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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글 Feb 05. 2023

꽃보다 할저씨 4

넵모이, 그놈의 넵모이

 조 삼촌과 아빠는 하노이에 도착한 첫날부터 노래를 불렀다. 넵모이, 넵모이. 밥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갈 때마다 "여기 넵모이 없나?" 하며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삼촌과 아빠의 기대는 매번 산산이 부서졌다. 베트남 여행에서 꼭 사 와야 할 리스트 중 하나라는 베트남 전통술 넵모이는 매번 없었다.


"아, 뭔 넵모이가 없냐. 말이 안 되는구먼."


삼촌과 아빠는 실망한 기색 역력했다. 거의 이번 베트남 여행의 반은 골프고, 반은 넵모이였다. 술을 자제하던 삼촌도 넵모이만큼은 먹고 돌아가겠다는 각오가 대단했다.


 베트남을 떠나기 하루 전날 저녁, 올드시티 쪽에서 마사지를 시원하게 받고 바로 건너편에 분위기도 괜찮고 조용한 레스토랑이 있었다. 주로 베트남음식을 파는 식당이었다. 역시나 예약을 안 해놨기에 어른들이 마사지를 끝내고 차를 마시고 있을 때 오빠와 나는 직접 식당에 찾아가 7명 테이블이 있는지 확인을 했다. 마침 2층에 자리가 있어 테이블을 만들어주었다. 휴, 이렇게 또 한 끼 해결하는군.


 안심하기도 전에 삼촌과 아빠는 식당에 도착하고 메뉴판을 들자마자 넵모이를 찾았다. 메뉴판에는 와인과 맥주뿐이어서 웨이터를 불렀다. 내 발음이 이상한지 넵모이를 못 알아들었다. 관광객이 많이 찾을 텐데 지금도 의문이다. 네이버에서 넵모이 사진을 보여주었다. 없다고 한다. 없다는 대답을 들은 삼촌은 이번엔 참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술이 진열되어 있는 곳에 가서 넵모이가 아니더라도 베트남 보드카 같은 양주를 골라오겠다는 것이었다.


 대뜸 웨이터에게 가더니 한국말로


"술 보러 갑시다! 술!"


 연신 외쳤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슬슬 여행에 지쳐가는 나도 이제 될 대로 되라의 마인드였다. 참으로 이상한 건, 영어도 아니고 베트남어도 아닌데 웨이터는 뭔가 알아들은 듯 아빠와 삼촌을 데리고 1층으로 향했다. 심지어 본인도 웃기는지 낄낄거리며 앞장서고 있었다. 어른들은 대체 어떻게 파파고를 쓰지 않고 한국말을 번역할 수 있는 것일까.


 오빠는 내게 기다려보자고 했다. 그동안 우리는 메뉴판에서 시킬 음식들을 보고 있었다. 아까 아빠와 삼촌과 함께 1층으로 내려간 웨이터는 2층에 올라와있었다. 그에게 이것저것 음식을 주문했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본인이 나가서 그 술을 사 올 수 있는데 그렇게 해서 먹을 건지 물었다. 난 오빠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모와 엄마의 의사도 물었다.


"그냥 됐다고 해라."


 분명 누군가 그렇게 말했고,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여서 괜찮다고 말했다. 몇 분이 흐른 후 아빠와 삼촌이 2층으로 올라왔다. 몇 가지 양주를 테이스팅까지 했는데 맘에 드는 술이 없어서 그냥 올라왔다고 한다. 아니, 말도 안 통하는데 그 와중에 테이스팅까지 했다니 오빠와 눈이 마주치고 헛웃음이 나왔다. 그 웨이터가 우리에게 술을 구매해 올 수 있다고 말했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비밀로 하자고 한 것은 아닌데 그냥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왜 그런 적이 몇 번 종종 있지 않은가.


 결국 술은 하노이 맥주로 통일하기로 하고, 음식들을 야무지게 싹싹 먹었다. 꽤나 맛있고 정갈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아빠와 삼촌의 넵모이 사랑은 아직 식지 않았다.


"아따 장사를 할 줄 모르는구먼. 그 정도로 얘기했으면 넵모이를 사 와서 자기가 팔면 될 것을. 우리가 팁도 많이 줄텐디."


 오빠와 나는 눈이 마주쳤고, 양심에 찔린 나는 실토를 했다. 난 잘못한 것이 없었으나 괜스레 민망했고. 삼촌은 계속해서 괜찮다고 했지만, 오빠의 말에 의하면 나를 바라보는 삼촌의 눈빛이 처음으로 달라졌다고 했다. 그래서 난 꼭 넵모이를 숙소에서라도 드실 수 있게 하겠다고 아빠와 삼촌은 달랬다.


 우린 식당에서 7명이서 그렇게 먹어도 10만 원이 넘지 않았다는 사실에 들떠하며 넵모이 사냥에 나섰다. 식당 근처에는 잡화점이 많았는데 그곳에서 간간히 넵모이가 보였다. 네이버 이미지에서만 보던 넵모이의 실물을 영접하는 순간 너무 반가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사실 거의 모든 잡화점에서 넵모이를 파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첫 번째로 보이는 슈퍼 비슷 한 상점에 가서 넵모이를 가리켰다.


"One hundread."


 베트남 돈은 단위가 커서 계산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가격을 말할 때 뒤에 0 세 개를 생략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어디선가 들었다. 100 뒤에 0 세 개를 붙이고 있는 동안 뒤에서 누군가 말했다.


"백만동인가?"


 백만동이면 우리나라 돈으로 오만 원이다. 베트남 물가치고 굉장히 비싼 가격이었지만 의심치 않았다. 전통술이니 그 정도 하나 싶었다. 그래도 조금 비싼가 싶어 흥정을 시도했다.


"Eighty!"


 당당하게 80을 외치고 나는 야무지게 80만 동을 주었다. 돈을 받은 주인집 아주머니는 무언가 쑥스러운 듯 웃었다. 우리끼리 술을 받고 뒤를 돌며 "아, 더 깎을 걸 그랬나? 표정이 왜 저러지?" "누나, 무조건 반은 깎고 봐야 한다니까요!" 시시덕거리며 그래도 흥정에 성공했다고 자신감이 넘쳤다.


그리고 어른들은 아무래도 비싸다며 다른 가게를 두 군데 더 들렸다. 한 군 데서는 120을 불렀고, 마지막 가게에서는 계산기를 두들겨서 보여줬다. 가게 아저씨는 130,000이라고 쓰인 계산기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우리는 넵모이를 제 가격보다 열 배는 더 주고 샀던 것이다. 총무였던 나는 여태 꽁꽁 숨겨왔던 나의 산수실력이 들통 난 것 같아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싶었다. 고작 오천 원짜리 술을 오만 원에 사다니!


 어른들에게 우리끼리 일단 다시 다녀오겠다고 했다. 괜히 어른들까지 가면 일이 커질  같았다. 내가 저지른 일을 조용히 내가 해결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빠와 , 조삼촌 아들  번째 가게를 향해 빠른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맘만 앞선 탓이었을까 우리는 비슷하게 생긴 골목들 사이에서 헤매다가 되돌아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기를  차례. 그러던 끝에 가게를 찾았을  게임은 끝난 상황이었다. 아가들이 걱정됐던 어른들은 가게로 향했고,  가게에 우린 없었고, 결국 구매했던 술을 손에 쥐고 있던 삼촌이 단판을 지었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삼촌은 별 말 하지 않았다고 한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아닌 다른 직원이 있었고, 삼촌은 그저 구매했던 넵모이를 직원의 눈앞에 들이밀고, 역시나 한국말로


"환. 불"


 아리송한 얼굴로 삼촌의 얼굴을 쳐다보던 직원은 주인에게 갔고, 아까 요상한 웃음을 짓던 주인집 아주머니가 나와 삼촌의 얼굴을 보더니 아까 내가 당당하게 내어주었던 돈을 고대로 가져왔다고 한다. 난 다행스러운 마음과 수치심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무언가 억울한 마음과 부끄러운 마음에 누군가 내 뒤에서 백만 동이라고 분명 그랬다는 둥, 돈 계산이 헷갈리기도 하고 무언가에 씌어서 그랬다는 둥 구질구질한 변명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빠와 조삼촌의 아들인 제이는 내 뒤에서 쿡쿡대며 웃기 시작했다.


"아, 헷갈리게 오빠가 분명 백만 동이라 했어!"

"맞아, 맞아. 헷갈릴만하다니까, 이게."


 그렇지만 그들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나도 따라 웃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흥정하겠다고 80이라 외치고, 팔만동이 아닌 팔십만 동을 주다니. 급기야 제이는 내 흥정을 돕겠다며 뒤에서 영어로 "우리 학생이라 돈 없어요. " 외쳤던 것을 회상하며 꺽꺽대며 배를 잡고 쓰러졌다. 그제야 우리는 주인의 그 웃음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았다.


 해외에 나가면, 언제나 화폐단위를 주의하자. 기분 좋은 여행에 조금의 덤탱이는 씌어주자라는 마인드지만, 열 배는 심했다.


성요셉성당. 넵모이는 못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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