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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글 Jan 04. 2023

소변, 그게 뭐라고.

 응급실에선 아이들의 소변 한 방울에 울고 웃는다. 그 정도로 귀중하기 때문이다. 소아 환자들이 응급실에 오는 경우의 대부분은 발열이다. 그리고 어린 소아에게서 이유 없이 열이 난다면, 반드시 요로감염을 배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소변검사가 필수다. 혹은 탈수된 아이들은 소변검사와 상관없이 배뇨여부와 소변량 확인이 중요한 경우도 있다. 어른들이야 소변통을 손에 쥐어주며 "환자분, 소변 좀 받아오셔요." 하면 보통 10분 이내로 받아오지만 아이들은 우리의 애타는 맘도 모르고 쉽사리 소변을 내어주지 않는다. 가장 기본적인 요 분석검사를 시행하기 위해선 최소 2cc 이상의 소변을 제출해야 한다. 그 이상 모여지지 않는다면 검체를 낼 수 없고, 결과를 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좀처럼 그들을 집으로 보내줄 수 없다.


 이렇게 소중한 소변을 받아내기 위해서 첫 번째로 하는 방법은 소변 주머니다. 방법은 굉장히 쉽다. 소변 주머니를 생식기에 붙여놓고 기다린다. 정말 그야말로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맘마를 먹이거나 수액을 공급해주는 것. 그 외에 내가 일하면서 그나마 얻은 팁이라곤, 소변 주머니를 붙인 후에 혈액검사를 진행하면 아이는 반드시 울게 되는데 그때 소변을 보는 경우가 많다. 또 하나는, 아이가 배고픈 상태에서 소변 주머니를 붙인 뒤 우유를 먹이고 한 숨 재운다. 그리고 30분에서 1시간 정도 지났을 때 깨운다. 바로 그때 나른해하거나 울면서 소변을 보는 경우도 꽤나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손쉽게 소변을 내어주는 효녀 효자들은 많지 않다. 탈수가 되어있는 경우는 2cc도 안 되게 소변을 보는 경우도 있다. 또, 여자아이들의 경우 소변 주머니가 자주 새서 소변 채집이 쉽지 않다. 이렇게 소변 채취가 어려운 경우, 그리고 소변 주머니로 소변 검사가 성공했으나 결과에서 이상 소견이 있는 경우 우리는 두 번째 방법으로 넘어가야 한다.


 단순도뇨란 멸균된 고무로 만들어진 넬라톤 카테터를 요도구로 삽입해 소변만 깨끗하게 채취하는 방법이다. 어떠한 원인으로 배뇨가 어려운 경우에도 이러한 방법을 이용해 소변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출산의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한 번씩 경험해봤을 것이다. 끔찍하게 아프진 않지만 꽤나 불편한 통증을 감내해야 한다. 그래서 보호자에게 "소변줄을 넣어서 소변만 깨끗하게 채취할 거예요."라고 설명하면 십중팔구 그들은 소변줄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네? 이렇게 어린애한테 소변줄이요?" 손사래를 치며 우리에게 소변 주머니를 다시 시도하거나 좀 더 기다려보면 안 되는지 사정을 하시곤 한다.


 이 과정은 어린아이에게도 보호자에게도 불편한 과정이지만 우리에게도 그다지 반가운 과정이 아니다. 모든 병원에 반가운 것이 있으려나만은. 그리고 소변 구멍은 하나인데 뭐가 어려울까 싶지만 연령이 어릴수록 구멍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다. 더군다나 까딱하면 다른 구멍과 헷갈리는 끔찍한 일도 벌어질 수 있기에 예민한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원래 똥손이다. 야무지지 못한 성격에 손 또한 야무지지 못하다. 입사 후 도뇨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나는 눈을 질끈 감곤 했다. 선임들의 가르침대로 거즈로 아무리 닦아봐도 구멍이 보이지 않고, 구멍이 보여도 카테터를 넣으려고 하면 사라지는 신기한 기적을 매일 경험했다. 단순도뇨를 시도하다가 아이만 자극해서 공중에서 소변세례를 받은 경험도 적지 않다. 차라리 그것이 낫다. 공중에서 깨끗하게 검체만 받을 수 있다면야. 세례는 몇번이고 맞을 수 있다.


 왜 난 이렇게 똥손으로 태어났을까. 이렇게 한탄만 하고 있으면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잔머리를 굴려 잘하는 법보다 철판 까는 법부터 배웠다. 그날 같이 근무하는 캐신들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다. 캐신이란 캐스의 신, 단순도뇨의 신이었다. (단순도뇨: Catheterization의 Cath를 따서 캐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부서 내에 어떤 어려운 케이스도 성공하는 선생님들이 있었는데 그분들을 지칭하는 나와 동기들만의 용어였다. 아이가 불편해하는 울음소리와 더더욱 불편한 보호자의 눈빛을 감내하는 것 보다야 눈 한번 딱 감고 그분들에게 용기를 내는 마음이 더 가볍다고 판단했다. 기저귀를 여는 순간,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캐스인가 할 수 없는 캐스인가를 구분했다. 빠른 상황판단 후 괜히 시도했다가 따가운 보호자들의 눈초리만 받을 바에야 시도조차 하지 않고 캐신에게 바로 가져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땐 최대한 송구한 마음과 불쌍한 표정을 나타내는 표정과 제스처가 필수다.


 "선생님, 진짜 죄송한데 제가 한 번 시도했는데..." (선의의 거짓말은 필수다.)

 "손 바꿔볼까?"


 감사하게도 캐신들은 흔쾌히 손을 바꾸고 한큐에 성공해주시곤 했다. 출근 전 근무표를 보다가 캐신의 성함을 확인하면 그날 내내 밥을 못 먹어도 든든한 근무였다. (대부분은 밥을 못 먹지만) 그날 내내 캐신의 은총이 내려 무서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어려운 케이스도 캐신들에게 가져가면


 "나도 자신 없는데."


하며 한발 빼곤 하시지만, 기어코 우리의 입에서


 "어!! 소변 나온다!!!!"의 말이 터져 나왔다. 메마른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그러면 장장 몇 시간 동안 소변만을 기다렸던 보호자들과 우리는 뛸 듯이 기뻐한다. 몇 번의 소변채집시도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나는 소중한 소변 한 방울 한 방울 아까워하며 노심초사 검체통에 옮기며 몇 번이고 굽신굽신 캐신에게 감사의 절을 올린다. 그들은 어떻게 캐신이 되었을까,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되뇌면서. 난 아직도 캐신의 경지에는 오르지 못했다. 아마도 그것은 선택받은 자들의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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