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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무 Feb 27. 2023

이별하고 글 쓰기 딱 좋은 날이다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

어렸을 적부터 아빠가 농담처럼 늘 하시던 말이 있다.


'이 해'가 안 가면 '내년'이 안 와.


'이해가 안 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내게 위로 겸 개그 포인트로 말씀하셨던 것 같다. 한 번도 이 문장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가끔은 분노에 가득 차 있는 나의 타인에 대한 의구심, 경멸을 심화시켰던 것 같다.

그 생각은 최근에 너무나도 소중했던 관계가 터무니없이 무너지는 일을 겪으면서 달라졌다. 왜 이런 일은 조금도 익숙해지지 않는지. 더 이상은 누군가를 깊게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이해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운 좋게 관계를 맺더라도 지속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렇게 깊은 좌절감에 빠져 혼자 '이해가 안 간다'라고 중얼거리다 문득 농담 같던 이 문장이 떠올랐다. 이대로 간다면 나의 '내년'은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난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내 세계 속에서 떠나보냈다. 그것도 나와 너무 긴밀하고 소중했던 사람들을. 관계에 정답은 없지만, '끝'은 있다. 난 그 끝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 들었다. 오랫동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겪으면서, 내가 작은 웅덩이의 물처럼, '고여 있는' 느낌이랄까. 누군가 보듬어주지 않거나, 그 웅덩이에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서 그대로 썩어버리는 물.



"나의 기준에 너는 미달이야."



요즘 같은 세상에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지 못하고, 서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판단하고 계산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도 드문 일은 아니다. 이럴 때 중요한 게 관계에 대한 나만의 기준을 가지는 것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나만의 기준을 세워 살아가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타인을 이해하는 정도가 오히려 좁아져갔다. 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보며 쉽게 좌절하고, 관계를 지속하지 못했다. 그 사람이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모습을 보며 실망하고, 마음을 굳게 닫아갔다. 관계를 시작하는 것조차도 점차 어려워져 갔다. 나만의 기준에 하나만이라도 부합하지 않으면 관계를 지속하는 게 어렵다고 느꼈다. 나는 누군가를 너무 쉽게 판단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

*출처: M드로메다 스튜디오


상대방을 바꾸려 하지 마라?


내가 뭘 그렇게 잘났다고. 얕은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려고 노력했다. 생전 나가지도 않던 여러 모임, 술자리에도 참석하고 여행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어느 정도 효과는 있었다. 생각했던 것과는 그 방향이 정반대였지만. 나의 편견을 깨기보다는, 보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면과 마주하며 끝도 없이 실망하기 일쑤였다. 오히려 나의 까탈스러운 기준에 몇 줄 추가가 될 뿐.

내게 가장 어려운 미션은 이해를 못 하면, 최소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각자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알 수 없다는 것은 잘 안다. 크기와 빈도는 달라도 누구나 슬픔과 아픔도 겪고, 자신만의 성향과 취향이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난 '이 사람은 왜 이러는 걸까? 이해가 안 가'라는 말을 계속 내뱉고 있었다. 내가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고 불만을 표현하는 것도 내가 상대방을 오롯이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오롯이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가능한 선에서 그 사람 자체로 인정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상대방이 나와했던 약속을 지속적으로 깨고, 본인의 감정과 상황만을 중요시하는 모습을 보일 때마저 나는 그 사람을 이해할 정도로 너그럽지는 못했다. 본인의 잘못으로 인한 자책감이 나에 대한 미안함보다 훨씬 더 큰 사람이었다. '그럴 수 있지, 근데 그랬으면 안 되지' 모순적인 이 두 가지 생각이 충돌했다. 그 사람이 살아온 삶, 현재 상황, 평소의 태도 등 모든 것을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이해가 가고, 내가 모르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조금은 더 이해가 간다.

하지만 용납은 안되더라. 사랑이 부족하거나 내가 부족한 사람일 수도 있을 거고, 그 사람이 나와 인연이 아닐 수도 있겠지. 어쨌든 이런 나의 '불만 표현'은 정당한 것일까? 아님 상대방을 바꾸려고 하는 잘못된 것일까.



막강 <욕설 문장집> 中

사랑은 할수록 모르겠다. 마음은 쓸수록 가난해지고 돈을 쓸수록 글 같아서 남는 게 없다.


만남은 어차피 확률 게임이니까


이런 상념들은 쉽게 결론이 낫지 않는다. 하지만 난 더 이상 그 끝에 고여있고 싶지는 않았다. 여전히 관계를 맺을 때 어떤 기준을 세워야 할지,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만큼은 확실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사람을 만날 '확률'을 높이는 것.

그러기 위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무너진 관계에서 비롯된 상처와 분노, 그 모든 경험이 내 삶에서 어떤 생각과 행동으로 이어지는지는 오롯이 나의 선택이니까. 좋은 사람이 되려면 부정적인 것들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그 행동의 일환으로서, 첫 번째가 글을 쓰는 것이었다. 내 생각을 담은 에세이가 주 콘텐츠 형식이며, '시간이 지나도 살아있는 글을 쓸 수 있다'는 플랫폼인 브런치가 블로그보다 나에게 적합했다.

그렇게 평일 퇴근 후 자기 전이나 주말 중 하루의 시간을 투자해서 브런치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며 내 생각을 보다 명확하게 정리하고, 그 생각은 글을 다듬으면서 조금 더 정확하고, 예쁘게 표현된다.

또한 글을 쓰기 위해 자연스럽게 책을 읽고, 영상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보게 된다. 이런 행동들이 너무 자연스럽게 습관화되고 있다. 글을 쓴다는 행위가 감정 배설의 효과를 넘어 내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멈추지 않고 나아가기 위해서.' 이것이 내가 글을브런치를 쓰는 이유다.


충만한 내년을 맞이하기를


나는 쉽게 단언하지 않기로 했다. 언젠간 나와 충분히 잘 맞는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다.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면 더 나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내가 조금 더 너그럽고 여유로운 사람이 되면, 불완전하고 불완벽한 그 사람의 모습도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 물론 우리 모두는 불완전한 사람이기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생길 테지만, 난 이전처럼 쉽게 관계를 관두지는 않을 것이다. 관대함을 갖고 내 마음만큼 상대방의 마음도 섬세하게 보살필 수 있는 뭉근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렇게 나의 '이 해'가 조금씩, 잔잔하게 흘러 충만한 내년이 올 거라 굳게 믿는다.

파리에서 찍은 사진. 손을 잡고 걸어가는 노부부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언젠간 나도 이렇게 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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