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여행하면 보이는 것들
혼자가 당연한 여행
어느 순간, 이제는 여행이라는 것이 당연히 ‘혼자’ 떠나는 행위가 되어버렸다.
어렸을 때는 가족들이나 친구들과도 꽤 많이 여행을 했었는데, 그 과정 속 수많은 사건들을 통해 관계가 서먹해지는 일을 많이 겪으며 누군가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 나와는 그다지 맞지 않음을 느꼈다. 그렇게 어느덧 혼자 여행 경력 7년 차가 되었다.
혼자 여행하다 보면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잘 먹었습니다.' 같은 짧은 인사말을 제외하고는 하루종일 입도 벙긋하지 않는 날이 많다. 심지어 게스트하우스를 가서도 혼자 방 안에 있거나 일을 할 때도 있다. 방 안내를 받고는 그 이상 아무런 교류를 안 할 때도 꽤 있으니 입에 단내가 날 지경이다.
너무 외롭지 않냐고?
그렇다. 가끔은 너무 심심하고,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며 대화를 하고 싶기도 하다. 아무도 내가 해가 질 때까지 밥을 안 먹어도 배고프지 않냐고, 같이 먹을래? 하고 다정하게 말 걸어주지 않는다. 정말 가끔은 사람들 눈에 내가 보이는 게 맞는지, 살아 있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친절한 가게 사장님들이 여행 왔냐, 어디서 왔냐, 무슨 일 하냐 등 몇 마디씩 말을 걸어주시긴 하지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로 인한 것인지, 그 이상의 진도가 나가지는 않는다. 너무 오랜만에 입을 열어 잠긴 내 목소리가 대화하기 싫은 것으로 비쳤을 수도 있겠다.
어쨌건 나 심심하다고 대화하고 싶다고 길 가는 아무에게나 말을 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고, 소심하고 말 주변도 없어 낯선 사람과 대화를 잘하지도 못한다. 막상 말하고 싶어도 말하다 보면 기가 빨리거나 이상한 흐름으로 흘러갈 때가 많다. 그렇게 난 상상만 수십 번 하고 목 끝까지 차오른 질문을 꿀꺽하고 삼키기 일쑤다.
낯선 향이 주는 묘한 동질감
이런 내가 생각지도 못한 것들로부터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혼자 다니다 보니 하나하나 촉감을 곤두세우게 돼서 그런가 이상하게 눈에 계속 밟히는 것들이 있다. 그 대상은 아주 광범위한데, 가까이 다가가야만 보이는 아주 작은 식물부터, 어디서 뭘 그렇게 주워 먹었는지 통통하고 느릿한 길고양이까지. 말 한마디 한 적 없지만 하루에 세 번이나 마주치는 사람도.
일상에서는 쉽게 보이지 않던 것들이 혼자 여행할 때면 너무나도 뚜렷하게 보인다. 진짜 말을 건네지는 않지만 환청처럼 나에게 말을 건네는 듯하다.
수많은 먼지바람을 뒤집어쓰고도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켜내는 식물을 보면 마음이 아리다. 꼭 나의 모습을 투영해서 보는 것 같다.
특히 신기한 건 고양이다. 2번 이상 보게 되는 고양이는 나를 따라도 너무 잘 따른다. (내가 무서운 사람이면 어떡하려고?)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밥을 주다가 자연스럽게 그곳의 마스코트가 된 아이들이 있는데, 그런 아이들에게 난 먹이를 주거나 시선을 주지도 않았는데 나를 졸졸 따라온다. 날이 좋아 멍 때리며 앉아있는 내 앞으로 와서 배를 까고 드러눕기도 하고, 갑자기 내 몸 위에 올라타 내 온몸을 핥기도 한다. 어떤 아이는 내가 가지 못하게 꼬리를 세운 채 내 차까지 쫓아와 하악질을 한다. (나 전생에 고양이였나?) 가끔 난 사람보다 고양이들에게 더욱 사랑받는 것 같다. 아무튼 이런 아이들 덕분에 난 누군가와의 대화 단 한 마디 없이도 너무나 큰 위로를 받는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꼭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하지 않아도 그 사람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괜스레 든든해지는 게 있다. 나와 똑같은(유명하지 않지만 마니아층이 있는) 브랜드의 옷을 입은 사람. 시끄럽고 큰 카페 구석 자리에 앉아 시끄러운 말소리를 차단할 큰 무선 헤드폰을 쓰고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하며 본인의 시간에 깊게 몰두하는 사람. 대화를 나눠보거나 눈을 마주친 것도 아니지만 그냥 존재만으로 동질감이 느껴져 내게 위안이 된다. 우습게도 그 사람이 자리를 떠나면 괜히 서운하기도 한다.
이렇듯 혼자 여행하다 보면, 낯선 것들에 예기치 않은 큰 위로를 받곤 한다. 누군가에게 나도 위안이 될 수 있을까 상상하며, 오늘도 혼자 여행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