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간호4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뭉글 Feb 21. 2023

내가 기억하고자 남기는 것들

코트디부아르에서

 8박 10일의 일정은 간단했다. 아침 일곱 시까지 로비에 모여 다 함께 병원으로 출근을 하고, 저녁 여덟 시까지 일을 하다가 호텔로 와서 식사를 하고 바로 기절한 다음 다시 출근하는 것의 반복이었다. 흔히들 해외봉사라고 한다면 여유를 부리며 일을 하다가 하루 이틀 정도는 쉬면서 관광도 하는 것을 상상하지만, 이 센터의 미션은 조금 다르다.


 원래는 하루에 두 건의 수술을 하는 것이 교수님의 계획이었으나 현지 의료진들의 의견에 하루에 한건 씩 진행되어 교수님은 센터 이래 최고로 편한 미션이라고 하셨다. 코트디부아르에 도착한 날 바로 그날 저녁부터 수술을 할 수도 있다는 말에 교수님이 잠시 미워졌지만, 내가 편한 미션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전 에티오피아 미션은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우리 미션의 목적은 현지 의료진의 교육이지만, 내가 더 배운 것이 많은 봉사였다. 수술 후 케어 중에 어떤 것을 중요하게 보고 케어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지만, 출근길에, 회식 중에 중간중간 교수님이 말씀해 주신 것들이 가슴이 많이 남아서 이번 기회에 조금 적어 내려 가 보려 한다.


 어느 출근길, 기분이 유난히 좋아 보이셨던 교수님은 이 봉사에 처음인 사람들이 많으니 한 마디 하겠다고 하셨다. 부디 이 사업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참여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시며 일 년 뒤에 이 나라에 오고, 또 그다음 해에 오게 된다면 조금씩 변하는 아프리카를 볼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우리만 포기하지 않으면 느리지만 천천히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교수님은 대체 어떤 마음으로 배낭 하나 매고 저렇게 아이들을 살리겠다고 다니시는 걸까, 교수님 인간 자체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루는 수술을 마치고 저벅저벅 중환자실로 들어오시더니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를 멀리서 지켜보시다가 무뚝뚝한 말투로 내뱉으셨다.


 "소변 좀 나오나?"


 환자만 보면서 이야기를 하셔서 순간 누구에게 물어보시는 건지 헷갈렸다.


 "아뇨, 아직 차도가 없습니다."


 교수님은 근심 어린 얼굴로 한참을 환자만 바라보시다가 다시 저벅저벅 걸어 나가셨다. 교수님의 추가적인 처방이라던지 당부 말씀을 기다리던 나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다시 빠른 걸음으로 나가시는 교수님의 뒷모습을 보며 멀뚱멀뚱한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연구원님이 웃으며


 "네, 지금 물어보고 가신 겁니다."


 원래 그러신 분이라고 당황하지 말라고 날 다독여주셨다.

그리고 몇 분 후, 교수님은 다시 돌아오셨다. 소변 줄에 이어진 소변 백(bag)을 보시더니,


 "가위 좀 줘봐요." "시린지 없나, 시린지?"


 급기야는


 "아니, 그거 좀 줘봐요, 아니 그거, 아니 아니 저거 있잖아, 저거."


대체 교수님의 의중을 알 수 없던 (혹은 위아래 없는) 나는


 "교수님, 이거, 저거 대체 어떤 거 말씀하시는 거예요?"


내 말에 허허 웃으시더니


"아! 저거, 수액세트!"


시린지와 가위와 수액세트를 가지고 열심히 뚝딱거리셨다. 그러시든지 말든지 난 만들고 있던 약을 만들고 있었다. 한 십 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어린아이처럼 외치셨다.


"어! 소변 나온다!"


Hourly urine bag (협성메디칼)


중환자실에서는 1시간마다 소변량을 확인하는 경우가 많아서 시간당 소변을 확인할 수 있는 소변 백(bag)이 필수다. 특히나 소아의 경우 정상적인 소변량이 몸무게당 1-2cc 정도 이기 때문에 소량의 소변을 정확히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중환자실을 포함해 소변량 확인이 중요한 환자에게는 삽입된 소변줄에 사진과 같은 Hourly urine bag을 연결해 소변량을 확인한다. 밸브를 잠가놓고 일정한 시간까지 배액 되는 소변량을 모아 양을 확인한 후 소변줄도 잠시 잠그고, 잠가놓았던 밸브를 열어 모아놓았던 소변을 아래로 비운다.


Urine bag (협성메디칼)

하지만, 여긴 어디냐, '설마 그건 있겠지' 하는 정도의 물품들은 다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코트디부아르였다. 여기에선 10kg짜리 아이에게도 소변량을 정확히 확인할 수 없는 Urine collection bag만 적용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까 열심히 보시던 것이 이것이었던 것 같다. 교수님은 수액줄과 주사기, 3-way 하나로 Hourly urine bag을 만들어내셨다. 교수님의 창조물을 보자 "어머, 이건 찍어야 해." 하며 카메라를 들이댔다. 내가 찰칵찰칵 찍는 동안 교수님은 "소변량 카운트 하는 거 중요하다고 쫌 교육 쫌 시키라." 하고 또 저벅저벅 떠나셨다. 아마도 그때였던 것 같다. 교수님의 팬이 돼버린 순간이. 옛날 옛적 18세기 사람들은 과학자이자 발명가이자 신학자이자 의사이지 않았는가. 아이작 뉴턴이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누구나 이건 이상하고 고쳐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지.'하고 포기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그 차이가 많은 걸 창조시키고 살리는 것 같다고 조심스레 생각하게 된 순간이었다.


교수님의 발명품

 또 하루는 현지 의사들과의 콘퍼런스에서 울화통이 터지셨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수술을 한 건이라도 더 해달라고 난리여서 매일같이 수술을 두세 건씩하고 새벽에 퇴근을 하며 일을 했는데 여기는 외과의사들이 의욕이 없고 할 마음이 없다고. 한 명의 외과의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으니 하루에 한 건이라도 더 수술을 하고 싶은 마음과 시스템을 바꿀 의욕과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모든 것은 내가 아니라 당신들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라고. 현재의 코트디부아르는 교수님이 30년 전 전공의로 일했던 한국의 모습과 같은 모습이라 더욱 안타까워하는 모습이셨다.  


 도대체 이 남자, 어디까지 멋질 것인가. 나는 어려서부터 제일 멋진 사람이자 내가 가장 되고 싶은 사람은 "본업 잘하는 사람"이라고 여겨왔는데 역시나 나의 가치관에 확신을 심어주는 사람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봉사라고 했지만 내가 해준 것보다 많은 것이 받은 시간들이었다. 또다시 건방지게 거만함과 나태함이 얼굴을 들 시기에 두더지 잡기처럼 한대 얻어맞고 겸손을 배운 날들이었다. 내가 모르는 사람도, 세계도 이렇게 넓다니. 가끔 병원에서 일하며 조금은 특별한 일을 한다고 자부했지만 사실은 언젠가부터 내가 진정한 우물 안 개구리이라는 것을 마주하는 순간이 무섭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우물 안 속에서도 많은 걸 볼 수 있다니, 우물 밖은 얼마나 큰 세계일까! 아마도 그런 궁금함과 건방짐이 또다시 얼굴을 들 때쯤 다시 한번 아프리카에 찾아갈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Ca va?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