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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옆집 명희이모 Nov 15. 2023

펜트 하우스 청소를 하다

  [지난 호주에서의 이야기 요약]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입국한 명희 이모. 모든 지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에 차오르던 때, 막상 호주에 오니 그 자신감은 자만감이란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호주 워홀.. 쉽지 않네..'


 9월 18일 자로 호주 시드니에 입국하여 멍하니 시간을 때우다 브리즈번으로 이동했다. 첫날엔 숙소를 구하지 못해 브리즈번 공항에서 노숙을 하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런 방랑자의 삶이 마냥 즐거웠던 명희 이모.

 브리즈번에서도 시드니에서처럼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이제는 일을 해야겠다!' 싶어 구직활동 사이트를 둘러봤다. 그중에서 번다버그 딸기 농장에서의 워커 모집 공고가 눈에 띄었다. 어쩌다 지원하게 되었고 그렇게 번다버그로 지역 이동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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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한 달간 딸기 농장에서 일을 했다. 농장 일을 하면서 얻은 건 가려운 피부와 고단 함이었다. 내 아무리 상태가 안 좋더라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앞으로 가게 될 시티에서의 행복한 상상 덕분이었다. 매일 밤 잠들기 전, 내가 바라는 소망을 마음속으로 읊고 자곤 했다.

 '시티로 이동하면.. 커피도 왕창 마시고.. 늦잠도 자보고.. 피부도 다 낫고.. 운동도 하고..'


 [열심히 일한 자, 이제 떠나라!]

 호주의 대표적인 시티, 시드니로 왔다. 시티에서 생활하게 될 명희 이모는 행복한 여정만이 남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계속되는 구직 활동의 실패로 인해 한국행 티켓만을 자꾸 바라보는 부작용까지 생기고 말았다. 한국에서의 명희 이모는 어떤 상황에 놓여 있어도 기죽지 않던 사람이었는데 이곳 호주에서의 생활로 난생처음 보는 '기죽음'이란 표정을 보게 되었다.

 '이게 맞나, 이럴 거면 세계 여행부터 떠날 걸 그랬나, 워홀 비자는 왜 받았을까.' 라며 계속되는 지난날을 후회하곤 했다. 그러다 문득 이 후회가 본인에게 얼마나 안 좋은 영향으로 다가올지를 인지한 명희 이모는 마음을 다잡기 시작했다.

 '그래!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지! 다 잘 될 거야!'


 참 신기한 게 마음을 다 잡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긍정적인 사고 회로가 도움이 된 순간이다. 이 마음을 유지한 채 구직 활동을 하던 중, 11월 11일 하루 청소 아르바이트 구직 공고가 눈에 띄었다.

 '어? 청소? 지원해 볼까?'

 바로 문자로 간단한 이력과 함께 지원을 하게 되었다. 결과는 아쉽게도 탈락이었다. 총 4명이서 청소를 하는데 이미 인원이 구해졌다는 것이다. 일을 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답장이라도 주신 것에 대한 감사함을 담아 문자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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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조금 지나 전화 통화가 가능하냐는 문자가 왔다. 통화 가능하다고 하였고 그렇게 전화 통화를 하게 되었다. 원래는 4명이서 가는데 내가 예의 있게 문자를 한 것을 보고 기회라도 주고 싶은 마음에 인원 추가를 해서라도 함께 일해보고 싶다고 하셨다. 대신에 5명이서 일하게 되어서 일이 일찍 끝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되면 급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괜찮냐는 질문에 나는 망설이지 않고 답변을 했다.


 "그럼요!"


 그렇게 다음 날 7시에 내가 거주하는 곳 근처 'COLES' 매장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기회가 생기기도 하는구나..라는 생각에 기뻤다. 밥값이라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정말 정말.. 그것도 아주 많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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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희 이모는 행복함에 잠겨 잠이 들었다고 한다.




 [청소 당일]


 7시 10분으로 약속 시간이 변경되었다. 10분에 COLES 매장 앞에서 만났다. A 선배님, B 선배님이 계셨다. 차량에 탑승하자마자 이런 말씀을 하셨다.

 A 선배님 : 원래 두 명 더 있었는데 잠수를 타셨어요...

 B 선배님 : 전 날까지는 연락 됐는데..

 명희 이모 : 아니, 당일 노쇼는.. 하하..

 A 선배님 : 저희 셋이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아마 3시에서 3시 30분 즈음에 끝날 것 같아요. 괜찮으세요?

 명희 이모 : 그럼요! 당연히 괜찮죠!

 A 선배님 : 오늘 하루 잘 부탁드립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어느 고급 아파트의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고급 아파트가 얼마나 고급아파트겠어?라는 생각이었다.

다양한 청소 용품

 청소 용품을 차량에서 빼냈다. 청소 용품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15층 맨 꼭대기 층의 버튼이 눌렸다.

 '오.. 꼭대기 층..!'


 우리가 청소할 곳은 이제 입주하는 곳인지 모든 게 다 새 거였다. 무엇보다 제일 눈에 띄었던 건....

 오페라 하우스 뷰라는 거!!! 엄청난 뷰에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이런 뷰에서 이런 컨디션의 집을 소유하려면.. 얼마가 필요하지...?'라고 생각만 했었는데 내 속마음을 읽으신 건지 A 선배님께서 말해주셨다.

 "여기.. 청소를 숨만 쉬고 몇십 년 해도.. 못 사요.. 대박이죠!"

 허허. 그럴 거 같긴 했다. 진짜.. 펜트하우스 급...이었기 때문이다. 집이 좋은 것도 좋은 건데 이렇게 좋은 곳에서 청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또 감사함을 느꼈다.

 '언제 또 이런 곳을 청소해 보겠어?'

하버 브리지와 오페라 하우스

 청소 시작 전, 제이미 슈퍼바이저가 몇 가지 지시를 내려줬다. 특히 더 꼼꼼하게 청소를 해야 하는 부분에 대한 지시였다. 설명을 듣는데 제이미가 의자 하나를 가리켰다.

약 4,100불짜리 의자

 제이미 : 이거 얼마인 지 알아요?

 A 선배님 : 얼마인데?

 제이미 : 이거 하나에 4,100불 정도야.

  우리 모두 눈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뭔 의자가 저렇게 비싸?! 라며 놀랐다. 한화로 약 350만 원 정도라는 건데.. 우와.. 대박이다라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이케아 의자처럼 보이지만 비싼 의자

 그니까.. 지금 이 모든 게 한화로 1,700만 원 정도란 거지..? 우와 대박이다.


 제이미 슈퍼바이저의 안내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청소를 하기로 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청소 시작]


 내가 맡은 업무는 A 선배님께서 지시하는 대로 하면 됐다. 처음엔 모서리 사이를 닦는 일이었다. 간단한 업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흠집이 생기지 않게 닦는 것! 중요 또 중요했다.

 이리 닦고 저리 닦으면서 점점 흥건해지는 땀과 땀에 의해 흐른 선크림이 나의 눈을 따갑게 만들었다. 땀을 닦고 따가운 눈을 치켜뜨는 일 마저 즐겁게 느껴졌던 건 어쩌면 나, 청소 일이 적성에 맞을 지도..?

책상 닦다가 보인 뷰

 잘 안 닦이던 부분이 있어 A 선배님께 질문을 했다.

 "A 선배님, 이 부분이 잘 안 닦이는데 혹시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이에 A 선배님께서는 잘 안 닦이던 부분을 깔끔하게 닦아 주셨다. 약 10년을 청소 일에 전념하셨던 대 선배님이라 그 손놀림은 남달랐다.

 "우리는 마법사가 아니에요. 지금도 충분히 깨끗하게 잘하고 계세요!"

 서툰 나를 또다시 위로해 주던 A 선배님이다. 저 말 한마디에 더 열심히 하고 싶어졌다. 어떻게 하면 완벽한 청소를 할 수 있을까?라는 욕심이 생겼다.

편한 복장의 명희 이모

 완벽한 청소를 하고 싶어 질문을 했다.

 명희 이모 : 어떻게 하면 더 깨끗하게 청소를 할 수 있을까요?

 A 선배님 : 이 세상에 완벽한 청소는 없어요. 뒤 돌면 또다시 생기는 게 먼지거든요.

 명희 이모 : 아하!!

 A 선배님 : 지금 명희 씨가 닦는 그곳이 제일 깨끗한 곳이에요. 잘하고 있습니다!!

 선배님의 말이 맞았다. 뒤 돌면 생기는 게 먼지다. 이 세상에 완벽한 청소는 없다는 말이 너무 마음에 와닿았다. 최근에 유튜브 [청소광 브라이언]이라는 채널을 본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그냥 브라이언 님이 너무 웃겨서 재밌게만 봤는데 이제는 브라이언 님의 심정이 어떤 지 공감하면서 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A 선배님이 주신 얼음물

 진짜 열심히 청소를 했다. 그런 나의 노력을 알아봐 주셨는지 선배님께서 쉬엄쉬엄 하라며 얼음물을 건네주셨다.

 A 선배님 : 명희 씨, 쉬엄 쉬엄해요!

 명희 이모 : 감사합니다!

열심히 청소 중인 명희 이모

 일이 점점 손에 익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속도를 내면 낼 수록 팔목 통증은 더 심하게 다가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웠다. 내 손이 거쳐가는 자리가 반짝일 때의 그 쾌감이란..!

멋진 뷰와 땀에 젖은 명희 이모


[점심시간]

 깨끗하게 청소를 하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었다. A 선배님께서 밥 먹고 다시 진행하자고 말씀하셨다. A 선배님이 추천하는 일식집에 갔다. A 선배님은 10년이나 호주에 거주하고 있음에도 일식집은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곳은 다른 곳과는 다른 특별한 맛이 있다며 데려가 주셨다.

 

 깔끔한 식당의 모습에 1차적으로 호감이었다. 친절한 종업원과 따뜻한 분위기가 좋았다. A 선배님과 나는 라멘을 시켰고 B 선배님은 덮밥을 시켰다. 함께 먹을 가라아케도 시켰는데 오랜만에 제대로 된 외식을 하는 터라 기분이 좋았다.

 음식이 나오기 전, 가라아케 먼저 먹었는데 먹자마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껏 먹은 가라아케는 가짜라고 생각이 들 만큼 부드럽고 야들야들했던 가라아케의 식감에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최고의 가라아케

 A 선배님 : 맛있죠?! 그렇죠?

 B 선배님 : 진짜 가라아케가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명희 이모 : (고개 끄덕끄덕) 네! 대박이에요!

 가라아케로 이미 입안이 즐거웠는데 라멘이 나온 후에는 벌떡 일어설 뻔했다. 일본에서 먹어 본 라멘보다도 더 훨씬 풍미가 깊었던 라멘이었다. 비주얼만 보면 엄청나게 짤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았다. 이런 맛집을 소개해 준 선배님들께 감사할 따름이다.


최고의 라멘

 A 선배님 : 호주에 와서 너무 고생만 하지 말고 맛집도 많이 다니고 그래요.

 B 선배님 : 맞아요. 주변에 좋은 곳 많으니까 언제든 물어봐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좋은 선배님들의 따뜻한 말까지 더해지니 이보다 더 완벽한 외식이 아닐 수 없었다. 점심시간 또한 좋았던 순간이다.

국물까지 깔끔하게!


[오후 청소 시작]

 다시 청소를 하기 위해 일터로 돌아왔다.

 A 선배님 : 우리의 목표는! 3시 30분 전까지 끝나는 것! 늦어도 4시입니다!

 B 선배님 : 파이팅!!

 명희 이모: 아자 아자!!

아자 아자!

 각자 맡은 자리에서 열심히 청소를 했다. 청소에 빠져들다 보니 금방 4시가 되었다. 시간이 사라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사라져 버린 시간에 깜짝 놀랐고 깨끗해진 집을 보니 또다시 놀랐다.

 

 A 선배님 : 자, 이제 마무리하고 갑시다.

 B 선배님 : 고생 많으셨습니다.


 뒷정리까지 한 뒤 일터를 나올 수 있었다. 15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길이 괜스레 아쉽게 느껴졌다. 퇴근하는 길은 즐거워야 하는데 뭔가 알 수 없는 아쉬운 감정이 휩싸였다.

 

 제이미 슈퍼바이저와도 인사를 나눴다. 그는 이제 술 마시러 간다고 했다. 자꾸만 나 오늘 술 마셔야 하는데! 일 하기 싫어! 라며 투덜거리던 제이미였는데 그 모습이 오히려 솔직해서 좋았다. 유쾌한 오지 슈퍼바이저였다.

 집으로 가는 길에도 선배님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좋은 사람들이란 게 느껴졌다. 그들에게 다시 한번 더 감사함을 전했다.

 명희 이모 : 이렇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좋은 경험하고 갑니다.

 A 선배님 : 명희 씨가 좋은 사람이라 저희가 더 감사해요. 덕분에 일도 빨리 끝났는걸요.

 B 선배님 : 진짜.. 덕분에 잘 마무리했어요. 감사합니다.

퇴근하는 차 안


 따뜻한 말만 오고 갔던 차 안의 공기는 온화했다. 언제든 연락해도 좋으니 호주에서의 생활이 부디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해 준 선배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청소 일이라 하면 어떤 이에겐 멋스러운 일이 아니라며 꺼릴 수도 있다. 이해는 한다. 멋지게 빼 입은 양복과 깔끔한 구두와는 어울리지 않은 직업이긴 하니까. 편안한 운동복 복장에 마트에서 산 편안한 운동화가 청소 일의 적합한 복장이니까 말이다.

 어려서부터 다양한 일을 경험하고자 했던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그 일에 종사하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들의 전문성을 알리고 싶다는 것.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청소 일을 10년 정도 한 A 선배님의 빠른 손놀림과 꼼꼼함은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났다. B 선배님은 A 선배님의 친구였는데 잠시 일하는 거였지만 A 선배님의 친구이기에 더더욱 신경 써서 청소를 하는 게 느껴졌다. 난 이들의 프로페셔널함을 본받고 싶다.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라도 내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나 자신을 사랑해 준다면 이보다 완벽한 인생은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누가 나의 인생을 규정할 수 있겠나. 내 인생은 내가 살아가는 건데 말이지.

눈에 담아보는 멋진 뷰
일일 청소부 명희 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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