지도 않더니 다 알고 나니 이제 두렵다.
올해는 내가 미리 다이어트했어. 그래서 나 그 위고비보다 강력한 다이어트 사양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