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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글 Feb 02. 2023

Ca va?

코트디부아르에서

 저희는 2020년 8월, 근처의 소아과에서 아이의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듣고 여기 심장센터로 오게 되었습니다. 2개월 정도의 기다림 끝에야 의사와 상담할 수 있었고 병명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때 같은 병을 앓았던 아이들이 이 심장센터에서 수술 후 다시 뛰어다니는 것을 보고 희망을 가지며 수술을 기다렸으나 수술 차례가 계속해서 밀렸고, 그동안 아이가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안 다른 친구들의 괴롭힘, 아이가 꾀병을 부리는 것 아니냐는 주변 이웃들의 의심에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그러다 2년 반이 지난 어제서야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대해 한국에서 온 의료진분들에게 매우 감사한 마음입니다. 돈이 없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그런 아이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이 주어지면 너무나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의예과 학생의 보호자 인터뷰 중에서




"싸바? (괜찮아?)"


 지금도 눈을 감으면 압둘의 얼굴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얼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큰 눈에 우주 같은 새까만 눈동자. 인형처럼 숱 많은 속눈썹들. '나도 이렇게 문신해야지' 마음먹게 했던 갈매기 눈썹. 압둘은 약 기운에 취해 자고 있다가 가끔 깨어나 눈을 뜨면 우리는 아이의 큰 눈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소처럼 눈을 끔뻑거리며 나에게 "마몽, 마몽"하고 엄마를 찾거나 손을 벌리고 안아달라고 할 때면 할 줄 아는 불어가 없어 나는 연신 "싸바, 싸바?"거렸다. 그러면 압둘은 누구보다 괜찮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하염없이 그런 얼굴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울렁거렸다. 그리곤 인터뷰 내용이 자꾸만 떠올라 나도 모르게 압둘의 침대에 자주 머물렀다.


 오전에 삼십 분, 오후에 삼십 분 보호자 면회시간이 있었다. 압둘의 엄마는 누가 봐도 압둘의 엄마였다. 크고 깊은 눈은 엄마를 빼다 박았다. 내가 되지도 않는 불어로 모자가 닮았다고 했을 때 엄마는 말없이 웃었다. 압둘의 아빠는 중환자실 문을 열면서부터 연신 우리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백내장으로 뿌옇게 변해버린 오른쪽 눈으로 아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자리를 떴다. 어쩌면 신은 아빠에게 미안한 마음에 압둘에게 그리 예쁜 눈을 주었을까 잠시나마 생각했다.


 또 다른 환자를 중환자실에서 치료하기 위해 압둘이 병동으로 가는 날. 압둘을 나 혼자 오래 기억하고 싶은 욕심에 사탕을 압둘 앞에 건넸다.


"자, 봉봉(사탕)."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더니 사탕을 향해 손을 뻗는다. 나는 이때다 싶어 주려던 사탕을 뺏는 척하며 말했다.


"메르씨, 메르씨!(고맙다고 해줘)"


 '감사합니다.' 말 한마디 듣고 싶었던 나의 엎드려 절 받기 식의 전략이었다. 그제야 압둘은 알겠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으며 나를 향해 절을 해줬다.


"Merci."


 사실, 압둘은 수술 당일, 수술장에서 나온 후 불안정한 활력징후에 모두를 긴장하게 했었다. 아직 봉사 초반일 시기라 물품과 약품 위치도 모르는 상황에 혈압을 유지하기 위한 약들을 주입하기 위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댕댕거렸다. 우리의 목적은 현지 의료진들 교육이었지만 원래의 목적 따위 잊힌 지 오래였다. 간당간당하는 혈압을 보고 있자면 손과 발이 먼저 움직였다. 다행히도 모두의 걱정과 노력 끝에 압둘은 안정을 되찾았다. 결국 자신의 몸에 치렁치렁 감겨있던 줄도 시원하게 모두 제거하고, 밥도 잘 먹고, 쉬야도 잘한다.


 이상하게 다른 아이들보다 유난히 압둘의 인터뷰를 읽고  읽었다. 파파고를 돌려 이제는 친구들하고 축구 마음껏   있다고 음성메시지를 들려줄  우리의 노고를 기억해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교수님이 고쳐준 심장으로 친구들과 매일 축구를 하며 내가 언제 한국 사람들에게 치료를 받았었는지 기억도 못할 만큼 신나게 뛰어다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심으로 그랬으면 좋겠다. Abdoul, Ca va? Ca va b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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