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저씨 할줌마들 모시고 다니는 하노이 여행기
"아, 가기 싫은데."
가족끼리 간 괌 여행의 여독이 채 풀리지도 않은 상태였다. 아빠는 두 번째 여행을 계획했다. 아빠가 나에게 전화를 했을 때는 이미 나는 갈 것이라고 확정지어진 상황이었다.
"오빠는 간대?"
"응, 가지."
의심스러웠다. 오빠가 간다니. 일단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한 뒤 오빠에게 전화했다.
"나? 가지. 골프치러."
그랬다. 본인의 MBTI는 GOLF라고 노래를 부르고 다니는 아빠의 아들은 오직 골프를 위해 여행을 간다고 했다. 그리고, 동행은 우리가족만이 아니었다. 아빠의 절친이자 오랜 비즈니스 파트너, 조 삼촌네 가족과도 함께하는 여행이었다. 조 삼촌네 자녀들은 나보다 어렸기에 거의 모든 여행계획과 준비는 오빠와 나, 혹은 나의 몫일 것이 너무나 자명했다. 내키지 않았다. 나는 조금 머리가 아파져 패키지 여행을 조심스레 권했다. 조 삼촌과 아빠는 얼마 전 다녀온 다낭 자유여행에 훔뻑 만취한 상태였기에 보기 좋게 묵살당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뼈를 깎는 노력으로 자수성가한 고집불통 할저씨들을 모시고 여행을 가기란, 쉽지 않을 것이었다. 그냥 No! 했으면 될 일이지만 골프를 좋아하지 않는 엄마가 눈에 밟혔다. 더군다나 내가 비용을 내지 않는 여행이라면 나쁘지 않을 것도 같았다. 고민 끝에 가기로 했다. 내가 돈이 없지, 시간이 없냐! 국가는 베트남이었다. 푸꾸옥, 다낭, 나트랑. 골프치기 더할 나위 없는 도시들을 제외하고 우리가 선택한 곳은 하노이였다. 나를 비롯한 Non 골퍼들이 관광하기에는 하노이가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오빠는 삼촌이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고 귀띔해줬다. 엄마는 삼촌이 셈도 빠르고 결단력도 엄청난 사업가 중의 사업가라 말했다. 조 삼촌은 여행을 가기로 결정을 내린 뒤 그 자리에서 바로 항공편을 결제하고 그 날 저녁에 오빠에게 숙소를 알아보라는 불호령을 내렸다. 다음날 아침, 오빠는 출근길에 삼촌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그래서, 숙소 어떻게 했다고?"
오빠는 삼촌의 엄청난 추진력에 겁을 먹고 그의 불호령을 바로 나에게 토스했다. 언제나 만만한 게 나였다. 오빠는 어른들과의 여행이라는 것에 생각보다 무거운 부담을 느꼈는지, 조 삼촌에게 욕을 먹기 싫어서 그랬는지 나에게 연락을 자주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엄마랑 아빠 체면이 있는데. 그럴듯한 계획이 있었으면 좋겠어."
나 또한 오빠보다는 내가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검색을 시작했다. 나는 팔자에도 재능도 없는 계획을 시도했다. 네이버에 베트남 여행을 치니 요새 J들은 엑셀이 아닌 노션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여행계획을 세우는 모양이었다. 하루죙일 다른 블로거들의 여행일정을 짜집기하고 노션에 갖다 붙이니 그럴듯한 J인척하는 여행일정이 나왔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어떻게 저떻게 대애충 몇가지 큰 틀만 잡아둔 일정이었다. 그 이후의 세부일정이 중요했으나 아빠의 피를 물려받은 나는 역시나 심한 무계획충이라 이 세상의 P들이 그렇듯 계획을 짜야한다는 스트레스만 받다가 기대감 반 스트레스 반 으로 여행날짜를 기다렸다.
전라북도에 사는 조 삼촌네 가족은 비행기 출발시간 보다 무려 3시간 전에 공항에 이미 도착해 체크인을 마친 상태였다. 공항에서 만난 조 삼촌은 백발의 곱슬머리에 버건디 컬러의 니트와 양말로 깔맞춤을 해 그의 패션센스를 자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