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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글 Jan 31. 2023

꽃보다 할저씨 3

 실은 투어가 끝나가도록 어디서 저녁을 해결해야 할지 정하지 못했던 나는 현지 가이드에게 SOS를 쳤다. 가이드는 나의 무계획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리스트를 보여주며 여기 중에 골라서 가면 실패는 안 한다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리고, 내가 정한 식당에 전화를 해서 예약까지 해주고 원래 예정된 드롭 장소인 숙소가 아닌 식당까지 데려다주었다. 무엇보다 제일 고마웠던 점은 우리가 준비 없이 오느라 베트남 돈인 동으로 환전을 일원도 못해왔는데 직접 환전서비스까지 진행해 주었다. 일일이 나열하기 어렵지만 너무나 감사했던 가이드였기에 마지막에 팁도 넉넉하게 챙겨주었다. (내 돈이 아니니까 그랬던 것도 있다.)


  가이드의 추천으로 갔던 식당은 Quán ăn ngon (꽝안 응온) (주소: số 18 Phan Bội Châu, Cửa Nam, Hoàn Kiếm) 이라는 곳이었다. 쌀국수도 팔고, 분짜도 팔고, 반쎄오도 팔고 이것저것 다 파는 베트남 음식점이었다. 여기저기 조명으로 장식한 덕에 우리나라 감성식당의 분위기도 언뜻 보였다. 우리는 조 삼촌의 말마따라 다 시켰다. 입이 일곱 개이니 양도 양이고, 모두들 배가 많이 고팠던 듯했다. 메뉴가 한 개씩 나올 때마다 어른들은 게눈 감추듯 드셨다. 한국에서라면 애들 먼저 먹으라며 양보하셨을 법 한데 타국에선 얄짤 없었다. 이모는 심지어 '노인네들 먼저 먹으마.' 미리 엄포를 놓으셨다.


 하루종일 구경하고 등산하고 배 타느라 지치고 배고픈 탓도 있었겠지만 음식 맛이 거의 평타 이상이었다. 특히나 우리 엄마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은 반쎄오였다.  그 뒤 찾은 식당에서도 엄마는 계속해서 외쳤다. "반.. 뭐라고? 그래, 반쎄오!"


 이번 여행에서 골프를 치지 않는 엄마를 위해서 쿠킹클래스를 미리 예약하고 왔다. 고로하여 셋째 날 엄마와 나, 우리의 주요 일정은 쿠킹클래스였다. 영어로 진행이 되며 조인클래스기 때문에 다양한 외국인들과 함께 수업을 진행한다. 우리 반은 싱가포르에서 온 네 가족, 스페인에서 온 어린 청년 한 명, 그리고 엄마와 나였다. 정해진 현지 셰프와 함께 시장에서 직접 장을 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샐러드에 넣을 망고, 분짜에 들어갈 면과 돼지고기, 스프링롤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두 눈으로 보고 같이 고른다. 다른 반들은 처음 본 분위기 속에서도 시끌벅적했는데 우리 반은 다소 서먹하고 서로 조심하는 분위기가 조금 웃겼다. 

쿠킹클래스 키친

 아마 반마다 메뉴가 각기 다른 모양이었다. 우리는 망고샐러드와 분짜, 스프링롤을 만들었다. 사실 살림 30년 차가 넘은 엄마에게는 소꿉장난 수준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언제나 속도가 꼴찌였는데,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혀를 쯧 차고 한 주먹 가져가 슥슥슥 썰어주었다. 엄마에게 요리는 어린애들 장난 수준이었지만 영어는 외계어였다. 특히 스페인에서 온 젊은 청년이 귀엽다며 장난을 치고 싶어 하는 엄마는 본인의 짧은 영어실력을 아쉬워했다. 내가 영어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연신 부러움을 내비쳤다. 그래도 클래스가 다 끝나고 우리가 직접 썰고, 튀기고, 구운 음식들을 먹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너무 맛있다고 좋아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싱가포르에서 온 가족 중 첫째 남자아이는 이제 막 스무 살 정도 됐을 얼굴이었다.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이 민망했던지 나에게 서울에서 왔냐고 물었다. 거기에 더불어 아빠까지 합세해 본인이 아는 한국어 단어들을 줄줄이 읊었다. 젊을 때부터 한국여행을 많이 했다고 한다. 내년 초에 가족끼리 한국여행을 할 계획이라고. 아빠가 참 인상이 좋아 보였다. 


 홀로 온 스페인 친구는 맥주를 한두 잔 벌컥 먹더니 얼굴이 시뻘게졌다. 나에게 영어로 뭐라 뭐라 중얼거리더니 혼지 실실 쪼개기 시작한다. 그래서 너 취했냐? 물어보니 아, 아니라고. 평소엔 이것보다 더 많이 마신다고. 남자들의 술부심 허세란. 


 디저트로 주는 에그커피까지 마시고 배를 두들기며 셰프가 불러준 택시를 타고 올드시티 쪽으로 향했다. 구시가지 쪽은 공기가 더 안 좋았다.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매연 때문에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그리고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오토바이는 어찌나 많은지 용기를 내 현지인처럼 당당하게 길을 건너려고 해도 코 앞까지 달려오는 오토바이에 내 발이 밟힐까 봐 지뢰 찾기 게임처럼 종종거리고 다녔다. 정말 신기한 것은 이런 미친 교통에도 길 한복판에서 사고처리 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오토바이 사고가 많아 우리나라에서 종종 외상치료 프로그램을 지원해 주러 온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자기들만의 암묵적인 룰이 있는 것일까. 참 신기할 노릇이다. 그렇게 하노이의 밤이 또 한 번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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