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비행기로 하노이에 도착했기 때문에 공식적인 여행일정은 다음날부터였다. 조 삼촌이 '하롱베이에서 배는 한 번 타보고 싶다.'라고 지나가듯이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꼭 지켜야만 하는 당부같이 느껴져 둘째 날은 하롱베이 투어를 하는 날로 정했다.
검색하면서 참 많은 투어들이 있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홍해가 갈라지듯 모세의 기적처럼 간단했다. 몸이 편하고, 꽤나 괜찮은 음식들을 먹으려면 돈을 더 주면 되고, 그 돈이 아깝다면 조금 더 고생하고 음식에도 많은 기대를 하지 않으면 될 것이었다. 그 사이 언저리에서 적정선을 찾으려고 애쓰다가 머리를 쥐어뜯곤 했다. 게다가 나는 자꾸만 이번 여행이 7인 여행이라는 사실을 잊고 투어가격표에서 총가격만 확인하면 섬뜻해하며 창을 꺼버렸다. 그 가격을 7로 나누면 그 정도 값에 다들 다녀오는 투어인데 나의 새가슴은 자꾸만 벌렁거렸다. 아주 저렴한 가격에 만족스러운 가성비 투어를 내가 고르고 골랐다는 인정을 어른들에게 받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그 선택지는 좀처럼 찾기 어려웠고, 나는 전자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나는 돈이 없지만 나의 동행자들은 돈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고른 투어는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시며 한국어을 할 수 있는 현지 가이드를 동반했다. 게다가 올드타운에 위치해 있지 않은 우리 숙소까지 정말 좋은 차량으로 픽업, 드롭이 되는 점이 날 현란하게 유혹했다. 가격은 싸지 않았다. 한 사람당 한화로 10만 원가량의 비용이 들었다. 예약금을 지불할 때 1초 정도 아까운 마음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조 삼촌이 투어 당일 아침, 숙소에 픽업을 하러 온 차량에 타며 한 말 한마디.
"아따, 차 좋네."
한마디에 후회 없는 선택이다 싶었다. 가이드 역시 투어에 충실해주고 털털하고 붙임성 있는 성격에 모든 동행이 마음에 들어 했다. 한국말을 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웃으며 "잘생기고 착하고 돈 많은 한국남자? 없어요." 하는 소리에 오빠가 연신 "대체 한국말을 어디서 배운 거야?" 할 정도였다.
중간중간 동굴과 티톱섬 등산, 카약도 좋았지만 사실 맥주 한 잔 하면서 하롱베이의 장관을 낮부터 노을 지는 시간까지 감상할 수 있는 것 하나로 충분한 투어였다. 우리가 장장 세 시간가량 차를 타고 여기까지 온 이유도 이거 하나였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다. 삼촌네 가족은 삼촌을 비롯해 아무도 술을 먹지 않았다. 우리 가족만 내내 "원 모어 비어"를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삼촌 주변에 술 비슷한 것만 가려고 하면 모두가 말리는 추세였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내가 물었다.
"삼촌은 술 한잔 안 하시는데 아빠랑 도대체 어떻게 친해지신 거예요?"
그랬더니 모두가 "하이고~!" 손을 휘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이고, 말도 마! 여행 갈 때마다 술 캐리어를 하나 따로 장만해 다니신 양반이야."
역시 범상치않다. 삼촌의 말에 의하면 삼촌은 원래 태생부터 술을 잘 못 먹는 사람이다.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벌게지는 사람인데 후천적으로 단련을 시켰다고 한다. (대체 술이란 무엇이기에 단련까지 시켜야 할까.)
우리 부모님과 삼촌네 부부는 패키지여행을 자주 다녔는데 그때마다 삼촌은 본인 짐 캐리어 외에 캐리어 한 개를 더 가지고 왔다. 바로 그건 술 캐리어로 캐리어 하나에는 술만 잔뜩 넣어서 짊어지고 오셨다는 거다. 그게 대체 공항에서 어떻게 안 걸릴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지만 어른들의 과장에 의하면 그렇다. 그런데 최근 건강상의 이유로 술을 자제하고 계시단다. 멀리서 맥주만 끔뻑 끔뻑 바라보는 삼촌의 표정을 보며 귀여우면서도 조금은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아빠가 삼촌을 바라보는 눈빛에서도 우정 비슷한 것을 보았던 것 같다. 함께 늙어가는 것은 사랑하는 이들이 조금씩 어딘가 고장 나는 걸 지켜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홀로 늙어가는 것과 함께 늙어가는 것 중 어느 것이 덜 외로울까 선택하는 것은 굉장한 난제였다.
술에 관한 재미난 일화가 또 있었다.
삼촌네는 몇 년 전에 (삼촌이 술을 마실 수 있던 적에) 삼촌의 아버지를 집에서 모시고 살았다고 한다. 그러니 삼촌의 부인인 (이모라 칭하겠다) 이모는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술이라면 죽고 못살던 삼촌과 아빠는 그 시대에도 술을 낮이면 낮이라고 마시고, 밤이라면 밤이라고 마셨다. 하루는 삼촌이 새벽 3시에 아빠에게 전화를 해 집으로 와서 한 잔 하자고 했다고 한다. (참고로, 삼촌은 우리 집과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다른 도시에 거주한다.) 아이가 셋이고, 집사람도 있고, 심지어 일흔은 훨씬 넘으셨을 아버지가 있는 집에, 낮 3시도 아니고 새벽 3시에. 그때의 이모의 마음을 생각하니 참담하기 그지없다. 모두의 기대에 발맞춰 우리의 아버지는 좋다고 그 새벽에 자차를 몰고 친구네 집에 가 한잔 기울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새벽에 아들과 그 친구 놈의 술잔치를 본 삼촌의 아버지는 명언을 남기고 방에 들어가셨다고 한다.
"이 시간에 오라는 놈이나, 오란다고 오는 놈이나."
우리는 투어가 끝나가는 배에서 이 에피소드를 깔깔대며 들었다. 오십넘게 먹은 중년들의 철없는 에피소드가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눈물이 찔끔 날만큼 웃겼다. 그렇게 실컷 웃다 보니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배고프다. 무계획충인 나는 나를 바라보며 메뉴를 묻는 동행들을 보며 조금씩 식은땀이 나고 조급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