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감성 단편소설
학교는 어제부터 뒤숭숭했다.
영철의 옆 반인 4반에 전학생이 온 탓이었다. 담뱃재를 왼손 검지로 야무지게 털며 아무래도 캐릭터가 대단한 놈일 것 같다고 영철은 직감했다. 꽃샘추위로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 끝이 얄밉게 차가워 영철은 반삭머리 옆통수에 넣은 스크레치를 오른손으로 자꾸만 매만졌다.
3반의 소식통인 마빡이 영철과 무리에게 다가갔다. 마빡은 작년부터 그 무리에 끼고 싶었지만 좀처럼 그들은 껴주지 않았다. 이번에도 점심시간에 잠깐 보고 온 전학생의 소식을 전하며 은근슬쩍 무리에 끼어보려 한다.
"야, 영철. 4반 전학생 물레방아 할 줄 안다던데?"
마빡은 영철이 얼마 전 거북선은 성공했지만 물레방아는 아직 연습 중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영철의 굳어진 표정을 보고 잠시 아차 했지만 그들의 흥미를 끄는 데는 성공한 듯했다. 영철 옆의 순호는 이미 전학생에 대해 대충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순호는 특유의 깝죽거리는 표정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전학생의 과거를 떠벌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무리 중 가장 말 없는 경만은 노스페이스 바람막이에 담뱃재가 떨어진 걸 보고 얼굴을 찡그리며 탁탁 털고 있었다. 그리고, 키는 가장 작지만 유도로 다져진 다부진 몸을 가진 형민도 무리 뒤편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담배를 비벼 끄며 지나가듯 말했다.
"함 봐야겠는데?"
수업이 끝나고 영철과 친구들은 팸의 지속 여부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이 팸을 만든 놈이자 곧 전학을 갈 형민이 팸을 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도 결론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텅텅 빈 가방을 들고 일어났다. 그때, 마빡이 교실 뒷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전학생 데려왔어!"
전학생은 키 작은 마빡 보다 위로 머리가 두 개쯤 더 있었다. 머리는 거의 장발에 가까웠다. 누가 봐도 규정을 넘은 머리길이였다. 며칠 전 강제로 반삭을 당한 영철은 전학생의 머리를 보며 분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쟤는 교문을 어떻게 통과한 거지?'
순호가 높은 톤의 목소리로 깨방정을 떨며 묻는다.
"야야, 너 물레방아 한다고?"
3초 정도 정적이 흐른다. 전학생이 표정 없이 답한다.
"어."
학교 뒤편으로 향했다. 영철은 두 눈으로 보기 전까지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전학생의 입에서 살며시 나오는 연기가 코를 향해 빨려 들어가는 진귀한 현상을 보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범상치 않은 놈이라는 확신과 어서 빨리 친해지고 싶다는 느낌에 몸에 전류가 흘렀다. 게다가 전학생은 영철과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영철과 전학생은 급속도로 친해졌다.
"야, 너 오토바이 타봤냐?"
학원이 끝난 밤 10시. 집으로 가던 길, 전학생은 영철에게 물었다. 영철은 경험이 없었다. 엄복동의 나라에서 자전거와는 꽤나 친분이 있었지만 오토바이는 아직이었다. 타봤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꿈틀대는 것을 참으며 대답했다.
"없지."
전학생은 영철의 대답을 듣고 씩 웃더니 오른손을 주머니에 넣어 꼼지락 댄다. 그러더니,
"쨔좐-"
열쇠 하나를 영철의 눈앞에 들이대며 짤랑 거린다.
"이게 바로 딸키라는 건데."
딸키 하나면 모든 오토바이를 훔칠 수 있다는 전학생의 말이었다. 말하자면 만능키였다. 이 자식이 이 열쇠를 어떻게 손에 쥐게 됐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심장이 콩콩댔다. 요새 지루한 참이었던 영철은 새로운 일탈의 냄새에 코를 벌름거리며 흥분했다.
친구들을 소환했다. 통금 있는 마마보이 경만을 제외하고 학교 앞에서 다시 모두 모였다. 영철과 무리는 일단 좀처럼 가지 않던 옆동네로 향했다. 자주 출몰하는 동네에선 아무래도 보는 눈이 많아 위험했다. 아파트 근처를 배회하다가 근처 상가에 다다랐다. 그때, 순호가 토끼눈을 뜨고 소리쳤다.
"어! 저거다!"
순호가 가르킨 손 끝에는 인도 옆 오토바이가 한 대 서있었다. 상가 내 세탁소 앞이었다. '만이 세탁소'. 세탁소의 간판은 불이 꺼져 있었다. 인적이 드물었다. 모두가 말하지 않아도 민첩하게 행동했다. 전학생이 먼저 움직였다. 오토바이에 올라타 딸키를 꽂았다. 오른쪽으로 한 번 돌렸다. 잘 돌려지지 않는지 얼굴을 한 번 찌푸렸다.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다시 조심스럽게 힘을 주며 부드럽게 돌린다.
부릉-
시동이 걸렸다. 약속대로 전학생이 오토바이를 타고 먼저 움직였다. 그리고, 나머지 무리가 최대한 자연스럽게 정한 장소로 향했다. 영철은 주머니에 손을 꽂고 콧노래를 부르며 발을 빠르게 움직였다. 어서 빨리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오토바이를 만끽해보고 싶었다.
한 블록 떨어진 외진 공사장 주변에 다시 모였다. 담배를 피우며 순서를 정했다. 다들 담배를 입에 물고 여유로워 보였지만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모두가 한 손은 주머니에, 다른 한 손은 주먹을 쥐고 앞으로 내밀었다.
"가위, 바위..."
그때였다. 번쩍번쩍하는 불빛과 함께 승용차 한대가 살며시 공사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익숙한 흰색 바탕의 파란색 무늬. 경찰차였다. 갑자기 온갖 욕설이 난무했다. 순호는 경박하게 꺅꺅대고 난리가 나 영철이 순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일단 모두가 약속한 듯 담배를 바닥에 비벼 껐다. 모두가 사복차림이었으나 어른들 눈에는 그저 솜털난 십 대들이었다.
영철의 무리와 불과 10M 거리에 경찰차가 천천히 멈춰 섰다. 보조석의 창문이 천천히 내려갔다. 모두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순호는 조만간 오줌을 지릴 것 같았다. 형민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영철은 낮게 읊조렸다.
"하나, 둘, ㅅ.."
영철이 셋을 외치기도 전에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뛰었다. 영철이 가장 늦게 출발했지만 달리기가 빨라 선두에서 달렸다. 모두가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영철은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골목이 많은 주택가로 향해야겠다고 판단했다. 전학생은 그 와중에 딸키를 손에 쥐고 영철을 뒤따라 뛰었다. 형민은 전 국가대표 아빠에게 빠따 맞는 상상을 하며 아랫입술을 깨물고 죽기 살기로 뛰었다. 순호는 곧 울기직전의 표정으로 친구들을 따라 뛰었다.
몇 분쯤 흘렀을까, 영철은 더 이상 뛸 힘이 없었다. 목에서 쇠 맛이 났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숨을 쉬기 힘들었다. 나머지는 영철과 이미 거리가 벌어진 채 너덜거리며 영철을 따라오고 있었다. 영철은 일단 본인부터 살아야 했다. 눈을 빠르게 돌렸다. 갈림길에 서 있었다. 오른쪽 골목 끝 주택의 차고에 검은색 세단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그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세단 후면과 차고의 벽면 사이에 작은 틈이 보였다. 영철은 본인 한 명쯤은 숨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빠르게 차고 안으로 달려가 차 뒤편으로 엉거주춤 들어갔다. 밖에서 보면 영철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영철은 좁은 공간에서 자리를 잡으며 거친 숨을 돌렸다.
잠시 후 발소리가 들렸다. 영철은 엉거주춤 앉은 김에 아예 뭄을 웅크려 바닥에 엎드렸다. 차 밑으로 나이키 흰색 에어포스가 보였다. 전학생이었다. 영철은 전학생이 제발 다른 곳에 숨기를 바랐다. 하지만, 전학생은 어떻게 알았는지 차 뒤편으로 와 영철 뒤에 붙었다. 영철은 불안했다. 전학생은 키가 커서 들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학생의 엉덩이를 보고 연달아 나머지 두 명이 또 따라 들어와 몸을 웅크렸다.
"야, 씨. 엉덩이 밖에서 다 보이잖아!"
영철이 형민과 순호를 노려보며 말했다. 영철은 다른 곳에 숨으라고 툴툴거렸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세단 차 뒤편은 영철과 친구들의 헉헉대는 숨으로 공기가 더워졌다. 서로의 신발을 밟고 엉덩이를 차고 머리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난리가 났다.
그리고 일순간 조용해졌다. 차 소리가 들렸다. 차는 골목을 빠르게 들어서고 있었다. 영철은 발가락까지 힘이 들어갔다. 형민은 눈을 질끈 감았다. 차 소리는 가까운 곳에서 줄어들었다. 영철은 다시 엎드려 세단차 밑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골목을 훔쳐봤다. 역시 예상대로 경찰차였다.
남학생 네 명이 차 뒤에 완벽하게 숨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다. 경찰의 눈에는 형민과 순호의 씰룩거리는 엉덩이가 보였다. 그리고 들숨과 날숨에 오르락내리락하는 전학생의 머리도 보였다. 영철은 생각했다. '경찰이 우리가 오토바이를 훔친 것을 알고 있을까, 혹시 오토바이의 마후라를 만져봤을까.' 어쨌든 오토바이를 훔쳤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었다.
김순경은 밤 근무를 순탄히 보내지 못해 짜증이 나 있는 상태였다.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을 어떻게 혼구녕을 내줄까 고민했다. 김순경은 경찰봉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치며 전학생을 쳐다봤다.
'아까 마후라 만져볼걸.'
분명 키 큰 놈이 오토바이 바로 옆에 있었던 것으로 봐서 오토바이를 훔쳤다는 심적증거는 있지만, 정확한 증거가 없는 상황이었다. 분명 뜨거웠을 마후라를 생각하며 김순경은 전학생을 노려봤다. 그 외 나머지는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이 때, 영철이 눈썹을 여덟 팔자로 그리며 기지를 발휘했다.
"저희가 담배 핀 게 찔려서 도망쳤습니다. 죄송합니다."
등교하는 영철의 발걸음은 가볍다. 영철에게 어젯밤은 마치 봄날의 꿈같았다. 비록 오토바이는 타 보지 못했지만 앞으로 종종 입에 올릴 무용담이 하나 생겨 재밌어 미칠 지경이었다. 어제 없었던 경만도 분명 이 이야기를 들으면 깔깔거리며 부러워할 것이 분명했다. 오늘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담배를 피우며 어제 이야기를 할 생각에 벌써 입꼬리가 올라갔다.
1교시가 시작되기 전 MP3을 켜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프리스타일의 'Y'가 기분 좋게 흘러나왔다. 엎드려 잘 준비를 했다. 어제 새벽에 집에 들어간 탓에 눈꺼풀이 무거웠다. 영철이 엎드려 눈을 감으려던 찰나, 마빡이 큰일났다는 첫마디와 함께 교실 앞문으로 우당탕탕 들어섰다.
'아, 또 뭐야.'
영철은 일어나 마빡을 흘겨 보며 다시 엎드려 잘 준비를 했다. 마빡은 아랑곳 않고 교단 위에 올라서며 큰 소리로 말했다.
"얘들아, 어제 경만이네 아부지 오토바이 없어졌대."
순간, 영철은 멈칫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옆 분단의 순호와 형민과 눈이 마주쳤다. 비어있는 경만의 책상이 보였다. 불현듯, 경만이 세탁소 하는 아버지와 오토바이를 같이 타본 적이 있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했던 날들이 비디오처럼 스쳐 지나간다. 영철은 덜컹함과 동시에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마빡에게 묻는다.
"야, 마빡. 경만이네 세탁소 이름 뭐였지?"
"아, 뭐더라? 맞다. 만이 세탁소!"