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 대리, 회사에서 구조조정을 하고 있어. 이런 말 하기 힘들지만, 희망퇴직 대상자에 o 대리가 포함되어 있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내가 모시던 인사 팀장님이셨는데 휴대전화 너머로 들리는 그분의 목소리는 내가 알던 분이 아니었다. 너무 낯설고 당황스러워서 어떤 목소리와 내용으로 답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고 결국 어떻게 대답했는지도 모른 채 끊고 말았다. 인사팀 내에서 교육 담당을 맡고 있었던 나에게 신입사원 시절부터 다정하지만 엄격하게 이끌어주셨던 나의 멘토 같은 분이셨는데. 역시 사회는 냉정했고 현실은 비참했다. 갑자기 6년간 매일 같이 회사에서 고군분투하던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 건 왜일까? 새벽부터 일어나서 밤늦게 퇴근하기 일쑤였던 삶이었지만 그 속에서 자부심과 보람이 있었기에 출산 2주 전까지 만삭의 몸을 이끌며 복직 후의 삶을 계획하며 육아휴직을 신청했던 내가 안쓰럽기까지 했다. 복직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젠 필요 없으니 그만 다니라고? 처음엔 당황스러웠고 그다음엔 화가 치밀더니 마지막엔 허탈감이 집 안을 드리우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런 복잡한 감정 따위조차 나에게는 사치였나 봐. 배고프다고 눈치 없이 울어대는 아들을 둘러메고 임부복 원피스에 달린 지퍼를 열고는 젖을 먹이고 트림을 시원하게 나올 때까지 등을 토닥여주는 것이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이거늘.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건 절대 후회되지 않은 선택인데 그 선택을 책임져야 하는 대가가 나한테만 유독 가혹한 기분이 들었단 말이지. 그날부터였을까? 마음속에 꼭 숨겨놨던 이 신혼집에 대한 불만이 꼭꼭 잠가놨던 수도꼭지를 틀어놓는 것처럼 왈칵 쏟아져 나왔다. 회사에서도 잘린 마당에 회사 위치 때문에 구했다던 이 집에 더 이상 있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문화센터 대신에 부동산을 다닌 이유
이질적인 공간에서 실연당한 여자처럼 아이랑 씨름하고 있으니, 부모님도 걱정이 되었는지 틈틈이 오셔서 시간을 함께 보내주셨다. 나의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시고는 회사 희망 퇴직금과 이 집 전세금을 더해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건 어떻겠냐고 물어보시는데 순간 머릿속에 형광등이 반짝! '그래, 여기서 탈출하는 거야!'
어두운 긴 터널을 희망 없이 달리고 있는데 저 멀리서 희미한 빛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암흑같이 캄캄한 내 생활에 '목표'라는 형광등을 밝히니 어두워서 안 보이던 것들이 하나둘씩 선명하게 보였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순식간에 뒤집힐 수 있겠구나!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젠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네? 이번 기회에 내집마련 나도 욕심내볼까? 회사에 잘린 건 속상하지만 이런 목돈이 주어진 건 오히려 나에게 기회가 온 건지도 몰라. 이왕 집을 살 거면 투자가치가 있는 곳, 강남인데....' 그렇다고 강남에 아파트를 매매하기에는 돈을 아무리 끌어다 모은들 한계가 있었기에 고민하던 찰나, 현재 우리의 재정 상태로는 강남에 내집마련을 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재건축을 앞둔 구축 아파트를 매매하는 것이 가장 현실 가능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일말의 고민도 없이 돌도 안 된 아들을 아기띠에 둘러메고 친정엄마와 부동산을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카페에서 육아 정보를 알아가는 만큼이나 부동산카페나 블로그를 통하여 수많은 부동산 정책과 시장의 흐름 등을 공부했고, 알아볼수록 뜬구름이 아닌 단단한 확신이 서게 된 것이다. '오감 놀이는 틈틈이 집에서 해주면 되지!' 문화센터에서 시간을 보내는 대신에 부동산을 돌아보면서 우울감보다는 설렘이 싹트기 시작했고 희망이 자라고 있었다.
남편아, 나 좀 도와줘!
하지만 재건축 아파트를 살려면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재건축하는 기간 동안 우리 가족은 살 곳이 필요했다. 임신할 당시에 시어머니께서 아이를 맡아서 키워주실 수 있다는 말씀이 나에게는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손주를 맡아서 키워주신다고 하셨지 함께 산다는 건 상상도 못 하실 텐데 어쩌지? 이게 내 인생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몰라! 갑자기 어디서 온 용기인지 모르겠는데 다짜고짜 회사에 있을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 나 집 사야겠어. 도와줘!'
몇 초의 정적 후 남편은 "뭘 사고 싶다고? 갑자기 웬 뚱딴지같은 소리야? 일단 집에 가서 얘기해."라며 황급히 끊어버렸다. 그래. 갑자기 명품가방을 사겠다는 것도 어이없었을 텐데 집을 사겠다는 소릴 들으니 너무 당황스러웠겠지. 집에 들어온 남편에게 넌지시 남편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 "나 임신했을 때 아이 봐주신다는 말씀 진심이겠지? 사실....시부모님께서만 허락해 주신다면 들어가서 살고 싶어." 남편에게 그동안 나의 행적들과 정보들을 풀며 설득 작전이 시작되었다. 일단 남편부터 설득해야 그다음 시부모님께도 승낙을 기대할 수 있었다. 남편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남편도 직접 부동산에도 함께 가보고 혼자서 알아봤는지 어느 날 "이 집 처분하자." 이미 시부모님께 합가 승낙을 얻어낸 것이다! 혼자 고민하고 결정했던 남편의 성격이 이럴 때는 빛을 발휘하는구나. 그동안 이 집으로 인해 받았던 서운한 감정이 눈 녹듯이 녹았다. 나는 그날부터 좋은 매물을 얻기 위해 더욱더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매수 타이밍을 찾았다. 그리고 시세보다 떨어진 급매물이 나온 소식을 접하자마자 바로 매매 의사를 밝히고 일사천리로 후속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때는 쓰고 지금은 달다
드디어! 나도 강남 신축 대단지 아파트에 입주하는 날이 오겠구나! 입주까지 5년이면 시댁살이 견딜 수 있다며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재건축의 가장 큰 리스크가 바로 속도전. 입주 예정일이 한 해, 두 해, 연장되더니 예정보다 5년이나 미뤄져서 10년 만에 입주하게 되었다는 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달콤하지만은 않았던 신혼집과 신혼생활이 결과적으로는 나에게 황금알을 낳아준 거위 같은 존재였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 시댁살이하면서 그야말로 진짜 몸테크를 했기에 겪지 않아도 되는 아픔과 고민이 수없이 많았다. 물론 나뿐만이 아니라 시부모님도 마찬가지였겠지. 하지만 그 속에서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배우며 다듬어졌다. 시댁에 들어가서 산다는 것이 어떤 삶을 감내해야 하는 것인지 가늠조차 못 했을 만큼 세상 물정 모르고 철없었던 나였지만 그 무모함이 어쩌면 몇 개 없는 나의 강점일 수 있다는 걸 요즘에서야 문득문득 느껴진다. 시댁에서 사는 동안 생활비를 최대한 절약하고 대출금을 갚기 위해 사활을 걸면서 살았던 시간들, 앞으로 내야 할 추가 분담금을 충당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돈을 모아야 하는 팍팍한 삶이 때로는 버겁고 지칠 때도 있었다. 현재의 즐거움을 위하여 여유롭게 사는 주변인들을 바라보며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사서 고생인가 싶고....자괴감이 들때마다 핸드폰을 꺼내 들어 재건축 조합원 카페에 들어가서 언젠가 다가올 우리 가족이 살 그곳에 그림을 그려 넣으며 입주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이러한 짜디짠 경험 덕분에 지금까지도 불필요한 지출을 최대한 줄이며 최소한의 소비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시댁에서 살면서 온갖 수많은 감정들을 겪어보며 나를 이해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힘을 배웠다. 그리고 지금은 가장 소중한 가족들과 평생 함께해도 좋을 보금자리를 얻었기에, 이 모든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누가 나에게 물었다. 만약에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시댁에서 살 거냐고.
음....꼭 시댁에서 살아야만 내집마련이 되는 건 아니잖아? 시댁살이는 최후의 수단으로 두고 다른 방법을 모색해 보자. 왜냐하면 이미 경험해 봤으니, 현실을 알잖아. 시댁살이가 생각 그 이상으로 녹록지 않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