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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글 Mar 08. 2023

끗발

피구왕 뭉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다. 볼은 한껏 상기되어 있다. 양발은 쇳덩어리를 찬 것처럼 무겁다. 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자꾸만 날아와 가슴팍에 꽂힌다. 머리를 흔들며 비수처럼 박힌 예감을 쫓아내 보려 한다. 날아오는 공을 가슴팍으로 받아보려다 튕겨나가는 상상을 한다. 아쉬워하는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상상을 멈춰보려 하지만 멈출 수 없다.




"오늘 1반이랑 경기 맞지?"

"응, 오늘 우리가 이기면 랭킹 1위야."


 6학년 3. 우리 일곱 명은 피구에 미쳐있었다. 유일한 20분의 2교시 쉬는 시간. 그리고 점심시간에 점심을 먹고 나면 남는 30분의 시간.  시간만 되면 우리는 매일 운동장으로 나갔다. 그래서  3교시와 5교시가 시작되면 땀냄새를 풍기며 자리에 앉아  짝꿍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해가 미친듯한 직사광선을 내리쬐거나 말거나, 우리는 주말에도 운동장에서 만나 피구를 했다. 매번 체육선생님께 공을 빌리는  민망해서 친구들과  묻은 돈을 모아 문방구에서 배구공을 하나 샀다. 공에 일렬로 모두의 이름을 적고 사인을 남겼다. 우리의 영원한 우정을 다지고, 피구에 대한 충성을 다지며. 우리의, 나의 피구열정은  정도였다. 그랬기에 피구 랭킹 1위는 당연히  것이어야 했고, 우리 것이어야 했다.


 피구에서 공격수로 들어가는 것은 항상 부담이었다. 나는 꽤나  피하는 덕분에 힘들이지 않고 마지막까지 남는 편이었는데 그러면 온갖 시선이 집중된 상황에서 피하고, 잡고, 던지는 것은 내향적인 나에게 맞지 않았다. 그래서 차라리 수비수가 마음이 편했다. 마음 놓고 수비와 공격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비수는 키도 크고 덩치 한몫하는 친구들의 것이었고, 조금 움직임이 굼뜬 친구들의 것이었기에 나의 주된 포지션이 아니었다. 나는 점프도 곧잘 했고, 피하기도 그럭저럭 잘했다.  힘도 나쁘지 않아 공을 던지는 힘도 좋았다. 특히 어릴 적부터 오빠와  축구 지옥훈련 덕분인지 (언제나  골키퍼, 오빠는 공격수) 공을 잡기에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3반의 에이스라고 불렸다.


 그날은 점심시간에 1반과 대결이 있는 날이었다. 이번 대결을 이기면 우리가 그리 갈망하던 6학년 피구 랭킹 1위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벌써부터 가슴이 콩닥대기 시작했다. 수업은 이미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선생님의 말씀이 한 귀로 들어와 다른 한 귀로 빠져나갔다. 내가 마지막 남은 상대팀을 맞춘 뒤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나와 친구들이 칠판에서 아른거렸다. 벅찬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점심식사는 거의 마시다시피 했다. 양치도 않고 친구들과 운동장으로 나갔다. 결의를 다지며 운동화를 신었다. 번잡스러운 운동장 한가운데, 네트 없는 배구장에는 이미 1반 아이들로 북적였다.


"야, 3반 에이스다."

"우리가 오늘 너네 이겨준다!"


 나를 보며 몇몇이 시시덕거린다.


"뭐래, 점프볼 누가 할겨?"


 나는 못 들은 척 정색을 하며 묻는다.


 점프볼은 1반으로 넘어갔다. 초반부터 아주 공격적이었다. 혈기왕성한 1반의 분위기가 점점 고조됐다. 경기가 중반으로 넘어갈수록 주변에 아이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남학생들도 구경 와서 서로의 반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나는 살살 공을 피하며 상대팀의 캐릭터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딱 봐도 허수인 놈, 피하기가 주특기인 얄미운 놈, 말만 많은 놈, 공 던지는 힘은 약하지만 공을 잘 받는 놈, 점프가 강한 놈, 그리고 다 잘하는 에이스.


 에이스는 실력과 더불어 팀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에이스가 무너지면 팀의 분위기가 바뀌고 사기가 떨어진다. 에이스를 죽이는  팀을 죽이는 것이다. 그리고 에이스는 역시나 한눈에 보였다. 1반의 에이스이자 전교회장인 그녀는 말라 보이지만 다부진 몸에 슛이 아주 좋았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예뻤다. 성격도 좋아 인기투표를 하면 매번 상위권에 있었다. 그런 그녀는 에이스의 몫을 톡톡히 했다. 팀원들이 기죽지 않도록 파이팅을 먼저 외쳐 분위기를 살리고, 팀원이 죽을 때마다 팀원들에게 괜찮다고 다독거릴 줄도 알았다.


 슬슬 경기가 지루해질 무렵, 한 덩치 하는 1반 송 씨의 볼에 우리 반 팀원이 대거 죽었다. 아쉬워하는 친구들의 소리와 환호하는 1반 아이들의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우리 팀의 위기였다. 그때, 누군가 외쳤다.


"야, 3반은 뭉글을 죽여야 해!"


 나와 동아리 활동을 같이 하던 1반의 꼬맹이 수비수가 나를 향해 공을 던졌다. 꽤나 센 볼이었다. 키는 작았지만 종아리가 옹골차긴 했다. 공은 얼굴 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치사한 새끼. 받을 수 있는 공이었고 받아야 하는 공이었다. 난 미처 멀찍이 멀리 가지 못하고 중앙선 중간의 끝자락에 있었고, 바로 등 뒤에 1반 공격수들이 나를 죽이려고 안달이 나있는 상태였다. 여기서 내가 공을 피한다면 바로 뒤에 있는 1반 공격수들이 공을 받아 코 앞의 나에게 슛을 날릴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공을 받는다면 내가 지체 없이 뒤를 돌아 지금 나를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보고 있는 1반 공격수들을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찬스였다.   


 공은 아직 날아오고 있었다. 꼬맹이와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에 나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바로 점프를 했다. 공중에서 가슴팍으로 받았다.

 

빡-!


"와!!! 받았다!"


 친구들이 소리쳤다.


 엄청난 소리가 났지만 긴장 탓에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안정적으로 바닥에 착지해 튕겨나가지 않은 공을 확인하고, 재빠르게 뒤를 돌았다. 여기선 스피드 싸움이다. 상대팀이 멀리 도망가지   상황에서 볼을 던져야 한다. 오른쪽 다리를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중앙선까지 멀리 왼쪽 발을 뻗었다. 공을 잡은 오른쪽 손을 머리 뒤쪽으로 들었다. 당황한 1 공격수들이 뒷걸음치는  보였다. 앞쪽엔 공격수 세 명이 포진해 있었다. 그들은 내가 던지는 볼을 예상하며 받아보려고  손을 아래로 뻗었다.


 피구에선 아래쪽을 노려야 한다. 다리를 향하는 볼은 타이밍이 정확한 점프가 아니면 점프를 해서 피하기 어렵고, 앉아서도 공을 잡기란 쉽지 않다. 특히나 지금처럼 뒷걸음치는 자세에서는 그들에게 패스하는 정도로 살살 던지는  아니라면 승산이 컸다.


 바로 앞에 있는 놈부터 죽였다. 공을 받아보려고 내민 공격수 1 손가락을 향해 냅다 내리꽂았다. 정확히 손가락을 맞추고 공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감사하게도 공은 굴러 떨어진  나에게 굴러왔다. 이게  떡이냐 하며 나는 빠르게 공을 주워 달려오던 공격수 2 향해    던졌다. 가슴팍으로 받으려던 공격수 2 뒷걸음치다가 공과 함께 뒤로 넘어졌다. 그리고 공이 또다시 공격수 3  사이로 굴러오고 있었다. 공격수 3 나는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공을 향해 튀어나갔다. 동시에 공을 잡았다.  오른발은 중앙선에 놓고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나는 재빠르게 공을 잡고 있던 왼손으로 우리  진영을 향해 공중으로 공을 튕겼다. 그리고 다시 뒤로 뛰어가  있는 공을 잡았다. 바닥에 공을   튀기며 숨을 고르고 상대의 위치를 확인했다. 공을 뺏긴  허겁지겁 뒤로 뛰어가는 공격수 3 다리를 노리며 다시 한번 던졌다. 공은 공격수 3 발에 맞고 옆으로 튕겼다. 이번엔 옆에 있던 공격수 4 공을 가까스로 잡았다.


 순식간에 세명을 죽였다. 상대팀은 결국 공격수 4, 한 명이 남았다. 1반 에이스였다. 우리 팀은 나까지 포함해 두 명이 남았다.


'지금부터 정신 차려야 해.'


 1 에이스가 빠르게  친구를 향해 공을 던졌다. 정확하고도 빠르게 친구의 가슴을 향했다. 친구는 가슴팍으로 받으려 뒤로  걸음 물러섰다


'튕길 것 같은데.'


 역시나 굉음과 함께 공이 바닥에 떨어졌다.


"아, 씨."


 의 빠른 속도 탓에 가슴팍에서 튕겨 나왔다. 친구는 분한  입을 대빨 내밀고 툴툴거리며 공격수 자리로 돌아갔다.


 이렇게 1 반도 한 명, 3 반도 한 명이 남았다. 일대일 상황이었다. 에이스 대 에이스의 대결이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상황이었다. 모두가 나를 쳐다봤고, 서로가 예민해져 있었다. 1반 수비수로 나온 말만 많은 놈이 날 노려보는 눈빛이 느껴졌다. 뒤통수가 뚫릴 지경이었다. 숨이 찼다.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졌다. 나에게 꽂힌 눈초리만큼 어깨도 무거웠다. 가슴은 터질 듯이 쿵쿵댔다. 얼굴은 화끈거리고 뜨거웠다. 땀으로 떡진 깻잎머리를 쓸어 넘겼다.


 상대팀 에이스의 얼굴은 한껏 여유 있다. 그리고  기어코 이기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나에게 입모양으로 뻥긋거린다. ' .' 입모양을 읽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언제나   가능성을 먼저 생각하는 나는 흔들리지 않는 척한다. 특유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 노력한다.



 잠시 시간을 멈춘다. 헉헉대는 숨을 고른다. 심장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는 것을 느낀다. 거짓말처럼 세상이 조용해진다. 그리고 나만의 경기를 머릿속으로 이어간다.


 내가 던진 볼을 1반 에이스가 잡는다. 그리고 달려와 나에게 공을 던진다. 나는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엉거주춤한 상태로 공을 놓친다. 1반 에이스는 내 모습을 보고 소리를 지르며 친구들에게 뛰어간다. 1반 학생들은 에이스를 에워싸고 기뻐한다. 드디어 랭킹 1위가 됐다며 서로를 얼싸안는다. 난 놓친 공을 보고 꿈이길 바란다. 친구들은 수비석에서 달려와 오히려 나에게 괜찮다고 다독인다.


 '잡지 말걸.'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눈물이 떨어지는 걸 애써 참아보려고 눈을 감지 않는다. 차오른 눈물에 공이 두 개로 보인다. 바닥에 떨어진 공을 주워 괜히 한 번 튀겨보며 욕을 내뱉는다.


 '이럴 줄 알았어.'


  다음을 기약한다. 이번이 아닌 다음을 기약하는 것에 익숙해져 버려 이젠 습관이 되어버린 걸까. 복잡한 생각에 터져버릴  같은 자괴감을  꿀꺽꿀꺽 삼켜본다. 한바탕 울고 운동장 바닥을 구르고 싶은 마음을 꾸역꾸역 누르고 아무렇지 않은  친구들과 학교로 들어간다. 화장실 칸에 들어가자마자 소리를 죽이고 삐져나오는 눈물을 닦는다. 손으로 허벅지를 때리며 스스로를 자책한다.


 1반 에이스는 나의 볼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가다듬어진 호흡으로 가슴이 튀어나오도록 한 숨을 크게 쉬었다. 눈을 질끈 한 번 감았다 떴다. 머리를 크게 흔들며 상상을 내쫓아 보려는 충동을 참고 대신에 공을 바닥에 크게 한번 튀겼다. 고민끝에 수비수가 아닌 1반 에이스를 향해 공을 힘껏 던졌다.




 첫 끗발이 개끗발이라는데. 나는 언제나 끗발이 부족했다. 진로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도, 면접을 볼 때도, 친구와 내기를 할 때도. 이게 맞다고 생각하면 끝까지 밀고 나아가야 하는데 그 힘이 약했다. 여태 잘 싸워왔음에도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내 마음속에 검은 연기가 꾸물꾸물 올라온다. 자꾸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잠식한다. 실패했던 과거의 감정이 슬그머니 뒤로 다가와 나를 감싸 안는다. 그러면 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그럼 그렇지.'하고 포기하고 만다. 그렇게 내가 만든 예감을 내가 적중시키고야 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과거를 뒤집고 파헤쳐도 손에 잡히는 건 넌덜머리 나는 자기 연민뿐이었다. 몇 해 전 나를 상담해 주던 사람은 과거에 하고 싶었던 것을 누군가에 의해, 상황에 의해 하지 못했던 적이 있냐고 물었다. 가타부타 결국엔 내 손으로 선택해 왔던 과거들이었기에 그 누구도, 무엇보다 나 자신을 탓하지 않기 위해 그런 적은 결단코 없다고 말했다. 그 사람은 내 대답을 듣자마자 부정하며 분명 있을 거라고 확언을 했다. 모른체 하고 싶지만 분명히 있었을 그 과거를 이제는 제발 놓아주고 싶다.


 피구를 비롯해 모든 스포츠는 멘탈의 싸움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고,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도 버텨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멘탈은 상상할 수 없는 노력과 연습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굵직한 실패가 아닌 작디작은 성공의 경험을 차곡차곡 모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으로 만들어진 칼을 수백 번도 갈았을 것이다. 자신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에이스를 죽이는 상상을 수도 없이 하면서. 우습게도 나는 아직 어떤 칼을 갈 것인지 결정도 못 한 것이다. 별 다른 생각 없이 마음에 드는 칼자루를 하나 쥐고 천 번쯤 갈다 보면 언젠가 나에게도 그날이 올 것이다. 내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에이스를 이기는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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